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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Sep 23. 2024

뉴욕의 12월

Merry Christmas in New York

뉴욕의 크리스마스는 한 번쯤 누구나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매년 뉴욕의 Rockefeller Center에서는 아주 크고 화려한 트리를 장식하고 점등식을 한다. 큰 행사라 12월 점등식 시즌에는 그 주변을 가려면 정말 많은 인파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 교환학생으로 뉴욕에 온 언니와 친해지게 되어 점등식을 같이 보러 가게 되었다. 점등식 날은 정말 추웠다. 점등식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선 적어도 4~5시간 전에는 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4시간 정도 전에 갔다. 입구까지 들어가는 데에도 사람이 정말 많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 괜찮은 자리를 잡고 4~5시간이 흘렀다. 사람은 많고 날씨는 춥고 다리는 아프고 이날 왜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다리는 이미 만신창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점등식이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렸고 알고 보니 이것은 다 라이브였다. 한 30~40분가량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고 마침내 점등식이 시작되었다. 모두 “Light the tree!”라고 소리쳤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FIVE FOUR TREE TWO ONE ~ WOW~OH” 아름다운 트리 앞에 입을 벌리고 감상했다. 살면서 본 크리스마스트리 중 가장 아름다웠다. 옆에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Happy Merry Christmas”라며 인사를 했다. 그렇게 모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던 중 아주 멀리 무언갈 보게 됐는데 바로 Rockefeller center 앞 트리를 둘러싸고 있던 빌딩 안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엽서에서나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모든 것이 낭만적인 뉴욕에서의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은 나에게 가장 낭만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뉴욕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Saks Fifth Avenue에 있는 백화점 외관에 엄청난 규모의 반짝이는 불빛이 성 모양으로 크리스마스 음악에 맞추어 정해진 시간마다 화려한 동화 속 모습을 연출해 내는 것이다. 그곳을 지나다닐 때면 너무 환상적이라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뉴욕에서의 12월은 내가 상상해 왔던 크리스마스 시즌의 분위기와 낭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은 나에게 다른 날들과 비슷하게 지나가는 날 중 하나였다. 딱히 기념일을 챙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우리 가족은 교회에 가 성탄 예배를 드리는 게 전부였다. 크리스마스 외에도 낭만이 존재하는 기념일을 충분히 즐기고 느끼고 지나가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낭만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문화의 차이 일 수 있다. 모든 빠르게 경쟁하면서 최고여야 하는 문화가 깊이 자리매김한 한국 사회에서는 낭만을 즐기는 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누구보다 빠르게 잘 되기 위해 경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난 그런 삶은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하루에 생겨나는 낭만적 순간 혹은 그 감정들을 흡수하며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니 MOMA 미술관에 그림을 감상하러 갔을 때 나이가 있으신 한 신사분이 내게 말을 거셨던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당신은 그림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사람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왜 아시아인들은 그림을 감상할 때 사진만 찍고 바로 다음으로 지나가는지 물론 모든 아시안 인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것들을 마치 점만 찍고 가는 듯이 감상하는지 물어보았다. 나도 너무나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신사분과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이처럼 우린 우리가 충분히 즐겨도 되는 시간을 마치 스킵 버튼을 누르며 유튜브를 보는 것과 같이 넘겨버린다. 그것이 우리의 감정의 폭을 좁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 시간을 즐기고 많이 느끼길 바란다. 그 시간은 누군가와 경쟁하는 시간보다도 더 값진 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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