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가입자는 약 2000명. 여행 카페와 마찬가지로 가입할 때 닉네임이 필요하다.
'영어 이름으로 해야 하나.'
초등학생 때 버디버디 아이디를 고민했을 때만큼 절실함은 없지만 은근 신경 쓰인다. 이것저것 입력해 보았는데 이런. 다 있다. 하기야 가입자가 2000명이나 있는데 웬만한 영어이름은 이미 다 활동하고 있다.
'뭐 대충 지어놓으면 되겠지.'
한기로 온몸이 꽁꽁 어는 오늘같이 추운 날 떠오르는 단어 몇 가지를 조합하여 닉네임을 뚝딱 만들었다. 그렇게 카페 가입도 완료하고 대충 독서 모임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도 알았다.
화요일 / 토요일 공지란에 올라오는 '독서 모임 참가 신청' 글에 참가 신청을 하면 끝이다.
'시작은 한 건가.'
난 무언가 처음 시작할 때 '시작'이라는 두려움과 부담감, 그 어색함과 새로움은 공평한 줄 알았다. 하지만 시작을 할 때 부담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대학생 때 알았다.
같이 재수해서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호감을 아낌없이 보여줬던 친구가 있었다. 호탕하고 발랄한 에너지가 순수해 같이 있으면 재미있었다.
"J야! 나 운전 학원 등록했다."
"운전면허 따게? 아, 나도 따야 하는데."
"오! 너도 아빠가 차 뽑아준대?"
"차? 아니. 그냥 운전면허는 빨리 따면 좋다고 해서."
"차도 없는데 운전면허를 왜 따?"
"음, 아빠 차로 운전을 할 수 있으니까…?"
가끔 아주 가끔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이 생긴 건 아마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면서부터였을 거다.
"J야! 방학 때 해외여행 가자!"
"나 방학 때 아르바이트 해야 해."
"아르바이트 무슨 요일에 하는데? 그때 피해서 가자! 일본은 가깝잖아! 나 일본 안 가봤어! 일본 가자!"
"아, 나 공장 아르바이트해. 이건 매일 나가야 해서 날짜 맞추기 힘들 것 같아."
"공장 아르바이트는 뭔데? 누구랑 해? 나도 그럼 여행 말고 아르바이트나 할까. 그것도 경험이잖아."
그때, 그 순간. '아마 넌 못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넘쳤던, 얼굴도 깐 달걀처럼 뽀얗고 매끈하게 예뻤던 그 친구.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은 뾰족뾰족해졌다. 그 뾰족한 끝은 친구를 향하지 않고 나를 향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처음으로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J 너도 그 책 읽어?"
"도서관 갔는데 재미있어 보이길래 빌렸어. 너도 이 책 읽어?"
"나는 아빠가 한 달에 한 권씩 베스트셀러 사주시거든."
"오, 멋진 분이시네. 어땠어? 재미있었어?"
"다 못 읽었어. 반은 읽었던 것 같은데."
출발선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걸 질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없는 걸 너는 가지고 있구나. 그렇구나. 그렇군!'
신기하게도 인정하니 울렁거리던 마음은 잔잔해졌다. 그러니 같은 상황일지라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다! 비록 부담감은 서로 다를지라도 '시작'을 하면 누구든 '반'은 한 거다! 뭐든 시작하면 된다! 비록 결말은 달라질 수 있어도 시작한 게 어디인가? 시작은 다른 말로 도전이 아니겠는가.
'시작을 했으니 가봐야지! 반이나 한 게 아깝잖아!'
부담스러울지라도 쫄지 말자. 자신 있게 다음 주 화요일 공지글을 클릭했다. 자신 있게 참가 댓글을 달려고 하는 찰나. 눈에 중요한 한 가지가 탁하고 걸렸다.
'책. 가져갈 책!'
주의 사항만 꼼꼼하게 정독하고 독서 모임에 가져갈 책을 정하지 못했다. 독서 모임에서 책을 빼놓다니. 나도 참 나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고 고민하다가 궁여지책으로 조심스럽게 참여 댓글을 달았다.
'미정.'
일주일 남았다. 무슨 책을 가져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