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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메리

1월 30일 주제- 반려동물

by 생각샘

외갓집은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앞뜰, 앞채, 마당, 본채, 뒷뜰이 있었고 그 밖으로 돌담과 나무담이 빙 둘러쳐서 있었다. 뒷뜰 돌담 밖에는 널찍한 밭이었고 그 밭을 지나면 졸졸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 있었다. 키우는 동물들도 많았다. 누런 소도 있고, 커다란 돼지도 있고, 꼬꼬거리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닭도 있고, 짚으로 만든 작은 집 모양 안에 키우는 벌도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외갓집은 정말 구경거리가 많았다.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으며 불을 피우는 것도 재밌고, 소가 눈을 끔벅끔벅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 여물을 질겅질겅 씹는 모습도 재밌고, 실로 어마어마하게 큰 돼지가 꿀꿀거리며 커다란 궁둥이를 씰룩거리는 모습은 봐도 봐도 재미있었다.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가서 찰박찰박 물장구를 치는 것도 재밌고 조약돌을 주워다 소꿉놀이를 하는 것도 재밌었다. 시골에 가면 재미있는 구경거리, 놀거리가 이렇게 많은데 어른들은 심심해 어쩌냐, 할 게 없어 어쩌냐며 걱정하셨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만 살던 도시 꼬맹이에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걱정이었다. 째깍째깍.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만 마냥 원망스러웠다.

외갓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동물은 메리였다. 메리는 커다랗고 누런 개였다. 누렁이라고 부를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그 개를 메리라고 부르셨다. 메리는 순동순둥한 똥개였지만 이름에 어울리게 종을 소개해줘야겠다.


“우리 메리는 아주 나이스한 시고르자브종이랍니다. ”


외갓집에서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메리와 함께 외갓집 주변의 논과 밭을 뛰어다니며 노는 일이었다. 마구 뛰어다니다가 밭두렁에서 토끼풀 무더기가 보이면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았다. 네잎클로버를 찾지는 못했지만 메리와 함께 한 그 시간이 나에겐 행운 같은 시간이었다.



안녕달의 할머니도 우리 할머니처럼 키우는 모든 개의 이름은 메리라고 부르셨나 보다. 우리 할머니도 그랬다. 개는 바뀌어도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나와 함께 뛰놀던 메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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