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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26. 2020

71. 친절한 것과 착한 것은 동일하지 않다

<친절한 것과 착한 것은 동일하지 않다 >


동네 카페를 운영하는 나는 '웃음'을 달고 산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주문을 하고, 그리고 나가는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친절함은 손님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이자 예의, 그리고 대우이다.

친절은 순수하게 우러나온 것 10%와 지불한 비용에 대한 대가 90%로 구성된다.

그런데 간혹 가다 어떠한 이익이나 대가, 상하관계를 떠나서 순수하게 마음을 나누고플 때가 있다.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은 단골손님 A 씨다.


단골손님 A 씨는 나와 띠동갑이다. 그런데 나이를 잊을 만큼 밝은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는 그녀는 순식간에 나를 매료시켰다.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한 마디에 감명받았고,

카운터 뒤에서 몰래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한 후부터는 호두파이며, 빵이며 온갖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는 그녀의 자상함에 눈물 흘렸다. 지금 와서 고백하건대 나는 먹을 거에 약하다. 난 참으로 '밥'에 예민하다.

이 모든 게 먹고살고자 하는 행위인데, '밥'을 잘 못 챙겨 먹으면 괜히 서럽다. 대충 때우는 끼니에 목이 멘다.

'밥'때문일까? 아니면 연락처를 주고받기 시작하면서부터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된 느낌을 받았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카페에 출석 체크하는 A 씨에게 와플을 구워주기도 하고, 직접 말린 소중한 꽃차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A 씨와 그저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싶었다.

카페를 휴점 하는 날이면 같이 만나 돈가스며 순두부찌개도 먹으러 다녔다. 대가를 받고 음료와 친절을 파는 그런 삭막한 관계에서 벗어나, 연상의 친구를 만난다는 게 참 신기하고 기뻤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A 씨와의 만남이 불쾌하고 꺼려지기 시작한 건.


"이 제품이 참 좋대니까!"


단골손님 A 씨는 나에게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든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A 씨가 카페에서 커피를 매일같이 사준만큼, 나도 보답하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내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회사 다닐 때는 유행에 민감했다. 계절에 맞게 옷을 바꿔 입고, 가끔은 미용실에 가 염색도 하고 네일숍에도 갔다. 목에는 당당하게 사원증을 차고, 한 손에는 커피와 다이어리를 들고 거리를 걷던 그 순간. 그 순간이 참 그리울 때가 많다. 지금의 내겐 생필품을 위한 소비만이 전부다. 내가 줄 수 있는 거라곤 무료로 디저트 주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A 씨는 지치지 않고 이 제품, 저 제품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계속되는 A 씨의 영업에 지친 건 나였다. 나는 A 씨와의 관계를 계산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의 관계는 이익을 따지는 대가 관계로 변질되었다. 나는 결국 지금까지 마신 커피값을 고려해서 내게 필요도 없는 물건을 구입했다. 딱 그 정도의 값어치의 물건으로.


내가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생각한 걸까? 

내가 커피를 팔듯, 그 사람도 먹기 살기 위해 본연의 일을 하는 것일 뿐일까?

그저 카페 사장과 손님과의 관계가 전부인데 공사 구분을 못한 걸까?

그저 돈을 받은 만큼의 재화와 서비스만 제공하면 될 것을 내가 그 관계를 왜곡한 걸까?


친절한 것과 착한 것은 동일하지 않다. 내 앞에서 이 제품, 저 제품 설명하는 그녀를 이제 어떠한 따스함이나 '정'없이 바라만 본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냉담하다. 커피를 사 마시는 A 씨에게 딱 그만큼의 친절만 베풀기로 한다. 그동안 쏟아부은 돈과 시간이 그저 아까울 뿐이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건 내 마음이다. 이익을 따지게 되는 관계는 마음이 버겁다. 나는 그렇게 카페를 운영하며 몸이 체득한 '친절'이라는 가면을 더욱 동여맨다. 난 '착하지 않다', '착하지 않으니 상처 받지도 않는다'며 내 마음을 굳건하게 잠가본다.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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