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 판의 바둑과도 같다.
흔히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 합니다.
바둑이 인생으로 비유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합리적인 근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먼저, 바둑이나 인생이나 선택의 연속이라는 점이 그러합니다.
때로는 승패를 결정지을 정도의 결정적인 선택도 있고, 어찌 보면 그저 시간연장책이나 큰 의미를 부여하기엔 자질구레한 선택도 있습니다. AI의 학습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체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훨씬 더 많은 기술력이 투여되어 그 수많은 가능성의 확률을 단시간에 학습했음을 증명하는 대상으로 바둑을 삼은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 기인합니다.
바둑을 조금이나마 배운 사람들이라면 바둑은 수순의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같은 모양인 듯싶어도 어떤 수순으로 그 모양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어디에 먼저 돌을 두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수순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판이 되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에서의 사소한 듯 하지만 그 결정적인 수순의 차이로 사람들은 저마다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 것과 매우 닮아 있지요.
바둑을 모두 두고 난 후 복기를 하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되면 고비마다 아쉬움이 남는 건 바둑이나 인생이나 매한가지임을 느끼게 됩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복기'라는 것은 그 엄청난 수순을 어떻게 상대방의 수순까지 외우며 다시 둘 수 있는지 신기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인생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그 순간 상대방과의 갈등이나 부대낌에서 상대방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사건들이 벌어졌는지를 기억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나 이른바 '떡수'라고 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두는 초급자들의 바둑은 복기가 어렵기 그지없습니다만, 중수를 거쳐 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그 순간 어디에 돌을 두었는지가 자신의 기풍이나 자신의 기력에 딱 맞기 때문에 그 흐름을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진 바둑에서 패착이 되었던 선택의 시점일수록 더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때 그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곳에 두었더라면, 전체 판을 읽고서 더 크고 더 급한 곳에 가일수를 했더라면 분명히 바둑의 승패는 바뀌었을 텐데,라며 그 바둑을 복기하고 자신의 실수를 가다듬는 것이죠.
그래서 고수일수록 자신이 진 바둑일수록 '복기'가 갖는 의미는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에서 실수투성이로 좌충우돌 제멋대로 사는 사람과 자신의 실수를 매일 밤 일기를 쓰면서 반성하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수양하는 삶이 발전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겠습니다.
한 판의 바둑에도 한 사람의 인생사와 같이 희로애락이 빼곡히 펼쳐지곤 합니다. 판의 흐름이 잔잔한 듯하다가도 갑작스러운 전투로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고, 자신이 승세를 타고 있다는 자만에 빠져 과욕을 부리다가 멀쩡하던 대마가 순식간에 몰사당하여 판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대개의 아마추어들의 바둑이 그렇기도 하지만 자신이 잘 두어서 이기는 바둑보다는 상대의 실수로 이기기에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도 그 이유를 차근히 살펴보면 인생과 참 많이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천하의 악수라고 평가할만한 수가 어느 순간 상대의 실수로 인해 행운의 수가 되어 죽어가던 바둑을 살리기도 하고, 분명히 둘 때는 제대로 된 정수라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한 번의 선택으로 거의 이기고 있던 바둑을 그르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바둑은 혼자서는 둘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있는 승부입니다. 승부는 승패가 결정짓게 되기 마련이지만 바둑돌이 죽는다고 바둑을 두는 사람이 죽지는 않습니다. 이겨도 한 판의 바둑이고, 져도 한 판의 바둑입니다. 진 바둑이 많다고 해서 바둑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매번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바둑을 두어 연승을 한다고 하여 바둑실력이 뛰어다나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상대가 있다고는 하지만 바둑은 자신만의 바둑을 완성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실력의 향상을 가늠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번 내 돌을 잡히지 않겠다고 아집을 피운다고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이, 남의 돌을 전부 잡겠다고 나서는 자만큼 어리석은 하수도 없습니다. 결국 바둑실력이 확연히 느는 순간은 자신의 돌 중에서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 경중을 따질 줄 알게 되는 바로 그때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바둑에서 실력이 일취월장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에 하나는 바로 '형세 판단'입니다. 바둑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승패를 가리는 시합입니다. 한 집만 이겨도 이기는 것이고 전체 대마를 모두 잡아서 압살을 시킨다고 그 승리가 더 빛나거나 점수를 더 주는 게임이 아닙니다. 반대로 한 집, 아니 반집차이로 졌다고 해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둑의 승패입니다. 반집 패도 결국은 패일뿐 승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기본적인 룰을 이해했다면 바둑의 고수는 자신이 현재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형세 판단'이 바둑을 두는 이의 레벨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자신의 전부를 걸고 모험을 해야만 하는 결정을 내릴 때도 있습니다.
