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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27. 2020

73.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갖다 팔라고 하셨어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갖다 팔라고 하셨어>


퇴사 후 카페를 처음 시작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나보다 더 바빴다.

시장에서 질금이며 생강이며 온갖 재료를 사다가 식혜, 생강차, 꽃차를 만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에게 벌컥 화부터 냈다. "내 카페 컨셉하고는 안 맞는다고!"

엄마는 딸이 저렇게 소리치는 게 한두 번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가볍게 무시하고 신나게 만든다.

결국 카페를 오픈하고 엄마가 만든 식혜, 생강차, 대추차, 꽃차를 메뉴에 넣었는데 그 달의 인기 메뉴가 되었다.

엄마는 것 보라는 듯이 웃는다. 이제 카페에는 전통차를 위한 앤틱 찻잔이 여러 개 구비되어있다.


그 후로도 엄마는 여러 번 나를 들들 볶았다. "이번엔 엄마가 초콜릿을 만들어봤어."

과일을 사다가 세척해서 썰고, 일일이 널어 말리고, 말린 과일칩들을 녹인 초콜릿 위에 올리고.

하나하나 다 수작업이다. "엄마, 이건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 뭐하러 이런 걸 만들어?"

엄마는 듣는 척 마는척하며 과일 초콜릿 20세트를 만들었다. 나는 곱게 포장된 초콜릿을 뜯어 내 입에 넣는다.

"엄마, 이건 단가도 안 나와. 딸기, 오렌지, 자몽, 블루베리에 초콜릿 칩에. 이걸 하나에 얼마에 팔라고? 사람들이 비싸서 안 사간다고." 엄마는 기어코 카페에 와서 초콜릿들을 쇼케이스에 욱여넣고 간다.


초콜릿 다음은 때수건이었다. 엄마는 오래전 아빠가 사둔 재봉틀을 꺼내어 새벽 내내 드르륵 때수건을 만들었다. 어린아이들도 사용할 수 있는 인견 때수건이라며, 밤새 만든 50장의 때수건을 보여준다. 나는 한숨부터 쉬었다. "엄마, 카페에 이런 걸 어떻게 내다 팔아? 못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카페가 너무 잡화상점 같잖아."

엄마는 제발 가져가서 하나라도 팔아보라고 한다. 결국 나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알겠다'라고 대답한 뒤, 때수건 50장을 모조리 집에 들고 왔다. 카페가 아닌 집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카페에 못 내다 팔겠다. 결국 50장 중 한장은 오늘 밤 내 팔이며 다리의 때를 미는 때수건이 되었다. 그나저나 정말 잘 밀린다.


그 뒤로 엄마는 '식혜는 몇 잔이나 팔았니', '초콜릿은 안 모자라니', '때수건은 더 만들까?' 하고 연락이 왔다.

사실 카페 문도 여러 날 닫았던 터라 음료는 버린 게 더 많았고, 초콜릿은 모조리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

때수건? 때수건 49장은 우리 집구석에 쌓여있다. 나는 당최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엄마는 시장에 나가 원단을 떼왔다. 꽃무늬, 줄무늬, 땡땡이 여러 원단이 집에 쌓여있다.

이번엔 뭘 만드려고 저러시나 지켜본다. 엄마는 며칠 뒤 나를 불러 "집에 짐이 많으니, 좀 들고 가렴" 하신다.

뭔고 하니 마스크다. 천 마스크. 그것도 무려 소형, 대형으로 100장씩이나.

"엄마, 설마.." 엄마는 나를 흘겨본 뒤 말한다. "그래 가시나야. 이것 좀 갖다 너네 카페에 팔아봐."

난 한숨을 쉬고 말한다. "엄마, 인건비도 안 나오겠어." 엄마는 그 말에 "인건비가 제일 싸"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운 건지 눈 밑이 퀭해져 있다. 하루 내내 원단을 자르고, 미싱을 박아내느라 손은 까칠해져 있다. 지난번 만들어준 때수건이 그대로 집에 쌓여있는 게 생각난다. 나는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아니! 왜 이렇게 수고스러운 일을 해?! 이걸 카페에다 어떻게 내다 팔아? 사람들이 이걸 왜사가!" 나는 쾅 문을 닫고 집을 뛰쳐나간다. 당황하는 엄마를 못 본 척, 나를 잡으려는 그 까칠한 손을 내팽개치고 뛰쳐나간다.


뛰쳐나가 집 근처를 배회한다. 날은 이다지도 밝은데, 내 마음에만 어둠이 왔다. 날은 이렇게도 따스한데, 내 말에는 겨울이 왔다. 잠시 후 아빠가 저 멀리 내려오는 게 보인다. 잠시 걷자는 아빠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지만, 아빠는 묵묵히 내 옆을 걷는다. "너네 엄마, 그거 며칠 내내 밤새서 만들었어. 너도 카페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아빠도 바다에 나가고, 엄마가 집에 있으면서 마음이 좌불안석인가 봐. 무언가 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엄마한테 일 시키는 곳도 없고, 엄마가 할만한 일자리도 없고. 엄마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거야. 엄마가 살기 위해 애쓰는 거야. 엄마의 마음이 살려고. 살아보려고."


처음 엄마가 만든 식혜, 생강차와 대추차를 카페에서 팔았을 때 엄마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했다.

재료값을 주겠다고 해도 "내가 그 코 묻은 돈 받아서 뭐하겠니"라고 말하며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다.

자신의 이름을 버린 채,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주부'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35년 이상을 살았던 엄마.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줌마'였는데, 생애 처음으로 직접 만든 음료들이 판매되는 순간 기뻤으리라.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딸에게 조금이나마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찼으리라.

할 줄 아는 거라곤 요리와 바느질인데, 이걸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을 것이라.



내가 초등학생때 쓰다 내다버린 좁아터진 책상에서 때수건과 마스크를 만드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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