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십여 가구 모여사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전기나 상수도도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오손 도손 가족처럼 즐겁게 지냈다.
우리 집은 마을 맨 꼭대기 산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어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그래도 전망은 괜찮은 집이었다. 초가지붕에 방 두 칸, 불을 지펴 밥하는 부엌 하나 있는 가난한 집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조그마한 연못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커 보였었나 모르겠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곤 했다.
때로는 엄마와 아빠는 밭에 나가시고 홀로 집에 있을 때도 있었다. 심심하고 배가 고플 땐 마을 전체가 떠나가라 울어댔다. 그러면 부잣집 착한 아주머니가 나를 데리고 가 도련님 하며 먹을 것을 주곤 했다. 예쁘게 깎은 달콤한 참외 맛이 지금도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 맛을 알았는지 나는 심사가 틀리면 그냥 울어댔다.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었던지 부모님은 매미가 벗은 허물을 끓여서 먹였다고 한다. 그것이 무슨 효험이 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 정도로 많이 울었다. 후에 커서 외할머니는 그때 내가 배가 고파서 그렇게 울었다고 하셨다.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했었다.
그런데 가끔은 엄마 아빠가 일하시는 들로 함께 간 적도 있었다. 엄마는 김밥을 싸서 용샘이라는 개울과 하천이 만나는 밭에서 아빠와 함께 일을 하셨다.
부모님이 밭일을 하시는 동안 나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꿩병아리 뒤를 쫓아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밭 옆에는 개울이 있었는데 그때 내 기억으로 팔뚝만 한 메기 두 마리를 잡았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예닐곱 밖에 안된 나에게 그 메기가 잡혔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때 잡은 메기는 참 신비했고 뿌듯했다.
들판에서 엄마 아빠랑 함께 김밥을 먹는 것은 가장 큰 행복이었다. 엄마 아빠는 참 성실하셨다. 그때가 내 기억으로는 우리 가정이 가난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엄마의 등에 업혀 엄마의 땀 내음을 맡으면 행복이 밀려와 잠이 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