가로·세로 19줄, 361칸의 바둑판에서 온갖 머리를 굴리며 싸우는 흑백 간의 전투는 본래 전쟁을 의미합니다. 당연힌 돌들은 병사를 의미하겠지요. 장기처럼 돌들의 차등이 있지 않은 관계로 어느 국면에서는 돌 하나가 장수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어느 국면에서는 희생마로 병졸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돌을 놓는 사람의 판단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은 돌이 끊기지 않고 연결되어 있기만 하다면 그리고 두 눈이상을 내고 집을 가지고만 있다면 바둑판 위에서 죽는 돌은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간단한 원리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내 돌을 모두 살리면서 상대 돌을 모두 죽이는 바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상대 역시 똑같은 생각으로 전투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바둑에서 초반 포석이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방향과 질이 결정되는 것과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중반에 해당하는 전투도 인생과 닮아 있으며, 마지막 끝내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세한 바둑에서 승패가 뒤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과 같이, 인생의 말년을 어떻게 수순에 맞게 중요도가 높은 순으로 차곡차곡 준비하느냐의 내용과 맞닿아 있습니다.
바둑의 기원은 역사적 문헌에 명확히 정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국 고대에 요 임금이 망나니였던 자신의 아들을 수양시키기는 방안의 하나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역사적인 문헌에 기록된 객관적인 사실에 토대하더라도 원시적인 바둑의 형태는 무려 3천 년 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정말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전설에 가까운 신선이 만든 인생의 축소판에 해당하는 게임인 셈이지요.
1600년 전 중국의 동진시대에 支道林 스님은 바둑을 '수담(手談)'이라 표현했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말이 없이, 손으로 바둑알만으로 서로의 의사를 표현한다고 하여 이르게 된 용어입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바둑을 뜻이 맞는 벗과 마음을 주고받는 교유행위의 하나로 삼았습니다. 승패가 반드시 결정되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그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의 수양을 위한 것이자 상대방과 이전전심으로의 또 다른 소통기구로 삼았던 것입니다.
바둑에는 관심도 없고 어떻게 두는지도 모르는데, 뜬금없이 바둑 이야기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꺼내는지 궁금하셨나요?
발검무적의 그간 연재시리즈를 보아왔던 분들이라면 눈치채신 분들도 이젠 있으실 법도 할 텐데요.
어느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다양한 세계를 소개하는 재미에 이번에는 오랫동안 구상해 왔던 바둑의 격언으로 푸는 인생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바둑을 모르더라도 이미 당신은 버젓이 한 판의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기사임에 틀림없으니까요.
수천 년을 이어온 바둑의 역사와 흐름 속에는, 바둑을 주면서 유의해야 할 혹은 지켜나가야 할 원칙 같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통틀어 '바둑 격언'이라고도 하는데요.
오늘부터 일주일에 3번씩 연재의 방식으로 이 바둑 격언이 우리의 인생에 어떤 방향타로 올바름을 제시해주고 있는 차분히 풀어가 볼 생각입니다.
이혼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연재하고 있는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매거진이 이미 두꺼운 단행본으로 한 권 넘는 분량을 채워버렸고, 이미 두 달 전 출간된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가 2권을 채우고도 남을 100회 차를 넘겨버린 시점인지라, 발검무적의 브런치에서는 최초로 연재 브런치북(사실 브런치 북 발간 부수 제한에 걸려 브런치 북 출간은 몇 해 전부터 할 수 없었거든요.)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며칠 후에 출간될 <어른들을 위한 위인전> 1권과 맥락이 이어져 있으면서도, 어찌 보면 전혀 새로운 테마와 형식으로 조심스럽게 연재를 시작해 봅니다.
바둑, 좋아하시나요?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