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May 25. 2022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2

결국 현실로부터 유리된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로 얼룩지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153


이러한 양상은 에라스뮈스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상당한 수준이던 지식, 예리한 비판 정신, 보편적 인간성과 기독교의 미덕에 대한 드높은 이상,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타협과 관용을 중시하는 태도는, 루터를 비롯한 급진파나 기성 교회의 보수적 입장 사이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에라스뮈스의 만년은 좌절감으로 깊게 물들어 있었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이 공개 석상에서 소개될 때, ‘이 분은 에라스뮈스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는 분’이라 소개되는 것이 큰 영광일 정도였지만, 그렇게 큰 명성도 서로를 적대시하는 배타적인 두 진영의 극단적 대립 앞에서는 무색해져버리고 말았다.


정치철학적으로 볼 때, 에라스뮈스와 관련해서 중요한 저술은 <기독교 군주 교육(Institutio Principis Christiani>(1516)을 든다. 이 저술은 이후 신성 로마제국의 카를 5세(Charles V)로 등극한 15세 왕자에게 헌정한 책으로,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에 ‘군주의 교본’(speculum regia)이라는 갈래로 정착한 수사학의 정수이자, 플루타르코스의 ‘교육을 통해 올바른 삶을 가르칠 수 있다.’는 철학적 확신과 이소크라테스의 ‘탁월함이란 일상의 습관에서 완성된다.’는 교육적 신념이 결합된 르네상스 도덕교육의 전형이다.

에라스뮈스의 이 저서가 ‘군주의 교본’으로서 갖는 특징은 비슷한 시기에 집필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De Principatibus)>(1513)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첫째, ‘국가의 유지’를 군주의 가장 중요한 행위의 준칙으로 상정한 마키아벨리와는 달리, 에라스뮈스는 ‘정의롭고 자애롭게 신민을 다스리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통치의 원칙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에게도 에라스뮈스에게도 정치공동체의 안전이 ‘공공선’ 일 수는 있지만, 후자에서는 이러한 목적을 앞세운 비도덕적 수단이나 반종교적인 원칙이 용납되는 경우가 결코 없다.


둘째, 마키아벨리의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전쟁’이지만, 에라스뮈스의 군주가 유념해야 할 주된 업무는 ‘평화’이다. 비록 후자도 지리적 환경에 대한 숙지와 전쟁수행 능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후자는 전자와는 달리 영토의 확장이나 군주의 영광을 위한 전쟁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일한 이유에서 평화로울 때의 통치가 전쟁의 효과적 수행을 위한 수단일 이유도 없다. 단지 후자에게 이러한 통치는 참주의 특성일 뿐이고, 전투적 군주의 야수적 본성들은 기독교 군주의 덕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셋째, 마키아벨리의 군주에게 ‘다수’ 또는 ‘대중’이 실질적인 권력 기반이라면, 에라스뮈스의 군주에게 이들은 한편으로는 돌봄의 대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해야 할 집단이다. 이런 차이는 단순히 설득 대상의 차이, 즉 권력기반이 약한 새로운 군주인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안정된 권력을 상속받은 군주이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궁극적인 차이는 에라스뮈스가 마키아벨리와는 달리 ‘잔인한 참주’와 ‘자애로운 군주’를 엄격하게 구분하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 진정한 군주는 ‘공포’를 통해서라도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에 주력하기보다 대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하려는 도덕적 모범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듯 에라스뮈스의 저서에서 보이는 그의 사상은 ‘정치적 필요’라는 이유로 소크라테스 전통에서의 ‘좋은 삶’(eu zen)과 기독교의 ‘그리스도 모방’(Imitatio Christi)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기독교 군주는 여전히 ‘지혜’(sapientia), ‘관후함’(animi magnitudine), ‘절제’(temperantia), 그리고 ‘고결함’(integritate)과 같은 도덕적 품성을 갖추어야 하고, 고대 철학자들이 제시했던 이상적 통치자와 호칭만 다를 뿐 ‘철학자이자 한 사람의 기독교인’(esse Philosophum et esse Christianum)이어야 했다. 그에게는 16세기의 참혹한 정치현실도 기독교적 훈계와 도덕적 교훈을 통해 계도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확신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를 포함한 북유럽의 기독교 인문주의자들도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무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논리와 사색을 중시하던 스콜라 학풍과는 달리, 설득과 실천을 강조하는 인문주의 전통에서 볼 때, 가톨릭 교회의 문제는 이미 신앙으로 타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던 신학자들은 잘못된 성경 번역과 기만적 교회 설교에 몸서리를 쳤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철학에 해박했던 학자들은 종교적 이상과 비참한 현실의 괴리로부터 도피할 새로운 피안(彼岸)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의 노력은 당시 가톨릭 교회가 초래한 정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가톨릭 교회의 고위직책이 지배집단의 권력기반이었던 상황에서 교회 개혁이 갖는 정치적 부담만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일반 평신도를 깨우치는 대중교육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 그리고 개인의 영성회복을 교회의 개혁보다 우선시하는 신앙적 자세도 한몫을 했다. 1550년대 교황 파울루스 4세(Paulus IV)의 보수적 탄압에 그들이 무기력했던 것도 이러한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다만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의 국경을 초월한 친분만큼은 근대 계몽주의자들을 열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는 방식의 하나로, 그들은 서로의 학문적 관심과 신앙적 고민을 담은 편지를 나누면서 하나의 지적 공동체를 구성했다.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의 서문을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모어(Thomas More)에게 보내는 서한으로 대신한다.


