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결혼 승낙

농장집 큰딸 별이

by 온현

"선생님, 선생님은 애인 없어요?"

"선생님 결혼할 사람 생기면 꼭 제게 보여주세요. 제 허락받으셔야 해요."


나를 유난히 따르던 별이(가명)가 한 말이다.


중증 뇌병변 장애로 혼자 움직일 수 없어 전화상담과 가정방문을 병행하던 별이 늘 밝았다. 발음장애가 심해 가족 외의 사람들과 거의 얘기해 본 적이 없었던, TV가 친구인 10대 소녀였다.


별이는 혼자 밥을 먹을 수도, 전화를 하거나 움직일 수도 없었다. 팔다리는 흥분하면 제멋대로 뻗으며 춤을 추었다. 별이가 신이 나면 맞지 않기 위해 거리를 벌려야 했다.

그러면 어떠랴. 별이의 방은 온 가족이 모여 웃고 수다를 떠는 사랑방이었다. 하루 종일 방에 누워 TV를 보고 있으면 동생이 하교하다 들러 하루 일과를 얘기했다. 때로는 동생이 누나의 심한 잔소리에 도망가기도 하고, 함께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나 엄마의 아픈 허리를 걱정하기도 했다. 엄마아빠는 일하다가도 중간중간 별이의 방에 들렀다.


별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한 이미지, AI.

당시에는 지금보다 중증장애인의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별이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총명했다. TV 자막을 보며 혼자 한글을 뗐고 매일 뉴스를 보니 시사에도 밝았다. 가정방문 몇 번에 친해지고 나자 별이의 오지랖이 노처녀 사회복지사의 결혼 문제에도 펼쳐졌다. 매일 기도하고 있으니 선생님은 좋은 배우자를 만날 거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허락해야 한다며 나의 안목을 걱정한 발칙한 친구였다.


별이의 부모님은 서울 근교에서 특용작물 농장을 하셨다. 혼자 움직이지 못하는 딸을 돌보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모듈형 주택을 짓고 딸린 부지에서 농사를 지었다. 어릴 때에는 외출이 가능했으나 자라면서 사지 뒤틀림과 경직이 심해져 휠체어도 쉽게 탈 수 없었던 별이를 위한 집. 모든 공간에 문턱이 없고 넓어서 휠체어가 다니기 쉬운 구조였고 벽에는 지지대가 있었다. 아빠가 설계한 집에서 별이네는 밝고 화목했다.


남편과 결혼하기로 결정할 즈음 나는 막 이직해서 다른 기관에 근무하고 있었다. 결혼날짜를 잡을 때 남편에게 별이 이야기를 했더니 선뜻 허락을 받으러 가잔다.

남편은 이전에 중증 장애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살짝 걱정하며 별이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전화 속 별이는 여전히 밝았다. 드디어 노처녀 선생님을 시집보내는 거냐며 흥분해 엄격한 심사를 예고했다.


대망의 휴무일, 작은 선물을 가지고 별이를 만나러 갔다. 엄격한 심사는 무슨.

의외로 남편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듣자, 별이는 큰소리로 "허락해 드릴게요. 두 분 결혼하세요. 제 기도 덕분인 거 아시죠?"라고 외쳐서 우리를 웃겼다. 남편은 지금도 가끔 자기는 특별한 결혼승낙을 받았던 남자라고 한다.


내 직업은 당시만 해도 낯선 직종이었다. 그래서 별이를 만나러 갈 때 속으로 긴장했다. 배우자가 나의 일을 이해하는 사람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남편이 기대 이상으로 전혀 위화감 없이 처음 만난 별이와 대화하며 친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 마음속에 남편이 믿을 만한 배우자감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것은 이날 이후였던 듯하다.


우리는 그렇게 농장집 큰딸 별이의 기도와 축복 속에 결혼해 31년째 잘 살고 있다.



------ 별아, 늘 밝은 에너지를 나누어주어 고마웠어. 네 안목 덕분에 선생님은 행복해.

너도 잘 지내고 있지?


(내일 당일치기 여행 예정이라 목요일 발행글을 미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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