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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ug 06. 2020

89. 누구나 자신의 언어만큼 살아요.

<누구나 자신의 언어만큼 살아요>


얼마 전 나는 카페의 운영시간을 일주일에서 하루로 변경했다. 이런 파격적 행보에 경비아저씨부터 단골손님, 친구들에게 무수히 많은 질문세례를 받았다. 아마 내가 가장 많이 한 답변은 이것일 것이다. "아니요, 저 건물 안 샀어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몇몇 손님들에게 왜 며칠째 카페 문이 닫혀있는 거냐며 전화가 오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카페를 일주일 내내 열었던 때보다 무진장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주일에 3일은 동네 사람들과 모임을 한다. 함께 정해진 시간에 모여 책도 읽고, 독서토론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는 커피는 그 어느 때보다 향긋하다. 나의 취미생활을 함께 하며 행복을 나눈다. 나는 오롯이 이 시간을 위해 카페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린다.


모임이 없는 날이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특히 요즘 같은 날씨에는 더욱이.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에 정박되어있는 배가 하염없이 흔들린다. 아빠는 배가 떠내려갈까 전전긍긍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배를 보러 나간다. 마을 사람들은 계속되는 폭우에 배를 육지로 올렸다. 당분간 생업인 어업을 재개할 수 없으니 속만 타들어간다. 날씨만큼이나 축 쳐져있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 나는 괜히 호들갑도 떨어보고, 농담도 툭 던져본다. 별로 재밌지도 않은 시답잖은 말을 해도 엄마 아빠는 그게 너무나도 재밌다는 듯이 하하호호 웃는다.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님에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엄마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 나는 이 일상을 온 힘을 다해 지키고 싶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으니 나의 말도 달라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좋아요"라는 말을 달고 살기 시작했다. 비가 우중충하게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모임에 참석해주시는 손님께 "와주셔서 고마워요", 오늘따라 커피 향이 너무 향긋하다는 손님께 "감사해요", 서툰 솜씨로 붓질을 하는 손님의 노력이 아름다워서 "그림 너무 좋네요"


집에서도 마찬가지 었다. 나 대신 화장실 불을 꺼준 아빠에게 "고마워요", 내가 좋아하는 빨간 양념 오뎅 반찬을 만들어준 엄마에게 "사랑해요" 워낙 감정표현에 인색한 무뚝뚝한 경상도 부모님은 내 표현에 어색해했다. '안하다'라는 말도 잘 못하시는 부모님. 그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너무 가슴 아프도록 미안해서 되려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 마음을 아니까, 그래서 내가 더 표현을 해보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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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언어만큼 산다. '고마워'를 많이 하는 사람이면 고맙게 사는 사람이고, '사랑해'를 많이 하는 사람이면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다. 반면 '늦었네'를 많이 하는 사람이면 느리게 사는 사람이고, '힘들어'를 많이 하는 사람이면 모든 순간에 허덕이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았던가? 그리고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내가 치열하게 지키고 싶은 하루의 소중함, 그 일상의 행복함을 위해 나는 오늘도 말해본다. 고맙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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