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고모, 삼촌, 삼촌, 막내 고모.
다섯 남매 중 가장 아빠와 비슷하면서도, 가장 특출난 사람은 고모였다.
고모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는데, 한 마디 툭툭 던지는 말이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남들은 모두 깔깔 소리를 내며 배를 잡고 웃어도, 얇은 미소만 띠는 게 전부인 고모는.
손으로 하는 모든 것에 재주가 있어서, 고추장, 된장, 식혜, 약과, 강정, 못하는 요리가 없었고
재봉틀 하나로 원피스, 가방, 쿠션, 베개, 이불, 커튼을 뚝딱뚝딱 만들었고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써보내 크고 작은 상을 수없이 받았다.
학업 성적도 가장 우수했던 고모였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고등학교를 채 끝마치지 못했다. 오늘이 교복을 입는 마지막 날이라 상상도 못한 어느 날. 할아버지는 마당에 장작불을 때고, 고모의 교과서를 모조리 불태웠다고 한다.
시뻘겋게 치솟은 불길.
재빠르게 숱 덩이가 되어 버린 책,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고모의 처연한 얼굴.
고모는 아마 울지 않았을 것이다. 억장이 무너져도 슬픔을 끝없이 삼킬 뿐, 밖으로 내보이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 고모를 열렬히 흠모했던 고모부는 숱한 사랑 고백 끝에 고모의 마음을 얻은 성공한 남자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나조차도 둘의 부부 금슬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모부는 언제나 원숭이처럼 재롱을 떨었고, 고모는 자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답던 부부 사이에 금이 간 것은 고모가 고모부 몰래 삼촌의 사업 보증을 섰다가 빚을 고스란히 떠맡게 된 때부터였다. 고모는 빠르게 홈패션을 배워 작은 점포를 열었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 혼자만의 힘으로 천천히 빚을 갚아나갔다. 뜨거웠던 첫사랑의 열정이 차갑게 식어버린 고모부는 여기저기 온갖 곳을 기웃거리며 바람 아닌 바람으로 고모 속을 하염없이 긁고 또 긁었다.
고모의 장성한 두 아들이 각자 가정을 꾸릴 무렵,
고모는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나는 서울 살이를 접고 대구 본가에 칩거 중인 상태였다. 나의 실패를 꽁꽁 숨기던 시절이었지만 이 실패와 비견할 수 없이 아픈 고모 앞에 무엇을 감출까. 차를 몰고 대구에서 청주로 달려갔다. 투병 초반의 고모는 조금 야윈 것 빼고는 늘 보던 나의 고모 그대로였다.
"고모, 혹시 기도해드려도 돼요?"
고모는 순순히 몸을 내어맡겼다. 나는 고모가 특히 아프다고 했던 등허리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눈을 감았다. 기도를 시작하는데 환상처럼 눈앞에 고모의 장기가 보였다. 불그스름해야 할 장기가 너무나 검고, 시커멓고, 까맣게 녹아내릴 것만 같아서 눈물이 차올랐다. 이 장기가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고모가 이 암을 이길 수 있을까? 예수 이름으로 기적을 선포하겠노라, 병마를 물리치겠노라 패기 부리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고모 안에 수십 년 삼켜져온 불길,
끝내 숱 덩이가 되어 버린 췌장, 그리고
그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나의 처연한 얼굴만이 오갈 곳 없이 둥둥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