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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May 01. 2022

첫 번째 케이스 중간보고

쓰레기 분리수거

지난주 토요일에 브런치 궐기대회라고 글을 올리고 피드백을 기다렸지만, 공식적인(?)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경찰 조직에 있으면서 부끄러움을 아는 부산의 김반장님과 생전 처음으로 국회의원실에 전화를 해보았다는 청주의 상담사 마음꽃psy님, 그리고 창작동요를 취미로 만드는 재기발랄한 7살 호연이 엄마 박경진님 등이 있었고, 공황장애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글과 황희두의 브런치에 댓글을 다는 것으로 시작을 알린 독일에 살다온 호박씨님도 있었다.


미국에 살며 간호사 은퇴를 하고 리쿼 스토어를 하는 전지은님도 꼼꼼히 읽고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알려왔고, 미국에 있는 푸른밤님은 한국의 핸드폰이 없어 인증을 할 수 없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안타깝고 급한 마음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와 자신의 이메일을 남기니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알려달라고 소식을 전해왔다.


그 외에 비슷한 연배의 여자분들인 치초요님, 청해님, 사부작 로데가 있다님이나 초보순례자님, 방송작가 출신의 슈팅달님은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방향을 알려드렸으나 첫발을 내딛기가 역시 어려운지 피드백이 없는 상태이다.


경찰로 은퇴하고 예술가의 길을 걷는 제주도의 안서조님이나 몇몇 브런치의 경찰이라고 자신을 밝힌 이들, 내 글을 구독하는 기자 hardy님이나 특별한 경험을 소개하고 지금 책 준비로 바쁘다는 마음코인님에게도 연락하였으나 아무도 피드백은 고사하고 답변 따위는 없었다. 최근 책을 출간하고 동시 2쇄에 들어갔다고 즐거워하는 초원의 빛님은 중랑구청에 일하는 지인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본다고 하고는 피드백이 전혀 없다.


내가 처음 올린 글이 장황하다며 현재 심각한 문제점, 주장할 내용, 개선 요청사항, 주요 연락처 등을 다시 요약정리해달라며 댓글을 달았던 농업지도일을 하는 노고지리님에게서는 정작 요약정리하여 다시 글을 올렸음에도 이후 어떤 피드백도 없다. 왜 그런 것인지 그가 달았던 댓글 내용을 다시 보며 이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다시 한번 요약해주시면 저도 관심을 갖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관심을 갖다’는 들어봤어도, 관심을 갖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건, 생각만 있다는 건가? 그래서 피드백은 없나? 이것저것 생각 중에 어제 동로마부터 유럽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번역하는 글을 올려, 마치 그쪽에 교양을 갖춘 사람인 양 굴고 싶은 똥파리들이 꼬이는 Rina Ka님의 브런치에 댓글을 올리려는데, 그가 그녀의 글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남긴 댓글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바빠서 내 글에 함께 행동할 겨를이 없었나 보구나.’


열흘 전 모친상을 치른 이후승님은 평소에는 내게 직접 이메일까지 보내며 다른 글에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었다. 모친상을 마치고 돌아와 술 이야기 와인 편에 댓글까지 달길래 미처 알지 못했던 모친상에 대한 인사를 건네며 논어 읽기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마치 글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처럼 아무런 답변도 피드백도 없다. 물론 다른 작가들의 낙서 수준의 글에는 여전히 댓글을 달며 즐겁게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개그맨 공채 시험을 나갔던 이력을 가지고 자기 회사를 운영하며 멋진 CEO로 사는 소심 작가 진절님과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 출간 작가인 박성퓨님, 엘프화가님은 물론이고, 어렵게 변호사가 된 누이를 가진 라트님, 매일 몇 편의 동화 글을 발행하는 동화작가 김동석님, 해병대 출신으로 재취업하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Kenny님, 전직 초등교사를 11년이나 하고 지금은 팀 라이트 기획자일을 한다는 나오미님, 커피와 와인을 좋아 공부했다며 일상적인 일기글에서 최근 이슬람 관련 내용 글을 연재하는 것으로 변화를 꾀하는 산내님, 시를 쓰는 교수 최용훈님, 오래전부터 내 글을 구독하고 꾸준히 라이킷을 꼬박꼬박 눌러주는 데이터 전문가이자 에세이스트를 꿈꾸는 정경문님, 26년째 로마에 살고 있는 신학자 Roma Vianney님, 최근 글에 유독 관심을 보이며 모두 읽고만 있는 양그래님,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며 운전기사들의 처우에 대해 알리고 있는 성찬님, 그렇게 사변적인 글에는 댓글을 달며 관심을 표명했던 교사였던 박점복님, 최근 어머니의 입원으로 경황이 없었을 COSMO님, 이제야 사건을 접하고 실화인지 물었던 아이 여섯을 키우는 좋은정님, 대학생 쌍둥이 딸바보 아빠 포토글래퍼 우영님,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문제에 더 민감할 것 같았던 구은복님, 서양음악사의 글을 올리고 있는 김정훈님, 꼬박꼬박 내 글에 라이킷을 달아주는 해외법인 담당 회사원 PSH님, 책을 출간하고 홍보하는 이유로 브런치를 한다며 겸손한 이경님, 최근 책을 출간한 이후 글쓰기는 뜸하지만 꼬박꼬박 내 글을 읽는다고 라이킷을 찍는 기업시스템코디님, 최근 사태를 파악한 앞니맘님, 교사이자 찻집을 운영하는 tea웨이님이 글을 읽고서도 아무런 반응도 댓글도 피드백도 없었다.


