겨울 이맘때면 서해 바다 어디에 가든 굴을 맛볼 수 있다. 바다의 우유, 제철 굴을 맛보기 위해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보령 천북이나 홍성 남당, 서산 간월도 아니면 태안 어디에 가든 굴을 쉽게 볼 수 있다.
겨울이 되면 하얀 눈 보다 먼저 떠오르는 자연산 굴, 그저 집 나간 입맛 찾아주는 요물이 아니라 부모님과 나에게 함께 공유한 추억이 된 지 오래다.
나 어릴 적 아버지는 겨울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날에는 꼭 바닷가에 나가셨다. 등에는 지게를 지셨고 그 위에는 여러 장의 마대자루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는 밤사이 강한 바닷바람에 바닷가까지 밀려온 굴(석화)이 담긴 여러 개의 마대자루를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녁밥을 먹자마자 방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산처럼 쌓인 굴들을 한 개씩 까곤 하셨다. 그 작업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허리가 아픈 작업이었다. 한 시간마다 허리 스트레칭을 하러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긴긴 겨울밤 단순한 작업 탓에 부모님은 TV 연속극을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시곤 하셨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양이라 그런 날의 야간작업은 자정을 훌쩍 넘기곤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나는 굴의 맛도 잘 모를 때였지만 다만 그다음 날 아침 밥상에는 항상 싱싱한 굴이 들어간 콩나물 김칫국이 국으로 나왔다. 여전히 기억하는 것은 생굴 맛보다는 손가락 보다 굵은 자연산 굴이 가득 들어간 김칫국의 맛이다.
성인이 되어 직업을 갖게 되었고 아주 오래전에 호주 시드니에 간 적이 있다.
시드니 하버 근처 레스토랑에서 생굴과 레몬이 들어간 요리를 주문한 적이 있다. 가격도 어마무시하게 비쌌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시크름한 와인 한잔과 레몬즙으로 샤워를 한 오이스터(굴) 한 점의 맛도 상큼하긴 했지만
입맛만큼 보수적인 것이 또 있을까. 굴은 역시 어릴 적에 아버지가 까주신 그 굴의 맛을 따라갈 수가 없을 듯했다.
어느 해 보다 차가운 2025년 1월
얼어붙은 우리의 몸과 마음
한 숟가락 한 숟가락 '후~후~'불어 홀짝홀짝 들이키는 칼국수 국물이 마음을 녹인다
손가락만 한 굴이 이불 되어 세상 부끄러운 듯 새색시 마냥 숨어있는 칼국수 면발을 덮고 있다.
굴 반, 면 반,
쉼 없는 젓가락질에도 불구하고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굴칼국수
저작활동에 지루함이 몰려올 때 아삭한 섞박지 한 조각이 굴 속 짠내를 달게 한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날 따끈한 굴칼국수 한 그릇으로
오래전 그날, 긴긴 겨울밤 보내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소환할 때 즈음
시나브로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다시 사르르
또 굴 한가득 칼국수가 그리워진다.
오늘 점심 메뉴는 굴칼국수 너로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