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Jun 30. 2021

스승이 되기 위한 자격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 종지부를 찍어주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것을 익히고 거기다 새 것까지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온고지신'이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해진 장이다.

그런데, 그 고사성어의 뜻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 바로 이 장의 방점이라는 점이 반전이다.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주자의 해석에 따르면,

'암기나 하고 묻기나 하는 학문이라면, 마음에 터득함이 없어서 아는 것이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아는 것에 한계가 있는 자가,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주자는 주석의 설명을 통해, '응용'을 말하고 있다.


배움에 있어 예전에 들은 것을 때때로 익히고, 항상 새로 터득함이 있으면 배운 것이 나에게 있어 그 응용이 끝이 없다.


20여 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은 내가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아주 적확한, 하지만 부도덕했던 예를 들어보겠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있었다.

한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들어오는 최고 대학의 교수랍시고, 강의를 하면서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몇 세기에 걸친 내용을 정리하는 작업을 수업 내용으로 삼았다.

문제는 그가 공부하고 정리하고 강의한 것이 아니라,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학생들에게 여러 자료를 섭렵하고 정리하여 일괄되게 발표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그 강의가 끝날 때마다 그의 새로운 신간 서적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서적을 다시 강의 교재로 하여 계속하여 수정하였다, 학생들의 지적내용을 토대로.

그 사실을 목도하고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를 연구실 복도에서 마주치면서도

같은 공기를 나누는 것조차

불결하고 불편했다.

밖에서의 평은 어떠했는지 별론으로 하더라도

내부에서 그에 대한 평은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컴퓨터라는 것이 처음 나오고부터 지금까지

게임, 프로그래밍, 인터넷 검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공부하고 사용하고 있다.

그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여

방대해지고 나서는

Knowhow의 시대는 저 멀찍이 가고

Knowwhere의 시대가 도래한 지 한참이다.


Knowhow란, 사전적으로 '어떤 일을 오래 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이나 요령'이라고 한다.

윗글에서 공자가 말한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 이해했다면 당신은 여전히 고문과 동양철학을 한참 더 이해해야 할 단계이다.

Knowhow의 사전적 의미만으로 대처하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 명백히.

내가 20여 년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며 얻은 것들은 '계발'에 가까웠다.

학생들은 그들이 나에게 '계발'의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알량한 Knowhow는 내가 배우고 익힌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응용하는가에 대한 것은

새로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 나온 것을 소화하는 싱싱하게 팔딱팔딱 뛰는 젊은이들의 지성에서 자극을 받으면서 융화될 때 '업그레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낡았다고 버리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을 무조건 흡수하겠다고 설레발이 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꾸준히 배우고 익힌 것을 지금의 시대, 혹은 더 나아간 미래에 적용하고 활용하고 응용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발전 형태인 것이다.


물은 머물고 고이게 되면 썩는다.

힘차게 흐를 때만이 그 생명력을 온전히 유지하며 더 새로워진다.

하물며 생명이 집약된 사람이란 일러 무엇하겠나?

 

당신이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남겨둔 지식일 것이다.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한 학문의 바탕조차 없이

응용이니 활용이니 될 턱이 없다.


윗글의 공자가 제시한 '온고지신'은 그다음 단계에서, 당신이 업그레이드해야 할 상위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스승'이 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그래서 우리 분야에서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하대하는 것으로 본다.

회사 조직에서 직함을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너무도 아쉽게도 나는

아직 '선생님'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그저 내가 그렇게 불릴 자격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바둥거릴 뿐이다.

이전 15화 아무도 보지 않을 때가 진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