나는 우리가 함께 공부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지. 그리고 한동안 떨어져 있는 박식하고 기분 좋은 친구들과의 대화를 회상하고는 했지. 그들 중에서도 당신, 나의 모어는 내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름들 중 하나였네.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구상했던 그리고 잡담과 추문의 현실을 벗어나, 지리적 경계를 넘어, 지식에 대한 열정과 지혜에 대한 열망을 통해 만들어진 그들만의 세계를 애써 떠올렸다고 그는 말한다. 이렇듯 ‘가톨릭 인문주의’는 르네상스의 또 다른 하나의 지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비록 가톨릭의 질서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찾고자 했던 신앙과 지식의 새로운 균형은 시민적 인문주의나 종교개혁운동에서 보지 못한 또 다른 지적 고뇌를 반영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뇌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동일한 시대적 고민의 결과였지만 현실에 가닿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성적표를 받아 쥐게 된다.

루터의 <노예의지론>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선 이후, 교황청의 요청에 의하여 에라스뮈스는 마르틴 루터의 <노예 의지론>을 반박하는 글을 썼다. 그는 <자유의지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인간이 신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루터의 견해를 거부한다.


그는 루터의 노예의 지대로라면, 선한 일을 하도록 예정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전가하는 것이 과연 정의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하느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의 관계에 관한 여러 교부 철학자들의 논쟁을 개괄한 뒤, 그는 양 극단을 통합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의지에 속하지만 실제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도 자유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일에는 시작, 과정, 결말의 세 단계가 있는데 시작과 결말은 하느님이 예정한 것에 속해서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시작과 결말의 중간인 ‘과정’에는 인간의 의지가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별적 행위는 하느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라는 두 원인이 동시에 작용하며, 하느님의 의지는 주도적 원인, 인간의 의지는 이차적 원인이 된다.


그는 불을 예로 들면서 이러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의 본래 성질로 인해 불이 날 경우, 그 불이 일어나게 만드는 하느님은 일차적 원인이다. 만약 일차적 원인이 없어지면 불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

즉, 건조한 날씨로 메마른 숲 속에 누군가 성냥불을 버리면 산불이 난다. 이 경우, 불이 나기 좋은 건조한 날씨와 적당한 산소량 등, 가연성이라는 불의 성질은 일차적 원인이고 성냥불을 던지는 행위는 이차적 원인이다. 성냥불을 아무리 던져도 불이 날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불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일차적 원인으로서 하느님이 예정한 결과로 귀결되며, 그럼에도 선과 악의 행위는 인간 의지의 작용에 따라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하느님은 그 인간 행위의 의지를 파악하여 포상 또는 징벌을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에라스뮈스의 자유의지 변론은,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음에도 모든 것은 이미 신이 결정한 것’이라는 장 칼뱅의 이중 예정설로 이어진다.


