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헤브 May 15. 2024

18화_금강산(북한거주민)

북한 주민과 나눈 대화가 마음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기쁨이 안녕
학교에서 1만 2천 봉 아름다운 금강산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까?
아마 아직 자세히 못 들어봤을 거야
아빠도 그곳에 실제로 가기 전까지는 사실 금강산 존재만 알았거든
그 뜻이 무엇인지 몰랐고, 어떻게 생겼는지는 더더욱 몰랐어
그런데 2007년 늦가을, 아빠에게 북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
오늘은 그곳에 가서 느낀 감정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자 집중해서 잘 들어봐
금강산은 역사적으로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어
봄에는 금강산(물러나지 않는 진리를 향한 굳은 마음)이라고 불렸고, 여름에는 봉래산(신선이 사는 산), 가을에는 풍악산(단풍 든 큰 산), 겨울에는 개골산(바위 뼈 산)이라 했어
아빠는 풍악산에 다녀온 셈이지 그때는 금강산이 단풍 옷을 아직 입고 있을 때였으니까
추위는 매서웠지만, 여전히 금강의 풍채는 아름다웠어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의 봉우리들

수려한 장관 앞에 자연을 사랑하는 아빠는 넋을 잃고 뛰어다녔어


기쁨아, 우리나라는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기 전부터,
한반도라 불리며 수천 년 동안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 왔어
지금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休戰, armistice) 상태야. 휴전이라는 의미는 전투 행위는 중단하였으나 더 큰 의미의 전쟁은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걸 뜻해.

남북한 간 협상으로 지난 70년 간 전쟁이 잠정적으로 중단된 거지, 아예 끝난 게 아니야. 언제든 다시 발발할 수 있고, 같은 민족끼리 슬프지만 서슬 퍼런 총끝을 다시 겨눌 수 있어. 너무나 마음 아픈 현실이지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 힘든 이 나라에서, 통일이라는 주제는 언제부터 더 이상 관심 주제가 아닌 게 되어 버렸어.
현실과 동떨어진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 버린 거야  
아빠가 만난 금강산 지키던 군인들 얼굴은 혹한의 추위로 인해 상할 대로 상해 있었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어
너무 오랫동안 찬 바람을 쐬었기 때문이었어
 기쁨이 네가 매일 바르는 그 흔한 로션 하나 없었던 거야
산중턱, 산봉우리 위에 서 있던 북한 주민들은 작고, 가냘펐어. 아빠가 만난 남자들 키는 160cm를 조금 넘었을까? 그러나 동시에 매우 단단하고 남자다워 보였어

그런 모습은 대체로
모든 고난을 스스로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만들어진단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게 사실이야


오늘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주제를 조심스럽게 꺼내볼 거야.
기쁨아, 네가 어른이 되고 나면 통일이라는 주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 그날을 위해서 아빠가 짧게 경험했던 금강산과 그곳에 사는 북한 거주민에 대해 느꼈던 그대로를 이야기해 볼게.

사랑해 기쁨아
아빠 이야기 늘 경청해 줘서 고마워


2007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대학 축제 한 복판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웅성웅성 대는 소리와 환호성이 이어졌다. 무슨 소리일까?

축제란 역시 환호성이구나 싶었다.

동그랗게 모여있던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고, 누군가는 아쉬운 탄성을 계속 자아냈다.


궁금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시끄러운 것일까? 이윽고 그 한복판에 들어가 직접 내 두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주어졌다


순서대로 다트(Darts)를 던지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북한 금강산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북한이라고? 그것도 금강산에?


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솔깃했다. 2년 2개월, 북한군이 언제든 남침할 수 있었기에 두 눈 부릅뜨고 밤을 새우던 26개월을 국가에 헌납했기에, 북한에 실제로 직접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다트의 타깃은 북한 금강산이었다.


내 순서를 기다렸다. 마지막에 기회가 왔을 때는 이미 빠르게 돌아가는 다트 정확한 지점에 내 다트핀이 꽂힌 후였다. 그 후 대학 어느 부서의 지원을 받아, 개인은 경비를 어느 정도 지불하면 된다 했다. 북한 경계를 통과할 기회를 마침내 갖게 되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께서, 또 한 번의 기회를 내게 마련해 주셨음을 직감했다.


수중에 돈이 없었지만, 몇십만 원 경비를 어렵게 마련하고, 2007년 늦가을, 북한 금강산을 직접 밟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북한 경계를 통과하고 금강산에 도착했던 순간, 나는 가쁜 호흡을 진정하며 소리 없는 기도를 드렸다.