수많은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이들 역시 그러하다. 무려 1.6만명의 구독자를 가진 김권수님이나 3천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봄날님이나 문제있는 단체를 고발한 용기를 가진 김보영님, 내 구독자는 아니지만 꾸준히 내 글을 와서 읽으며 라이킷을 누르는 추세경님이 해당 글을 읽었다고 표시를 했음에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


내 브런치를 구독도 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나는 그의 글을 읽지도 않는데, 매일같이 내 글을 모두 일일이 라이킷을 찍는 마음씀님도 있다. 정작 자신이 재미있는 글을 읽는 즐거움에만 탐닉하겠다는 것인지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은 보이지 않으면서 여전히 발행하는 글들은 꼬박꼬박 라이킷을 눌러가며 읽는 것이 쉬이 이해가 되진 않는다.


워낙 정신이 없고 바빠 글을 읽지 않은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싶은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 셀라님이나 세종시의 교육부에 부장으로 정신이 없는 간서치 힐데님, 군인으로 근무하는 혜남세아님,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며 최근 출간원고를 탈고한 정신과 의사 나종호님, 매일같이 올라오는 글에 라이킷을 찍는 프로그래머 덕근님이나 시와 생각을 함께 올리는 교사출신 인문학 이야기꾼님도 있다.


나는 800명이 겨우 좀 넘는 구독자가 있다. 구독자가 모두 내 글을 탐독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브런치의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4번이나 발행 폭격을 하는 이 괴짜의 브런치에 재미있는 글이라며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면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내가 프로젝트를 통해 함께 하자고 한 것은, 돈을 기부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펀딩에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며, 어렵게 국회의원에게 찾아가 멱살을 잡으라는 것도 아니며 경찰청 앞에 가서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하며 피켓팅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전화 몇 통 인터넷 커뮤니티와 맘 카페, SNS에 이 사실을 알려 많은 이들의 목소리로 잘못을 바꿔보자고 외친 것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렇게 하나같이 침묵을 지킬까, 내 아둔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나의 의문을 듣기라도 했는지 젊은 친구가 나에게 깨달음을 향한 힌트를 흘려주었다.


어제 우연히 내 글을 몰아서 읽는 번역 공부하는 Rina Ka양에게 댓글을 달아 아직 해당 글을 보지 못한 것인지 묻자, 그녀의 늦은 답변이 댓글에 달렸다.


글을 읽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내가 나서도 될까... 내 일이 아닌데 나서면 피해 입는 것은 아닐까 움츠러들었습니다.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루었는데... 이제 깨달았어요, ‘남의 일’이라는 이유로 외면했다는 것을요.


네... 부끄럽습니다... 어느 순간 방관자가 되어 있는 제 모습에... 그래서 지금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합니다. 브런치 내에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랬습니다. 그들이 저희와 멀리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려 합니다. 링크 걸어준 국회의원과 저희 지역구 국회의원(될지 모르겠습니다. 전 서울권 사람이 아니지만 같은 당 국회의원이니 일단 해보려 합니다.)에게 사건에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촉구해야겠지요... 할 일이 많아도 일단 이것부터 하려고 합니다.


그녀의 답변에는 사람들이 왜 반응하지 않는지 그 답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만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설마 사람들이 그 지경(?) 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경성제대에서 박사까지 공부하면서 학창 시절 내내 들었던 교수들의 고정관념을 거부했던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인생 경험이라며 말했더랬다.


