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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14. 2021

연애를 글로 배워, 결국 70까지 독신

내가 살아온 인생사가 바로 내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이 될 것이다.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덴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구두수선공이고, 어머니는 세탁부였으며

집안 형편은 늘 어려웠다.

외아들이었던 그는 밖에서 뛰어놀기보다는

혼자 인형놀이를 즐기는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그가 11세 때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가족의 생활고는 더욱 심해진다.

일찌감치 노래와 연기에 재능을 보인 소년은

오덴세의 유력자 가문을 찾아다니며 재주를 선보여 명물이 되었으며,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몇 년 뒤에는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걷기 위해 14살의 나이로 무작정 상경한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너 정도의 연기자는 발에 차인다는 말을 들으며

극단에 입단하는 것조차 허가받지 못한다.

다행히 당시 정계의 실력자이며 예술 애호가인 요나스 콜린의 눈에 들어,

일단 기본 학력이 있어야만 훗날 뜻을 펼치는 데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왕실 후원금을 지원받아 17살에 늦깎이로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재학 중에 <죽어가는 아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해 의외로 호평을 받은 그는 6년의 공부 끝에 겨우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첫 책 <도보여행기>를 출간한다.


28살에 2년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자전적인 요소가 깃든

장편소설 <즉흥 시인>을 발표해 격찬을 받는다.

29살이 되어서야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동화집을 펴낸다.

그의 동화를 읽은 지인이 이런 격찬을 했다고 한다.

“<즉흥 시인>이 자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면, 이 동화는 자네를 불멸의 작가로 만들 걸세”

전 세계 어린이들이 모두 읽은 동화의 작가이자, 아동문학의 창시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의 이야기이다.


안데르센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그림 형제와 함께 동화의 대명사이다.

그가 그림 형제에 비해 더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창작력이다.

그림 형제의 동화가 언어학과 민담 채집이라는 학술 연구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로 창작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윤색의 영역이라 평가한다면,

안데르센의 동화는 기발한 상상력과 화려한 묘사와 독특한 내용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문학 작품이라고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1835년에 발표한 <공주와 완두콩>(왼쪽), 1836년에 발표한 <인어공주>의 원본 삽화

이렇게 훌륭한 동화작가에게 무슨 실패가 있었느냐고?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그가 왜 동화를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당신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창작을 하는 이들에게는

창작에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작가들마다 저마다의 창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에게 있어 창작의 동기는 '실연'이었다.

안데르센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연애편지 대신

자서전을 써 보내는 독특하고도 괴이한(?) 습관이 있었다.

자기애가 강했던 것인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니, 먼저 성급히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는지는 몰라도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에는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그런 연서를 받고서 좋아할 여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자꾸만 사랑을 고백할 때마다 차이는지 그만 몰랐다.


첫사랑.

짝사랑.

사랑을 처음 경험할 즈음이 되고,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 비유가 아니라

실제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는

그 감정을 알게 되는 젊은 시절의 실연은,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하게 할 만큼

지대한 문제이다.

활발하고 사교적인 이에게도 그런데

내성적이고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가지고

괴상한 자서전 형태의 연서를 보낸

안데르센에게는 더더욱 큰 상처고 슬픔이고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방법을 택했을까?

글을 썼다.

자신이 오랫동안 좋아하던 여자가

결국 자신을 차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눈물을 삼키며 자신의 괴롭고 애달픈 마음을

이야기로 만들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인어공주>이다.

영국의 미술 비평가이자, 안데르센 연구 전문가, 재키 울슐라거는 안데르센의 성격 자체가 무척이나 모순적임을 지적한다.


“일생 동안 그는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비천한 배경과 불확실한 성적 정체성, 그리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으며, 그로 인해 괴로워했다.
그는 못생긴 데다 눈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순진무구함은 남다른 동화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반면, 가끔은 마치 어린애 같은 자기 과시욕으로 나타나 비난을 자초했다.


안데르센은 겨우 27세 때인 1832년에 처음으로 자서전을 발표했고, 이후 거의 10년 단위로 그 증보판을 펴내며 자신의 성공담을 구구절절 묘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가 더 연서 대신 자신을 내세우고 싶은 자서전 이야기를 써서 결국 연애를 말아먹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재키 울슐라거의 연구에서 설명하는, 그가 양성애자였기에 70 평생 독신이었다는 분석은

논외로 하기로 하자.

결과론적으로 그는 70 평생

결혼을 하지도 못하고 생을 마쳤다.

그가 사랑했던, 그리고 차였던 수많은 여자들과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다.

그런 그는 자신의 처지에 '환상'을 입혀 동화를 작성한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은 스스로도 몇 번이나 강조한 바 있다.

비록 동화 작가로서 불멸의 명성을 얻긴 했지만,

사실 동화는 안데르센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는 시와 소설, 기행문과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했고, 특히 극작가로 성공하기를 원했지만 평생 뜻을 이루진 못했다.


안데르센은 '아동문학가'로만 낙인찍히는 것을 싫어했으며, 말년에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의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나는 한 번도 아이를 내 등에 태우거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오늘날 코펜하겐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들은 아이와 함께인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


당신의 젊음이 연애사로 아플 수 있다.

당신이 원하던 일을 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돈을 위해

먹고살려고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런 당신을 위해

어떤 것을 하기 시작했는가?

당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이번 생에는 글렀다고 말하기 전에

당신의 그 소중한 삶을 위해

무엇을 시작해본 적이 있는가?

그 소심하고 괴팍한 안데르센은

글을 썼고, 창작에 자신의 아픔을 녹여 승화시켰다.

글을 쓰는 동안 과정은 지난했겠으나

글을 쓰고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평가를 받았을 때

그가 느꼈을 희열은 또 다른 행복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소중한 삶이

상하고, 다친 것을 치유해주기 위해

선택한 작업이었다.


당신의 삶이 불쌍하다고 여긴다면

당신이 실패하고 또 실패해서

이번 생에는 글렀다고 말할 정도라면

그 불쌍한 당신의 삶을

치유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보라.

그리고 바로 시작하라.


그 과정을 통해 당신의 영혼을 치유하고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라.

그리하면

성공은 부수적으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당신이 원하 든 원치 안 든 말이다.



브런치에서 안데르센의 다섯 편 동화를

새롭게 쓸 작품을 공모한다고 한다.

다섯 편 모두 써볼까 생각 중이다.

그가 의도한 행간을 금세기,

한국에서 재해석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두근두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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