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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 후 온전한 퇴각론

이별학

by 늘 담담하게

오래전에 선배가 늘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너희들은 아직 잘 모를 테지만, 사랑하는 일보다 헤어지는 일이 더 어려워.."


"우리 그만 헤어져하고 돌아오면 모든 게 다 끝날 것 같지? 아니 뭐 며칠 동안 몹시 힘들고 괴롭고 술좀 마시고 그렇고 그러면 잊힐 것 같지?.. 아니야... 잊은 듯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또 지옥 같은 고통이 찾아와.. 잊을만하면 또 아프고... 그렇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게 이별이야...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것 같거든...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몸과 마음은 그 상처를 기억해. 이별한 상대를 떠올릴만한 기억과 마주치면 다시 아파져. 그래서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별을 호되게 겪으면 두 번 다시 사랑하기가 쉽지 않아.."


그는 정말 이별에 도가 튼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런 그가 몇 년 후에 그러니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 다시 우리에게 온전한 퇴각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애정이 깊었건 깊지 않았건 헤어질 때가 중요해..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은 알고 있잖아... 약삭빠른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별이 가까우면, 전쟁에서 퇴각을 해야 하는 것처럼 준비를 해야 해.. 퇴각이라는 게 뭐야... 물러나는 거잖아... 대개의 관계에서 보면 그냥 대책 없이 머물러 있다가 뒤통수 맞는 경우도 있고 무참히 깨어지고 피투성이가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온전한 퇴각이 필요한 거야. 최대한 자신을 지키면서... 감정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후퇴하는 거지. 이미 이별의 조짐이 보인다면 그 어떤 노력을 해도 메꿀 수가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깨끗하게 보내주고 뒤로 물러서는 거야.. 이별을 준비한다고 것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와 상처를 최소화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물러나는 거야..


어떤 과정이냐고? 전화번호도 지우고, 상대방의 SNS를 엿보는 것도 하지 말고, 그와 관련된 것들은 최대한 지우고 헤어지는 마당에 상대방을 비난할 필요도 없어, 비난은 부메랑처럼 결국 되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렇게 자신을 지키고 물러서면 말이야.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그러니까 다시 누군가에게 진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거야.. 왜? 전투에서 처참하게 싸우다 망신창이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의 이론에 대해 대다수는 비겁하다느니.. 말도 안 되느니 했지만... 이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살인사건까지 나는 것을 보면 그때의 그의 이론이 말도 안 되는 괴변은 아닌 것 같다.


온전한 퇴각론... 나중에 그는 그걸 이별학이라고 이름 지으며, 정교한 삶의 이론으로 만들어서, 직장 후배들에게 목사님의 강론처럼 하곤 했었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별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했던 그. 자정을 넘긴 이 순간... 그의 기억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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