경이로웠다. 국어 시간에 배웠던 금강산을 두 눈으로 마주하며 숨죽여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수려한 산봉우리, 남한 땅에서 내가 경험한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산과 산맥, 수많은 나무와 붉게 물들여진 단풍잎을 보는데, 경외감에 차 한 참 넋 놓고 가만히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분의 손길로 이루어진 대자연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당시 같이 갔던 지인들이 있었기에 그들과 아름다운 풍악산, 금강산에 대해 잠시 잠깐 서로가 느낀 감정을 교류했다. 그러나 금강산 곳곳에 새겨진 붉은 글씨의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글씨는 금세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도대체 그 누가 금강에 손을 댈 자격이 있단 말인가? 옛 선조들이 아시면 모두 슬퍼하실 일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따라 산을 올랐다. 점심에는 저 아래 목련관에서 남한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있는 음식이 마련되어 있다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평생 단 한 번 밖에 올 수 없는 이 땅, 금강산을 더 오래 보기로 했다. 최대한 금강산 구석구석을 바라보고 싶었다


물론 정해진 시간까지 무리에 합류해야 했지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20대 후반 아직 체력이 비교적 좋았던 때였기에 금강산을 뛰어다니다시피 오르며 남아있는 시간을 아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광경을 오래 새겨두고 싶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사랑했던 나는 카투사(KATUSA)에 떨어지고 나서 육군에 입대하기 전,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으로 저를 보내 주세요. 그렇게 갔던 곳이 동해 앞바다였으니, 주님은 그때도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 참으로 성실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이셨다.


금강산을 오르다, 어느 봉우리 위를 오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북한 안내원들이 있었다. 낮은 산봉우리 위여서 그런지 삼엄히 경계하는 군인은 없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나보다 키가 작지만 단단한 풍채를 지닌 3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북한 남성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스물몇 살 북한 여성 한 명이 서 있었다.


한참 넋 놓고 금강산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중에 어렵지 않게 그들과 가벼운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을 지나는 관광객이 가끔씩 있었으나 나처럼 우두커니 한 참 그곳에 서 있던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북한 남성이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군대 다녀왔습네까? 얼마 다녀왔습니까?
저는 2년 조금 넘게 군생활을 했습니다.
그게 군생활입니까? 그는 웃으며 농담조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은 10년 넘게 군생활을 했다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그 힘든 군생활을 어떻게 10년 넘게 하셨습니까?
하하하, 북한 남성 중에 군인이 되면 다들 그렇게 합니다
아 네~
슬픈 현실, 저 글을 새길 때 금강산 바위는 분명 많이 아팠을 것이다 다시 반복되면 안되는 역사다


북한 여성이 재차 내게 물었다


그쪽은 대학생입니까?
네 저는 대학생입니다
그렇다면 대학생으로 북,남한 통일을 위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네?
북한 통일을 위해 학생회 활동 같은 거 안 하십니까? 통일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냐 물었습니다
... 저는 특별히 북한을 위해 했던 일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다음에 언젠가 다시 만날 때는 통일을 위해 무언가 하는 사람이 되어 다시 마주치면 좋겠습니다
북한 사람들, 이곳 주민들은 남한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압니다
그들의 옷 입는 것만 봐도, 얼굴에 웃음기만 봐도, 북한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산다는 걸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힘듭니다
이 추운 산에 있지만, 다들 이 직업을 원합니다. 먹고 살 어느 정도 돈이 되니까요
보통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안내원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네, 몰랐습니다. 기억하고 돌아가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게요.
꼭 그러길 바랍니다.


그 후, 한 참 동안 남한과 북한, 북한과 남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의 이야기들은 내 마음에 너무 큰 충격이었기에 문자 그대로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일상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 말고는 다른 기억은 나지 않는다.


2년 2개월 군부대에 있는 내내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고작 몇십 킬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북한이라는 땅이 있는데, 왜 우리는 가지 못한 채 이렇게 슬픈 역사를 오래도록 갖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통일과 계속 거리가 멀어지고 있을까? 여기에 책임지고 뛰는 사람들은 진정 아무도 없다는 말인가? 사실이 아니겠지만 여러 생각 속에 고작 한다는 것이 피곤한 두 눈을 비비는 것뿐이었다. 그저 그렇게 내 고민은 일단락되었다.


2008년 7월 피격 사건이 있은 후 남북관계는 경색되었고, 이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었다. 2024년 여전히 남과 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며,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면 통일에 대해 기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 하나 통일이라는 주제를 평상시에 꺼내는 사람은 주위에 없었다. 슬픈 일이었다.


그때의 일을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마도 지금 이 시간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북한 사람 두 명을 통해 들은 북한 거주민들의 일상은 참혹하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남한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곳 주민들은 먹을 게 없어 날마다 굶어 죽는다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아프리카 케냐에 갔을 때 실제로 길거리에서 앙상하게 말라 쓰러져 죽어 있는 한 사람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던 경험이 지금 되살아난다. 슬프다.


세상 이곳저곳이 아파하고 있다. 그날 북한 안내원을 통해 들었던 북쪽 동포들 현실은 참혹했다. 나와 그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태어났냐의 차이에 불과했다. 내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어쩌면 나는 굶어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남한에서 태어났다면 그들은 그래도 교육을 받고, 초중고를 다니며 자신의 꿈을 향한 나래를 펼칠 최소한의 기회는 보장받았을 테다. 가슴이 아팠다. 


시간이 다 되어 북한 주민들과 인사를 해야 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반갑게 인사하자 했다. 거짓말 같지만 나는 목련관까지 뛰어 내려가는 내내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 가엾은 사람들을 돌봐주세요 주님하고 탄식이 깃든 간절한 기도를 계속 쏟아내었다.


