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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15. 2021

사후 16년이나 있다가 빛을 보다

언젠가는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작은 시골(현재의 체코)의 하인젠도르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으나, 유소년, 청소년기 시절부터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농사와 원예 일을 도우며 자연스레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래 자연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17살 때 아버지가 일을 하던 중 크게 부상을 입고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공부에 매진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 했으나

당시 여동생이 학비를 대준 덕에 전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계속된 학비 걱정으로 수도회에 입회하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사제 서품을 받고 수사 신부가 되었다.

사제가 된 후에도 몇 번씩 교원 자격증에 도전했지만 생물 관련 점수가 부족해서

낙방했다고 한다.


생물 관련 점수가 부족해서 교사조차 되지 못한 그는 생물학에 통계학을 접목시켜 유전학의 아버지가 된다.

당신들의 생물시간을 힘겹게 했던

유전법칙을 정리한 인물,

그레고어 요한 멘델(Gregor Johann Mendel)의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외가가 원예가 집안이었기 때문에,

원예 및 육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인공수분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원예사나 육종가들을 난감하게 했던 부모세대에 없던 형질이 왜 자식 세대에 나타나기도 하는가 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었다.


그 와중에도 대학 수업을 청강하는 동안

자연과학이나 통계학 등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그 경험이 멘델의 법칙을 발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학 청강을 하던 시기, 멘델은 다윈의 진화론을 접하고는, 수도원에서 진화론을 증명할 실험을 하고자 수도원 뜰에 완두를 심었다.

처음엔 쥐로 연구하려 했으나 수도원에 쥐 천지가 될 것을 우려한 지역 주교와 오스트리아의 가톨릭 교단 측의 결사반대로 포기해야 했다.


반면 완두는 수도원 뒤편에 이미 무수히 자라고 있었고 이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쁠 것도 없었기에 당시 수도원장이 수도원 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온실까지 만들어 주었다.


멘델이 유전 연구로 완두를 고른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은 멘델 사후 유전학이 발달한 이후에야 밝혀진 것으로 멘델이 유전 연구로 완두콩을 고른 것은 순전히 환경에 따른 우연이었다.

만약 완두가 아닌 다른 식물이었다면 불완전 우성 같은 예외가 발견되어 그는 온전한 유전법칙의 연구를 진척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멘델은 무려 8년 동안 완두를 심고 관리하며 실험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식물 잡종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작성하여 학계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논문은 학계에서 무시당했다.

멘델의 본업이 수도자이고, 학력도 대학 중퇴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논문을 몇십 부 인쇄하여 당대의 과학자들에게 보냈지만 너무도 당연스럽게 무시당했고,

논문을 받아본 학자들은 봉투도 뜯지 않고 내버렸다고 한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에게도 편지를 보냈으나, 다윈은 멘델의 편지를 읽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 이외에도 많았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생물학자들이 수학, 통계학적인 해석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놀라면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는,

멘델 자신이 너무 소심해서 적극적으로 자기 발견을 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멘델은 스위스 식물학자 카를 네겔리(Carl Nägeli)하고만 학술적으로 교류하였는데,

네겔리는 멘델의 발견에 흥미를 보이긴 했지만

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멘델이 직접 실험해 보라면서 완두콩을 보냈지만 건드리지도 않았다.


이후 멘델은 조밥 나물을 가지고 한 실험에서 완벽하게 실패해 쓰디쓴 좌절감을 맛보았고 이후로는 그냥 수도원장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진화론에 대해 논란이 뜨거웠던 가톨릭의 신부가

그것도 대학도 제대로 졸업 못해 학위도 없고

연구실적도 인정받지 못한 멘델의 완두콩 연구는

그냥 괴팍한 자연과학을 좋아했던 수도자의

원예 취미나 엉뚱한 연구 정도로 여겼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줄담배를 피웠던 그는

만성 신장염으로 쓰러져 62세의 나이로 선종한다.

그의 후임 수도원장은 그가 8년간 혼신을 다한

실험 결과, 논문, 연구자료와 자산들 대부분을

유족들에게 넘기지도 않고 소각해버렸다.


반전은 정확히 20세기를 여는 1900년, 그의 사후 16년 만에 일어난다.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휴고 드 브리스(Hugo de Vries)가 멘델과 비슷한 주제로 연구를 하던 도중 도서관에 '우연히' 남아 있던 멘델의 논문을 집어 든 것이다.

드 브리스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35년 전 멘델이 실험한 논문을 첨부했고,

이를 통해 멘델의 논문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게 된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과학자 칼 코렌스(Carl Correns)는 멘델과 비슷한 주제로 연구를 하다 멘델의 논문에 자신이 밝히고자 한 결과가 모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구를 포기한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에리히 폰 체르마크(Erich von Tschermak)도 유전에 대한 실험 결과를 발표하며 멘델의 논문을 첨부한다.


이러한 후대 생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멘델의 이론은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과학계에서는 1900년을, '멘델 법칙 재발견의 해'로 지정하게 된다.

멘델은 죽기 전에 "언젠가는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My time will come)"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소심한 수도자는 엄청난 과학법칙을 발견하고서도 빛을 보지 못하고

실험이 완성된 지 35년이나 있다가, 자신이 죽고 난 뒤 16년이나 흐른 뒤에 재조명을 받게 된다.

당대는 물론이고 그가 죽은 직후에도 그의 연구성과는 무시되었고

그의 연구자로서의 삶은 인정받지 못했다.

죽고 나서 16년이나 있다가 인정받는 것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살아서 온갖 영화를 누린 것처럼 살다가

죽은 후에 매국노로 취급받는 쓰레기들도 있다.

어떤 삶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더라도

자신이 평생을 해온 업적에 대한 것이

진정성 있는 연구로 인정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당신의 가치를

혹은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혹은 당신이 창작한 작품의 가치를

지금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을 '운'이라고 간단히 말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운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경우가 많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는 운명적으로 하필이면 '완두'를 실험체로

결정하고 온전한 결과를 얻었다.

학벌도 없고, 학자도 아니라며 무시를 받은 그가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며

그것을 정리해서 논문까지 작성한 것은

단순히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고자 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즐거워하는 공부를 했고

그것의 결과물을 정리했으며

그것은 세기를 거듭하여 대단한 성과였음이

증명되었다.


당장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당신의 꿈이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반증이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쉽게 좌절하고 당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없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능력이고 운인 것이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고 투자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대단한 학벌이 없고 금수저를 물려준 부모가 없어 그렇다고 한탄하지 마라.

가방끈 짧아도 모두에게 무시당해도

묵묵히 수년간 자신의 온실에서 완두를 키워가며

과학법칙을 연구해낸 수도자도 있지 않은가?

결국 그 결과들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안고 눈을 감았을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자신의 시대가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당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마라.

몇 번 실패했다고 당신의 신념을 의심하지 마라.


길을 잃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이 아직도 그 길 위에 있음을

알지 못할 뿐이다.

당신은 이제까지 잘 왔고

앞으로도 잘 갈 수 있다.

자신을 쉽게 단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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