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다테에도 봄이 왔어요
어제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다녀왔어요. 하코다테역에서 재래선 기차를 타고 40분, 역에서 내려 걸어서 20분쯤 가면 나오는 봉쇄 수도원이에요. 행정구역상으로는 호쿠토시에 속해 있는 이 수도원을 찾아간 것은 오랜만에 기차도 타보고 싶었고, 도시를 잠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간 거예요. 수도원으로 가까이 가면, 양쪽으로 포플러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데 그 길의 이름은 로마로 가는 길이라고 해요.
수도원은 지난해 하코다테에 처음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갔었는데 이곳 사람들이 가을 단풍도 아름답지만 봄의 벚꽃도 괜찮다고 해서 다시 갔어요.
수도원의 가을풍경은 아름다웠어요. 이곳은 남자 수도원이라서, 여자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만 올 뿐이에요.
벚꽃이 피는 길, 로마로 가는 길에 서서 수도원을 바라봤어요. 이 길의 끝이 정말 로마로 이어지는 걸까요?
나는 이 길의 끝이 당신이었으면 했어요. 저 멀리 보이는 붉은 벚꽃아래서 당신이 있었으면 했어요..
부질없는 기대이겠지요..
가을에는 단풍의 모습을 보여줬던 주변의 풍경은 봄을 맞이해서 예쁜 벚꽃 풍경으로 바뀌어져 있었어요
그래도 날씨가 좋아져서인지, 감기 기운도 이제 사라지고, 우울한 감정도 많이 나아졌어요.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아무것도 신경 쓸게 없어서 그런 것도 같고... 아무튼 처음 당신을 떠나 올 때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수도원 입구에서 서서 당신을 위해 기도했어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했던 당신, 이제는 더 이상 자책하지 말아요.
수도원 부근을 걷고,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어느새 하코다테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네요. 천천히 역을 향해 걷다가 다시 한번 뒤돌아보았어요, 이 길, 이 길의 끝에 언젠가는 당신이 있기를...
모토마지 언덕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어요.
도시가 작아서인지, 하코다테의 봄은 더 애틋해요, 아침과 저녁에 산책을 나가면 이제는 익숙한 전차의 모습도 그렇고, 모토마치의 언덕의 성당들도, 해 질 녘 공원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모습도,
아마도 그건 이곳을 여행자로 잠시 머물다가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오랫동안 살아서 더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당장 오늘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걸었는데 그 풍경의 아름다움이란...
꽃비라고 해야 할까요... 바람에 흩날리는 그 벚꽃들의 풍경에 한참을 서 있었어요
그 쏟아지는 벚꽃을 보며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돼요..
왜 그렇게 살았는지... 왜 좀 더 이해할 수는 없었는지... 왜 그리도 조급했는지..
처음에는 이곳에서 조금만 있으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머물게 될 것 같아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