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큰 병원으로 나를 데려갔다. 한국 병원이라고 해서 미국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지만 확실히 다른 것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아주 신속한 일 처리였다. 별다른 대기 시간 없이 예약 순서대로 모든 진료와 검사가 진행되었고, 검사 결과는 이미 알다시피 큰 문제는 없었다. 대신 코로나 후유증으로 볼 수도 있는, 폐와 갑상선에 염증이 보인다고 했다.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식도염과 위염이 생겨 등과 목에 통증이 심해졌을 것이라는 소견도 덧붙여졌다. 몸무게가 많이 빠지고 기운이 너무 없었기에 당장 수액치료부터 시작했다. 수액을 맞으니 잠시나마 오랜만에 쌩쌩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인이라면 한의원 방문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의원에서는 내 맥이 생각보다 건강하고 좋다고 말했다. 지금 기운이 없는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고 분명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분명 나는 숨을 쉬기도 힘들고 온몸에 기운이 없고 매일 바닥으로 빨려갈 듯 공중에 혼자 헤엄치는 기분인데 모든 검사 결과나 소견들은 하나같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쯤 되니 내가 정말 아픈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꾀병은 아닌데 병도 아니라고 했다. 그렇기에는 너무나도 오래 지속되는 나의 상태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가 나고 너무 답답했다.
며칠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코로나 후유증보다는 공황장애가 더욱 심해져서 그런 것 같다며 정신의학과 선생님을 추천해 주셨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편안해질 수 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다음날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상담은 많이 받아봤어도 약을 먹기로 마음먹은 것은 처음이라 마음 한편에선 자연스러운 거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더랬다. 용기를 내어 엄마와 함께 방문한 신경정신과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있었다. 대기 중인 환자들과 함께 앉아있는 동안 저들은 어떤 고통을 떨쳐내기 위해 이곳에 왔을까 문뜩 궁금했다. 나 역시 의료계 종사하는 사람으로 많은 환자들을 봐 왔고 신경정신과 관련한 치료도 많이 제공해 왔는데 내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와는 달리 내가 직접 이런 문제를 겪게 되자 알 수 없는 편견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잠깐의 상담 뒤,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필요시 먹을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 신기하고 의아했던 점은 약의 이름과 주의할 점에 관하여 자세히 안내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국 병원에서도 보통 처방받는 약의 이름과 기전에 대하여 안내를 받는다. 특히 미국은 약에 관하여 조금 더 엄격하기에 나는 항상 내가 먹는 약의 이름과 용량, 기전 등을 미리 알고 먹는 습관이 있다. 그렇지만 정신과에서 받은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약들은 아무런 설명과 안내 없이 나에게 건네어졌다. 절대 빼먹으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사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이 힘든 마음에 바로 약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진통제 하나에도 민감한 나는 이 많은 양의 약들을 한꺼번에 먹기가 덜컥 겁이 났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 선생님께서는 약을 시작하면 최소한 3월에서 6개월은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내가 얼마나 한국에서 머물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오후 내내 고민 끝에 엄마도 나도 일단은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정말 공황장애 때문이라면 그동안은 약 없이도 잘 이겨 내 왔으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약도 마음대로 시작할 수 없고 몸에는 문제도 없다는데 나의 하루는 매일이 지옥 같았다. 이렇게는 도저히 계속 살 자신이 없었다. 분명히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는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게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