“그 사람 어느 학교 출신인데? 서울 안에 있다고 다 대학이 아니지 않나, 그 학교 출신이 뭘 알겠나? 그냥 일반인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을”


“우리 학교에만 계셔서 우리 학교애들이 하향 평준화되었다고 생각하나 본데, 우리 학교가 이 지경이면 다른 대학이나, 심지어 지방으로 가게 되면 걔들은 아예 말귀도 못 알아들어요. 우리 학교 애들은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잖아요.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그 밑에 애들은 도저히 가르쳐서 고칠 수 있는 수준이 못되요.”


나는 그들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고정관념을 피우는 거라며 그들의 의견에 늘 반대의견을 냈고, 그러니까 더 제대로 가르치고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나보다 한 세대를 먼저 산 그들은 현실은 전혀 다르다며 내가 이상을 꿈꾼다며 비웃었다.


라이킷은 그들이 내 글을 읽었다는 표시가 아니다.


물론 지금 이건 학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였다.

그걸 알게 해 준 댓글이 청주의 한 아줌마에게서 달린 것이었다. 그녀는 나름 구독자 천명을 넘기고 내 브런치를 구독조차 하지 않으면서 마음씀처럼 내 글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라이킷을 찍어댔다. 찍어댔다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그저 기계적으로 라이킷 품앗이를 했다는 것을 몇 달이 지난 어제에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어제 이 사건에 대한 동참을 권하는 글을 그녀의 글을 읽으며 댓글에 달았다. 이유는 그녀가 2년 전 스페인 순례길을 다녀온 것으로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했고, 남편과 세례를 받았다며 가톨릭적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기독교나 불교에는 없는 정의 사제 구현단이 문득 떠올라 그것을 인용하며 성지 순례를 다녀올 정도의 사람이라면 정의에 대한 인식도 다르지 않냐고 왜 침묵하냐고 물었다.


그녀가 교회라는 말을 쓸 때 눈치챘어야 했다. 가톨릭이라고 하여 가톨릭적 성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직접 산 책이라고는 없이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필사 수준의 글을 서평이라고 하고, 줄거리만 늘어놓기 식의 비문을 영화평이라고 할 때도 시골의 아줌마가 노력하는구나 싶어서 라이킷을 눌러주며 응원의 뜻을 보내주었다.


사실 그녀의 글은 자기 생각이라곤 없는 내용도 문제긴 했지만, 기본적인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서부터 심각한 비문을 버젓이 뭉쳐서 글을 쓰면서 자신의 글이 썩 괜찮다고 립서비스를 날리는 뭇 라이킷 품앗이꾼들의 말을 어느 사이엔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글이 괜찮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딱해서 잘못된 곳을 몇 개 지적해줄까 글을 정리하려고 했다가 도저히 한두 군데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아 결국 포기했더랬다. 그러던 중 그나마 소시민적인 양심은 있을 테니 아이 엄마로서의 양심으로, 함께 움직이자고 내 글에 대해 왜 반응이 없는지 댓글을 달았던 터였다.


그리 완곡하게 쓴 글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내가 뭘 말하려는지도 못 알아듣고, 성지순례는 가고 싶어 다녀온 거라며 잘 다녀왔다고 생각했다며 동문서답 댓글을 달았다. 그래서 다시 내가 쓴 궐기대회 글을 링크로 달아주고 직접 물었더니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아래와 같은 장문의 답글이 달렸다.


작가님께서 사회를 좀먹는 사건에 대해 앞장서 정리하고 알려주시는 일을 하며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길 바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세상은 그런 불의한 일들이 전혀 다른 의도로 흘러가고 그 피해는 사회적인 약자가 고스란히 떠 안기도 합니다. 그런 불의한 세상에 반기를 들고 직접 도전하는 작가님을 비롯해 앞서 문제를 해결하는 분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물론 그런 문제들을 지나치지 않고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까지는 능력이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도 제대로 못 달아주고 글도 겨우 쓰고 있어서에요. 제가 있는 자리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그리고 브런치에서 다른 작가님들과 글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더 확장해서 지금은 무얼 한다는 게 사실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어제 작가님의 글을 읽고 많이 생각과 고민을 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종교단체라는 곳에서 피상적으로 그간 보였던 태도가 그녀의 글에 진솔하게(?) 구현되고 있었다. 이 글이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이 들지 않나? 맞다. 아래 재등장하는 한전 직원도 그러했고, 그를 옹호하던 노무사 아줌마의 논리도 그러했으며 전문대출신으로 로스쿨 나와 현직 회사원 법조인이라는 이의 답변이 토씨하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몇 달 동안 내 글에 라이킷을 찍으며 내 글을 제대로 읽고 있지 않았던 거였다. 최소한 최근 일주일간 내 글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내가 다시 해당 글을 링크로 찍어주기 전까지 그런 엄한 동문서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아줌마들, 내가 1년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수차례 보았다.


