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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ug 12. 2020

90. 보편적 편견에 갇혀있는 질문들

<보편적 편견에 갇혀있는 질문들>


오늘 손님들께 주문받은 메뉴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우리 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밀크티(내가 직접 만든 밀크티인데, 내가 먹어도 너무 맛있다), 샷을 세 개 넣은 바닐라 라떼, 따뜻한 페퍼민트티, 얼음을 가득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흑임자라떼 그리고 바닐라밤라떼까지. 하나도 겹치는 것 없이 가지각색이다. 머리에서는 순식간에 최적의 동선을 계산하고 몸을 움직인다. 뭐, 이 정도는 이제 식은 죽 먹기지! 


손님들에게 드릴 음료와 내가 마실 카페라떼를 들고 테이블로 간다. 이미 손님들 사이에는 하하호호 이야기 꽃이 피었다. "자, 여러분 오늘 책 다 읽어오셨어요?" 그래, 오늘은 손님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다. 손님들은 저마다 책을 읽은 소감을 이야기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는 점점 깊어진다. 책 속의 이야기와 자신의 삶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때론 책 속의 등장인물과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커피로 목을 축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부모님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테이블로 올라왔다. 


나는 이 질문에 아빠의 '설탕 국수'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팔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 탓에 어렸을 때부터 노동은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일하고 받은 품삯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생계를 위해 쓰였다. 그리고 남은 쌈짓돈으로 아빠는 국수를 샀다. 국수는 싸고 양이 많아서 끼니로 제격이었다. 삶은 국수에 고기니 야채니 올리는 건 낭비고 사치였기에, 아빠는 그 위에 사카린이나 설탕을 쳤다. 아빠는 설탕을 끼얹은 국수가 그렇게도 맛있었단다. 아빠는 그때의 추억과 맛을 잊지 못해 가끔 나에게 설탕 국수를 만들어줬는데, 나는 도저히 한 젓가락 이상 들 수 없었다. 아빠는 왜 이 맛있는 걸 남기냐며 내가 남긴 국수까지 꾸역꾸역 드시곤 했다. 국수를 먹는 아빠의 표정은 참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호했다. 맛있게 후루룩 들이키는 것 같다가도, 그때 그 시절의 시간에 잠겨 멍하니 젓가락질을 하다가, 눈시울을 붉히다가 다시 후루룩 후루룩 순식간에 국수를 들이켰다. 설탕 국수 한 그릇에 담겨있는 아빠의 삶의 무게는 아직도 다 헤아리기가 어렵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했다. 그래서 단골손님 한 분께 "부모님 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뭐예요"라고 여쭤봤다. 손님은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힘겹게 대답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요. 그냥, 그냥 엄마가 해준 밥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나는 순간 숨을 들이켰다. 아. 어째서 몰랐을까. 왜 몰랐을까.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보편적 편견에 갇혀 살고 있었는지를. 삶의 형태가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손님들이 주문한 음료가 가지각색인 것처럼, 손님들의 외모, 성격, 말투, 행동, 취향, 맛, 스타일부터 가족의 형태까지 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왜 그 사실을 지금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까. 태어나서 아빠,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가족을 만나고,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사는 삶의 형태가 '기본'이고 '보편적'이라는 틀에 갇혀있는 나 자신을 깨닫는다. 


깨닫고 나니 보인다. 내 평소의 언어습관이 얼마나 편견적이며 자기중심적인지를.

결혼했으니 이 시기 즈음에는 자녀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자녀는 지금쯤 중학생인가요?"

대학교는 당연히 나왔겠다는 전제하에, "전공은 뭐예요? 몇 학번이에요?"

부모님은 당연히 계시겠지라는 생각에,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 뵈러 가시겠네요?"

동성애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여자에게는 "남자 친구 있어요?", 남자에게는 "여자 친구 있어요?"

다문화가족에 대한 생각도 없이 "고향은 어디예요?"

내 생각 없는 질문 하나,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 파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이런 상황에 대처능력이 없던 나는 찰나의 순간을 억만금의 시간처럼 느끼며 굳어있었다. 다행히 손님은 유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오히려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손님께, 아니 취미를 같이 나누는 모임 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많은 걸 배운다. 나는 아직도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걸 배워야 하는 어린아이구나 깨닫는다.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산문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

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내가 뱉은 한 마디의 말이 상대방에게는 유언이 될 수 있음을, 그 사람의 마음에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오늘은 많은 것을 반성하고 깨우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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