케냐 나이로비 어느 외진 길거리에서 말라죽어 있는 사람을 보던 그날, 나는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아파 쓰러져 있는 게 아닐까 순간 생각했다. 그러나 몇 미터 앞에 그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엎드려 오랜 시간 누워 있었다. 그곳에 가기 전 듣기만 했던 슬픈 그 이야기가 비로소 실제라는 사실 앞에 나는 무력했고 그날 밤 역시 많이 울었다. 


사랑하는 하나님, 어찌 된 영문인지, 세상은 기아와 전쟁으로 오늘도 아파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고, 남성들은 국가에 부름을 받고 총을 거머쥐고 전쟁터에 나가, 누군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전쟁이 없는 땅 역시, 여전히 사회적 갈등과 다툼이 끊임없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어렸을 때 간직했던 동심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채, 다른 사람을 속이고 배척합니다. 우리에게 사랑하라 말씀하셨는데, 믿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그리스도인 다움을 잃어버린 채 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종교인이 아니라, 신앙인으로 살게 해 주세요.

여전히 나는 통일을 위해 특별히 하고 있는 일이 없다. 부끄럽다. 이 글을 쓰는 것 말고는 그간 통일을 위해 직접적으로 한 것이 없었다는 게 부끄럽다. 다만 그런 형편에 놓인 노숙자를 한동안 찾아갔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었던 만큼 다가가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였을 뿐이다. 내 아이가 아파서, 내 아내가 아파서 그들을 돌보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 밖에 댈 수 없어 이 시간 아프다. 그러나 내 아이에게 꾸준히 통일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줄 것이고, 내 곁에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계속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이념 논쟁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정말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주위에 슬퍼 고통받는 그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나 혼자 다 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 역시 너무 버겁기에, 홀로 그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 하면 할 수 있다. 여럿이 마음을 모으면 한 사람을, 한 가정을 살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얼까?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고 노력해야 하는 시점을 우리 모두는 여전히 통과하고 있다


평화 통일을 꿈꾼다. 기쁨이가 어른이 되면 통일을 실제적으로 논하는 세상이 되어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그렇게 되기를 염원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땅끝 안에는 북한이 포함된다. 북한을 포함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갈등과 증오, 차별과 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이가 없다고 나는 믿는다. 내 생각을 강요할 마음은 없지만 내 생각을 숨길 이유는 더더욱 없다. 진정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를 원한다



금강산의 맑은 물처럼,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 지길 원한다. 먼저 예수를 믿는 자들이 그 본이 되길 원한다.


부끄러운 기독교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기독인이 되면 좋겠다.




목련관이 아름다운 금강산과 잘 어울렸다.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어서 목련이 피었으면 좋겠다. 자유와 평화가 그들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70년 넘게 하루살이처럼 살아가야 하는 그들 삶이 우리 남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바뀌면 좋겠다.


        
            
                
                    
                    
                
            
        
    





기쁨아, 아빠가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기쁨이
북한 이야기 듣고 나니 마음이 어때?
평화 통일은 너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업이야.
네가 어른이 되어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이 되거나,
소외되고 어려운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멋진 U.N 사무총장이 되거나,
평범한 시민으로서 네 자리를 지키는 한 사람이 되거나 중요한 건
그 어떤 모습으로 살지라도, 네게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면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을 보내는 것이야
그게 습관이 되어야 하고, 그게 네 삶의 즐거움이 되어야 해
평화 통일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그 몫을 감당하길 바래
부탁할게
다른 사람들 시선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너는 너의 일을 하면 돼
그것이 무엇이든 당당하게,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모험을 한다는 마음으로
진짜 어른이 되어주길 바랄게
 
너는 할 수 있어

아빠랑 매일 외치지

나 기쁨이는 할 수 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아빠는 우리 기쁨이가 정말 자랑스러워
열 살이지만, 열 살 같지 않을 때도 많아
너는 너무나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아빠 엄마를 사랑해 주는 부모 같은 아이야
아빠가 힘들면 안 된다고, 아빠 모든 몸을 따뜻한 이불로 덮어 주는 너란 존재는 내게 작은 예수야
엄마가 힘들어 보인다고, 엄마 볼에 뽀뽀해 주는 너란 아이는 작은 천사야
그래서 아빠는 이 힘든 터널을 넉넉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 같아.
비록 체력적으로 힘들고 자주 지치지만, 예수님이 주신 커다란 소망이 있어.

모든 사람들이 사랑이신 예수님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약속대로 이 글을 쓰고 있단다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 기쁨아  
아빠가 저 천국으로 가더라도 이 모든 글들은 네 마음에 살아 너와 함께 숨 쉬게 될 거야



금강산 산등성이



금강의 바위


P.S 북한 주민을 위해 기도와 사랑의 손길을 각자의 상황과 현실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보내주세요

마음이 아픈 남한 시민들을 위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섬겨주세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 몸이 약해 연재가 혹여 말없이 늦어지더라도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