심지어 어떤 여자는 무려 세 번이나 내 글을 구독했다가 해지했다가를 반복하기까지 했다. 전 반장에게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모를 뻔했다. 워킹맘입네하면서 여러 아이들을 키운다는 그 여자는 바쁜 일정으로 출장을 다니는 워킹맘입네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글에 라이킷과 댓글을 수시로 달며 구독을 누른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 자신에게 똑같은 구독과 라이킷과 댓글이 돌아오지 않으면 구독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구독자를 긁어모아나갔다.


그런 천박하기 그지없는 짓거리를 왜 하느냐며 전 반장은 흥분했지만, 나는 듣고나서도 사실 그의 설명을 반신반의했다. 물론 내가 그 과정을 세 번 당하면서 직접 확인하기도 했지만, 그녀와 같은 부류가 브런치에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같은 공간에 있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부류가 브런치에서 어떤 가면을 쓰고 사는지 나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


https://brunch.co.kr/@ahura/589


맞다. 몇 번이나 내 글에 등장했던 아이 아빠라는 그 한전 출신 직원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늘 들어가 간략히 살펴보니 자신이 이름 없는 신문에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글이 게재되었다며 그 글을 올리고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더라. 심지어 위의 한전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거짓말을 했다가 혼쭐이 나는 대부분이 실무책임자인 차장인데, 그들의 심부름을 하는 아랫사람이 과장이고, 그 과장 잔심부름급도 아닌 개발에 땀나듯이 뛰어다녀야 하는 이들이 '대리'이다.


그의 신문 글에는 ‘수필가 겸 한전 대리’라고 적혀 있었다. 맞다. 내가 잘못했다. 대학 직원들의 기강해이 문제에 대해 대학 후문 수위 아저씨에게 의견을 묻지는 않는다. 하도 경력을 대단한 것처럼 써놓았길래 내가 착각하고 물었다. 참 미안하게 되었다. 자신의 서고라며 책을 자랑하는 글과 사진까지 올리면서 다른 사람 댓글에 움베르트 에코를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헛발질했을 때 내가 알아봤아야 했다.


그들의 평생 소원은 책을 내보는 거란다.

https://brunch.co.kr/@ahura/596


그를 비롯한 여러 브런치의 작가 놀이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막연하게나마 책 출간을 꿈꾸고 실제로 자비 출판인 부끄끄로 책을 내거나 듣보잡 출판사에서 자기 일기 수준의 책을 내놓고 지인들에게 파는 수준이면서도 출간에 목을 맨다는 사실은 보고 들어서 잘 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출판사의 제안으로 책을 내기 시작해서 각종 매체에 글을 연재했던 경험을 가진 행운을 누린 사람이라 상대적인 풍족속에 살아와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들이 왜 그따위 의미 없는 행동에 목숨을 거는지 도저히 알려야 알 도리가 없다.


특히, 윗글에도 나오지만, 그의 회사가 벌인 조직 내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묻고 바꿔나가자 제안했을 때, 그가 했던 답변은 위의 청주 살며 도서관 책으로 서평(?)을 쓰신다는 아줌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말한,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한다는 봉사가 뭔지 그녀의 브런치를 좀 찾아보려 했는데, 찾을 필요도 없이 내 댓글 바로 밑에 자랑하듯 다른 사람의 댓글에 대한 답글, 자신이 교회에 봉사를 하고 있고 복지관에 봉사를 하고 있다고 늘어놓았더라.


자아, 그녀가 위에 단 댓글을 다시한번 잘 보아라. 그녀는 세상의 불의가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단다.

그런데!!! 

자기는 자신은 거기까지는 능력이 되지 않는단다. 그러면서 브런치에 들어와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도 제대로 못 달아주고 글도 겨우 쓰고 있단다. 누가 보면 그녀가 대단한 대작가인 줄 착각하기 쉬운 대목이다. 그녀가 연재 시간을 정했는지 자기가 글 발행을 위해 점심도 건너뛰고 급하게 글을 쓰고 우동을 먹는다는 글을 참람되이 쓴 걸 보고 참 어이가 없었다.


그녀의 댓글을 보면, 그녀는 내가 궐기대회의 글에서 마치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구하는 것으로 오독한 듯 보인다. 내가 그녀의 가당찮은 오독처럼 머리가 부족해서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서 아이디어를 구하겠다고 요청했나?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달라고 거들먹거리는 지적에도 꾹 참고 다시 요약정리까지 해줬다. 그들이 답했나?