그는 여러 저서를 통해서 당대 부패한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여 많은 종교개혁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대한 박식함으로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 등극한다.


하지만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가 벌어지고 종교개혁가들이 투쟁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하자, 가톨릭에 변화가 필요한 것은 맞으나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는 평화주의 노선을 견지하며 현실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만다. 이러한 그의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인해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에게 외면당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노년을 보내게 된다.

그는 네덜란드의 섭정인 헝가리의 메리 여왕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브라반트로 가던 도중, 스위스 바젤에서 이질 증상으로 1536년 선종하였다. 그가 선종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신이시여...’였다. 사후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병자성사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저 그의 시신만이 바젤 성당에 안치되었다. 1622년, 그가 태어난 로테르담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스위스 바젤 성당

 



내가 왜 어제와 오늘 양일간에 걸쳐 이 가련한 이상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 시리즈에 소개했는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모르고 있던 위인의 인사이트를 챙겨 읽으려는 이들을 위해 지금부터 그의 실패한 삶의 원인을 분석해주도록 한다.


https://brunch.co.kr/@ahura/1093


달 전 현역 목사의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케이스를 들고, ‘브런치파 궐기대회’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부정을 다 함께 바로잡아보자고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사건의 진상을 논픽션 연재소설로 그려내기 시작한 분량이 이미 300페이지 두꺼운 단행본 1권 분량을 일주일 전에 넘어섰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뜻을 함께 하겠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전까지 다양하게 연재되는 내 글을 읽으며 ‘제대로 된 공부를 합니다’ 어쩌고 하며 마치 인문학에 트인 ‘진짜’ 작가라고 되는 냥 지식인 코스프레를 하던 쭉정이들이 구독해지를 넘어 자신의 브런치에 행여 뭔가 양심을 후벼 파는 댓글이라도 남길까 두려워 ‘차단’까지 하고 도망쳐버렸다.


정말 입으로만 정의를 논하고, 무관심 자체가 악이라는 글에 주저리주저리 댓글을 그들에게 내 글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이상으로 얼마나 아렸길래 그렇게까지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쳐댔는지 헛웃음이 다 나온다.


https://brunch.co.kr/@ahura/1151


어제 이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한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애정 어린 댓글을 달며, 좋은 취지를 함께 하자는 것을 넘어 실천을 보이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그렇게까지 비판의 날을 세울 필요까지 있겠냐며 조심스러운 조언을 남겨주었다.

 

답글에도 전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함께 실천하지 못한다면 라이킷으로 응원한다든지 나름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온 공간과 시간에서 선하게 살아왔는데 내 글을 읽으며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는 비슷한 유의 의견이 적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부정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정작 썩은 종교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한다는 이들의 손짓에 외면하고 이상주의자로 전락해버린 에라스뮈스의 실패한 인생을 보면서 당신이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의 인생을 이틀에 걸쳐 연재하며 보여주었다.


바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보고 나서 쓰는 잡글이나 그 글에 아줌마처럼 긴 댓글을 달 시간에, 공론화되지 못한 사회의 부정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제보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면서 나는 내가 속한 공간에서 내 방식대로 정의를 ‘나름’ 구현하고 있으니 작가님의 실천 제안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나를 비양심적인 자로 매도하지는 말아달라, 는 그 같잖은 변명들에는 고개를 끄덕여주지 못하겠다.


왜냐구? 이해가 떨어지고 허구한 날 오독하고 자기변명을 위해 사실을 왜곡시키는 당신에게 적확한 예를 들어주마.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고 나보다 없어 힘들어하는 이웃을 위해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던 도덕 선생이, 자기 반에 2022년의 현실에서 돈이 없어 급식은 고사하고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를 우연히 발견하고서는 ‘나는 지금 아프리카에 있는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애들을 위해 기부금을 매달 만원씩 보내고 있으니까 저 아이의 힘겨움까지 도와줄 수는 없어’라고 할 것 같은가? 그럴 수 있다. 그가 가식에 쩔어 그저 자신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으로 우아한 도덕선생의 길을 간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과연 그 정상이 주변에 있는지조차 이젠 의심되지만) 사람이라면, 내가 한 달에 만원이 아니라 수백만 원씩 없는 이들에게 기부하더라도 당장 내 앞에서 밥을 먹지 못해서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슬쩍 교실을 떠나는 아이를 본다면 결코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사람 된 도리라고 나는 배우고 가르쳐왔다. 당신은 다른가?


