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말

어머니의 말, 장모님의 말

by 바람아래

지난여름 힘겹게 무더위 밀쳐내고 겨우 자리 잡았던 가을도 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눈치라도 챘는지 시샘이라도 하듯 변덕스러운 날씨가 연일 이어진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문득 떠오르는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은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마음 한 컨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매년 요맘때가 되면 연어처럼 기억의 강을 거슬러 올라오곤 한다.




# 어머니의 김장과 연탄 걱정


올해는 김장을 몇 포기나 해야 하나? 올겨울은 작년보다 훨씬 춥다는데 연탄은 또 몇 장을 들여야 될까?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어머니는 늘 이런 걱정을 하셨다.


김장은 내 기억으로는 수백 포기씩 담갔던 것 같다. 식당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이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시골에서는 찬거리도 부족했고 장보기도 마땅치 않았던 여건 탓에 겨울 동안 모든 반찬은 김치가 베이스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김치볶음밥, 김치콩나물밥, 김칫국, 김치전, 볶음김치...


그러니 뒷집에 살던 외할머니와 함께 항상 같은 날 김장을 했다. 그럴 때면 김장하는 날은 아버지의 역할이 매우 컸다. 아버지는 두 집에서 사용할 배추를 지게에 지고 바닷가 바위 웅덩이가 있는 곳까지 몇 번이고 날랐다. 아버지는 바닷물에 배추를 담가두었다 꺼내 오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해수김치(절임배추)의 원조였던 것이다. 당시 바닷물은 지금보다 훨씬 깨끗해서 동네 사람들은 평상시에도 김치 염장을 그렇게 하곤 했다. 사실상 천일염에 담근 김치였으니 맛이야 늘 일품이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어렵게 잘 염장된 배추를 옮겨오면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몇 시간을 쪼그려 앉은 채 거대한 빨간 대야(대야)에서 김장 속을 버무리며 김장을 했다. 몇 개의 김장독이 채워질 때면 근심 어렸던 어머니의 표정도 이제 한 시름 놓은 듯 밝아지셨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연탄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외할머니 댁에 들일 물량과 우리 집 물량을 계산해서 한꺼번에 주문을 넣었다. 두 집 모두 민박집을 했기에 혹시 몰라 찾아올 몇 안 되는 겨울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것과 겨울 지나 봄, 여름 장마철 눅눅할 때 가끔씩 사용하기 위해 항상 여유 있게 주문을 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동시다발적으로 집집마다 주문배달을 하기 때문에 빠른 순번으로 배달받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동네에서는 우리 집은 물량이 많은 편이라 항상 VIP 대접을 받았다. 또한 연탄집에는 2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공교롭게 우리 형제와 같은 학년이었다. 그래서 형들은 형들끼리 친구, 막내는 막내끼리 친구사이였던지라 아들찬스도 한몫했던 걸로 기억한다.


연탄 배달하는 날이면 배달하는 아저씨들은 우리 집과 외할머니 집 배달을 무척 반가워했다. 이유는 우리 집과 할머니 집은 트럭이 마당까지 진입할 수 있기에 일이 수월하고 금방 끝나기 때문에 좋아했다. 배달이 끝이 나면 어머니는 외상 없이 전부 돈을 지불했으니 그분들도 일하는 맛이 나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날이면 나도 연탄집게를 들고 한 장씩 날으며 어른들을 거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에 동네 친구집에 갈 때 창고나 집안 어느 한쪽에 쌓여있는 연탄 규모를 보면 그 집안의 살람살이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탄이 부족할 때는 한 장씩 서로 빌려 쓰기도 했던 시절도 이젠 추억으로 남았다. 연탄은 기름보일러가 나올 때까지는 긴긴 겨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속 검은 온정'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이 모든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누구든 그러했듯이 어머니에게도 연탄과 김장은 생존이었기에 봄부터 가을까지 밤낮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였던 것이다.

# 나에게 보내는 장모님의 SOS 신호

셋째 사위~~


장모님은 어느덧 손수 김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연로하시다.


결혼을 하고 몇 해 동안 처가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김장을 하는 날에는 일정이 되는 딸과 사위들이 모여 함께 하곤 했다. 그런 날이면 장모님은 사위, 딸들에게 각각 역할 분담을 해주시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장모님은 나에게만 다들 김장할 때 열외를 시켜주셨다.


"셋째 사위는 오늘 딴 거 하지 말고, 마당 쪽 창을 비닐로 한 번씩 방풍 작업 좀 해주게나. 시골집이라 겨울이 되면 외풍도 있고 추워서"


"셋째 사위! 가운데 방 문이 제대로 안 닫치는 데 왜 그런지 좀 봐주게 아무리 해도 문이 닫히지 않아"


"셋째 사위! 지붕 빗물 배관이 막혔는지 비만 오면 빗물이 그냥 넘치는 것 같아 배관 좀 확인 좀 해주겠나?"


"셋째 사위, 뒤뜰 감나무 높은 데는 내가 딸 수가 없어서 그러니 까치밥 몇 개 나 두고 따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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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 맘 때 장모님은 늘 셋째 사위인 나를 찾았다.


"미안해서 어쩌지! 셋째 사위 손재주가 제일 좋은 것 같아서, 자꾸 귀찮게 하게 되네..."


그때마다 미션은 중복되는 것도 있었지만 늘 새로운 미션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물론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하지만 연로 하신 장모님이 직접 하기에는 녹녹한 일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소소한 것들 조차 부탁할 상황은 아니어서 내 몸은 편하지만 마음 어느 한 곳에는 편치 않은 부분도 있다. 결혼한다고 처음 처가에 인사를 하러 갔던 때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만큼 장모님 얼굴의 주름은 더 깊어지고 있고 그녀의 기억은 점점 더 흐릿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무뚝뚝한 셋째 사위는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짧은 글로나마 기록을 해본다.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고 낙엽이 소리 없이 떨어져 질 때면 지나간 시간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진 추억 속의 말들이 왠지 모를 아쉬움, 허전함과 함께 눈치 없이 찾아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이가 들 수록 사람들의 기억은 희미해지다 결국 그 기억마저 잃는데 그중에서 맨 마지막에 남는 건 잃고 싶지 않은 것, 즉 '추억'만 남는다는 어떤 강연자의 말이 마음속 깊은 곳 까지 여운이 되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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