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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Oct 19. 2020

95. 아빠가 미라가 됐다.

<아빠가 미라가 됐다>


아빠는 퇴직 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다. 가족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어업의 길을 선택했고, 지금은 초보 어업자의 태를 벗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다. 뱃기름삯도 안 나올 정도로 그물이 텅 빈 날은 새벽에 돌아와 다음날 점심까지 내내 잠을 청했고, 그물이 묵직한 날은 새벽녂에 돌아와서 피곤할 텐데도 오전 일찍 일어나 그물을 정비한다. 아빠 말로는 경매장에 잡은 낙지를 내다 팔고 그 돈을 받으면 새벽 내내 찬바람 맞으며 그물을 당기던 그 피로가 모두 잊힌다고 한다. '아직 나는 돈을 벌 수 있어', '아직 나는 일할 수 있어' 그 마음 하나가 삶의 안정감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런 아빠를 보며 그저 하루하루 무탈하길, 그물이 가볍든 무겁든 아빠의 삶의 무게는 덜어지길 바랄 뿐이다.


오늘 엄마는 잠시 내 카페일을 도와주러 왔다. 계절이 추워지는 만큼 대추차나 생강청을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 엄마는 내 SOS에 이것저것 만들어주겠다고 두 손 뻗고 오신 거다. 마침 코로나 19로 인해 재난지원금도 받은 터라 나는 엄마가 두 손 걷고 도와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돌려드릴 것이 있어 마음이 참 가벼웠다. 엄마는 하루 종일 대추랑 생강청을 다지고, 청을 담갔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품에 준비한 봉투를 내밀었다. 한사코 필요 없다고, 내가 이런 거 받으려고 도와주러 온 줄 아냐고, 너 조금이라도 쉬라고 온 거라며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봉투를 거절하는 엄마에게 교통비나 하라며 품에 안겼을 때,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봉투를 이리저리 손사래 치는 이 정겨운 몸싸움이, 정말이지 오랜만이라 즐거웠다.


엄마는 출발하기 전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오늘은 낚시나가나? 나 지금 출발할 건데" 그런데, 이상하게 아빠의 목소리가 우물쭈물 좋지 않다. 엄마는 아빠를 알았다. 아빠는 항상 안 좋은 일은 숨기곤 했다. 가족과 아픔을 나누기보다 혼자 감내하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무슨 일인지 말하라며 다그쳤다. 아빠는 끝끝내 말하지 않다가 이내 실토했다. "사실, 새벽에 낙지잡이 갔다가 사고가 났어. 얼굴에 조금 긁혀서 그냥 밴드 좀 붙이고 있어" 엄마는 아빠를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물었다. "당장, 사진 찍어서 보내"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사진 하나 보내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우리는 걱정 어린 말투로 다그쳤다. 아빠가 보내온 사진에는 아빠의 얼굴에 온통 붕대로 붕붕 감아져 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사진을 보며 울컥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아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빠에게로 서둘러 갔다. 엄마는 아빠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언제 다친 건데? 왜 바로 말을 안 해!" 왜일까, 걱정이 가슴 그득그득 쌓여 그 둑이 넘쳐흐르면 이렇게 이내 폭발하게 된다. 너무 걱정해서, 지금 보이는 아빠 상태가 너무 안타까워서, 놀다가 다친 것도 아니고 일하다가 다친 거라 그게 너무 안쓰러워서, 혼자 그 아픔을 감내하려는 아빠가 너무너무 미워서.


아빠는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알기에 그저 우리를 토닥였다. "낙지가 금방 철이 끝나니까. 욕심내서 더 잡고 싶은 마음에 야밤에 무리하게 배 운전을 했어. 그러다 그만 김양식장 와이어에 얼굴이 걸렸지 뭐야. 자네 말처럼 욕심 좀 내려놓을걸. 그게 안돼서." 아빠는 예전부터 그랬다. 어렵게 살아왔던 시절이 자꾸만 떠올라 몸을 멈출 수 없었다. 무엇이라도 일을 하고 움직여야 했다. 몸을 혹사시켜야 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게 아빠를 이끌어온 원동력이 됐지만, 지금은 아빠를 쉬지도, 놀지도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었다. 엄마와 나는 그런 아빠를 보고 그저 안아주는 것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것밖에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결국 아빠는 며칠간 병원에 입원하며 요양생활을 했다. 김양식장 와이어에 얼굴을 부딪혀 코와 볼 쪽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찢어졌다. 결국 입원해 꿰매는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엄마와 나는 아빠의 옆에서 재잘재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이내 나는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빠 그렇게 얻은 훈장으로 낙지 몇 마리나 잡았어?" 엄마는 뭐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아빠는 정말이지 소년같이 해맑은 미소로 대답했다 "5접!" 신이 나서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아빠를 오래도록, 오래도록 바라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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