그녀가 마지막 한 말은 더 가관이다. ‘제가 있는 자리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그리고 브런치에서 다른 작가님들과 글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더 확장해서 지금은 무얼 한다는 게 사실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뭘 확장하는데? 내가 함께 하자는 건 전화 몇 통? 인터넷에 글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제대로 읽지도 않는 남의 글에 라이킷을 찍어 자신의 글에 라이킷 품앗이를 하라고 강요하느라 시간이 없고, 자기 교회에 남들 눈에 보이는 봉사를 위해 다니는 것은 하지만, 능력이 안되서 전화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려 잘못을 알리는 건 확장이라 미칠 수 없단다.


초등학교 수준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안되는데 품앗이꾼들의 칭찬이 사실이라고 착각하여 자신의 브런치 북에 출판사에게 출간제안을 제대로 어필하는 법까지 올릴 지경이면 촌에서 살면서 필사 수준의 받아쓰기를 글이라 올리며 작가 놀이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착각할만하다.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깨달음은 그녀의 댓글에서 한방에 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SNS에, 길가에 서 있는 외제차 곁에 서서 자기 차인냥 사진 올리고, 고급 레스토랑 써빙 알바가 요리 사진 찍어서 자신이 그곳의 고객인 양 하며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싶어 하는 정신질환이 현대인들에게 만연해있다는 사실은 환자들을 상담하면서도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칭 고양된 글쓰기를 표방하는 이 브런치가 그 새로운 버전일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쉬흔이 훌쩍 넘은 전 반장이 연말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 얘기를 했었다,


“스승님. 스승님이 순진하신 겁니다.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집에 있지도 않는 황금송아지 몇 마리나 있다고 떠벌이는 썩어빠진 인간들부터 자기 자식 사진이랑 심지어 다 자랐는데 어렸을 때 사진 올리면서 라이킷과 구독자 팔이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이 선량하고 가르쳐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내 작가 소개에 쓴 것처럼 내가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소멸되어버리기 때문에 그것이 아니라고 제대로 된 인간다운 사람도 많다고, 여기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멀쩡한 정상적인 몇 개를 빨리 건져서 분리수거에 들어갈 것들과 엉키지 않도록 해야 하는 지경이었던 거다.


흙으로 소꿉장난을 하는 얘들에게 셰프가 가서 애피타이저는 뭐부터 해야 한다거나 그런 조언을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인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은 흙으로 장난하면서 자신을 셰프라고 착각하지도 않고, 서로 칭찬하면서 셰프급이라며 우쭐대거나 그것을 힐링이라며 뿌듯해하지 않는다.


브런치라는 공간 자체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글쟁이가 글을 쓰는 이 아니고, 다음에 노출되는 글들만 보더라도 여긴 프로들이 노니는 곳도 아니니 그렇게 엄격하게 일반 이하 수준의 할일없는 아저씨, 아줌마를 폄하할 것은 아니라고 탓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이 과연 그들의 글쓰기라고 보이나?


위의 청주에 사는 저 아줌마도 말하지 않는가?

불의는 지적되고 바꿔야 하며 그것에 대해 자신도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걸 알면서 자신은 그럴 깜냥이 안된다고 뒷짐 지고 물러나 있을 양이라면, 당신이 같은 곤란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울고불고 도와달라고 외치면 안 된다.


당신이 그 글도 아닌 수준의 엉망인 정체모를 낙서를 써 올릴 시간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여럿에게 알리고 쓸데없는 아줌마 수다 떨고, 읽지도 않으면서 일일이 라이킷 찍어가며 의미 없는 댓글을 남기는 시간에 항의 전화 한 통 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 미치치 않는 일이라며 구차한 표현까지 할 일이더냐?


늘 궁금했다. 정인이가 죽었다고 피켓을 들고 난리를 치고, 나라가 국정농단으로 개판이 되었다고 광화문에 나와 촛불을 들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사회는 변함이 없고, 광화문  켠에서는 내가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며 성조기를 흔들며 태극기를 모독하는 족속들이 있는지.


그런데 글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그 작은 희망을 가지고 외치면서 정작 저 바닥에 사는 소시민급도 못 되는 이들이 작가 놀이를 하면서 자기 만족감에 서로 영혼없는 품앗이 립서비스를 하고 그것을 힐링이랍시고 배설하는 복마전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리석고 또 어리석어 그렇게 분리수거되어야 할 이들에 대한 희망을 아직은 버리지 못하겠다. 분명히 같이 목소리를 내주고 잘못된 것은 바꾸자고 행동하는 이들이 어딘가엔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 내가 못 만났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분명히 있다고 믿고 싶다.


https://brunch.co.kr/@ahura/1052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째 케이스. 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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