브런치 작가랍시고, 일면식조차 없는 이들에게 내가 함께 하자고 호소한 것은, 이미 그것을 직업이라 여기고 사욕만 채우는 정치인들에게 정치를 기대할 수 없으니 직접 선한 움직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함께 피켓을 들고나가자는 것도 아니고 단 5분 만에 공중파 고발 프로그램에 제보하는 움직임을 하는 것은 못하겠고, 내가 있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소리를 곱게 들어달라고? 재미있는 글이라고 들어와서 읽는 것까지는 좋은데 내가 뭘 하기는 싫다면서 돈도 안 들고 0.1초의 시간도 필요 없는 라이킷 하나 누르면서 이것이 나의 응원이니 그런 줄 아세요, 하는 것들의 변명을 들어달라고?


내가 이제까지 내 가정에서, 내가 속한 사회에서 소시민 코스프레를 하면서 나쁜 짓 하지 않고, 나름 불쌍한 사람들을 연민하고 도와주는 마음으로 착실하게 잘 살았는데 왜 지금 내 글을 읽으며 소금이 뿌려진 지렁이처럼 마음이 온통 요동을 치며 몸이 아플 정도로 불편한지를 당신의 양심에게 물어봐라.(물론 그것이 아직 생존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이틀간 살펴본 에라스뮈스는 자신이 저술한 저서에 쓴 것처럼 근엄하고 훌륭한 마음이 없었던 것 같은가? 그는 결정적인 실천이 필요할 때 결국 한 발을 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력하겠다며 당신과 같은 같잖은 변명을 끄집어냈다. 당신이 보기에 에라스뮈스의 삶이 왜 그의 삶을 제대로 읽은 사람들에게, 또 역사에게 비난받고 있는지 보고도 느끼는 게 없나?


https://brunch.co.kr/@ahura/1136


새벽에 어떤 이가 댓글에 뜬금없이, 왜 빨간당 경찰 출신의 국회의원도 있는데 굳이 파란당 국회의원에게만 뭐라고 하냐는 정말로 어이없는 질문을 던졌다. 간략하게 답변을 달아주긴 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파란당쪽과 연관이 있고, 행안위에 서울경찰청장 출신의 국회의원이 있다는 것까지 이미 알고 있는 그의 궤변에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대통령이 되어 자기 사욕을 챙기던 대머리가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고 했을 때는 욕하고 비아냥거리던 이들이, 전 법무무장관이 되어 자기 자식만 챙기겠다고 하던 모습이 들키자, ‘왜 나한테만 그러세요? 다들 그러는데....’라고 하고, 자기 가족들을 보좌관으로 삼는 비리를 걸려 비난당하자 ‘국회의 관례였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세요?’라고 말하는 3선의 국회의원의 후안무치한 얼굴을 보며 뭐라고 할까?


https://brunch.co.kr/@ahura/589


한국전력 실무 책임자가 민원인에게 한 약속과 해명이 사실과 달라 회사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내부의 비리를 지적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임무인 감사실장이라는 자가 ‘회사의 잘못이 아닌 그 직원 개인의 일탈행위다’라며 덮었다. 그것에 대해 브런치 작가라는 한전 대리에게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제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서 아쉽습니다.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며 저에게 들어온 민원에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얼마나 그럴싸하게 들리는가?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그것을 감사하고 고치라는 의무를 가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감사실장도 대리에서부터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다.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자, 겨를이 생겨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겨를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대가들은 그렇게 정점에 올랐고, 실패한 자들은 겨를이 없다고 핑계 대며 무너져갔다. 이 시리즈가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실패한 이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와 배경을 225번째 대가의 이야기를 하는 이 시점에까지 내가 다시 강조해줘야 한단 말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