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향러를 응원하고 싶어서 글을 써요
어느 날 직장 상사가 나에게 “예민하구나”라고 스치듯 한 마디 건넸다.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피식, 웃으면서 “뭐래, 내가 어디가 예민하다는거야.”라고 속으로 꿍얼거리며 무시했다. 분명 무시했었는데, 그날 밤 자기 전에 ‘나는 예민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에 이어 내가 언제 사람들에게 히스테릭하게 굴었었나, 혹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나라는 사람을 예민하게 느낀 지점이 무엇이었을까, 오랫동안 일하면서 예민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내가 변할 걸까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이 질문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면 지날수록 내게 넌 예민한 사람이니 이제 그만 인정하는 게 어떠냐는 내면의 말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예민한’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불편한 마음이 들었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민함은 까칠하고, 신경질을 잘 내거나, 무언가 부드럽지 않은, 같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 스스로도 날카롭고 삐죽거리는 성게모양의 폭탄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었기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부터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책을 읽어보며 예민함과 섬세함은 비슷하게 쓰이는 단어임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도 예민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졌다.
사전을 찾아보면 ‘예민하다’의 뜻은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3)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라고 나와있다.
날짜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단순히 아, 힘들다는 것을 넘어 몸이 이상한데? 이러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을 때에는 이미 몸 상태가 엉망진창 구렁텅이였다. 아픈 몸을 이끌어 간신히 출근해서 온갖 에너지를 업무 시간에 쏟아놓으며 버티던 어느 때즈음 친한 동료가 내 얼굴빛이 회색빛처럼 아파 보인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이 있느냐며 입술이 'ㅅ' 모양이 되었다고 괜찮은 것인지 안부를 물었다. 타인도 알아챌 정도의 나의 변화는 결국 퇴사로 나를 이끌었다.
퇴사 후, 나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나를 버려두었을까, 몸이 이 정도로 아파야만 일을 그만두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앞으로 나는 일을 할 수 있기는 할까, 등의 걱정으로 시작된 나를 잘 알고 나를 잘 돌보는 방법을 찾는 여러 가지 방법의 알아차림과 도전과 실패가 시작되었다.
예민내향러라고 나 스스로가 인정한 뒤로 나에게 일어나는 상황들에 대해 '왜 나만 이렇지?'라는 질문보다는 '아, 나는 이럴 때 이렇구나. 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구나. 최소한의 이런 것들이 보장되어야 괜찮아지는구나.'라고 나를 알아차리고 깨달아가며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친구들에게 건넨 나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와 생각의 변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예민함을 가지고 있는 내향러가 건강한 나로 잘 살아남기 위해서 이리저리 고민하고 경험하고 도전해 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응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