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고소(아동학대 재수사) - 4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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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되면서 교수는 동시에 다시 한번 아동학대를 간과한 초동 수사관에 대한 부분을 책임을 묻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번 수사이의신청을 했다가 말도 안 되게 밀린 것과는 별도로 아동학대 사건을 인지하고서도 여청과에 신고하고 사건을 이첩하지 않은 부분을 포함하여 협박죄에도 해당되는데 그냥 뭉개버린 사실과 명백하게 재물을 손괴한 부분에 대한 부분을 모두 무혐의 처리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기로 했다.
먼저 감찰에 대한 부분의 민원을 제기했고, 그와 동시에 처음 고소할 때 묵과하고 은폐한 채 넘어갔던 마블 대리석 건에 대한 재물손괴죄를 고소하기로 했다. 2021년 2월에 고소한 사건은 바로 중랑서 강력계로 배당되었다. 재물손괴죄 하나만 기존의 죄명이던 점유물 이탈에 의한 횡령에서 바뀐 것이기 때문에 바로 강력계에 배당된 것이었다.
강력계라서 그랬는지 고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담당 수사관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에 경찰청에 재물손괴죄 고소하신 김 선생님 맞으신가요?”
젊고 힘찬 목소리의 남자가 교수에게 물었다.
“네. 어디의 누구십니까?”
담당 경찰인 것은 감으로 알았지만, 교수는 이제 경찰이라고 하면 아주 넌더리가 날 정도로 한 달 이상 썩은 고등어에서 나는 냄새가 나는 듯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제까지 거쳤던 경찰 중에서 단 한 명도 법대로,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경험칙에 의거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네. 저는 중양서 강력계의 심재훈 형사라고 합니다.”
강력계라 그런지 자신의 계급을 말하지 않고 ‘수사관’도 아닌 ‘형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새롭게 들렸다.
“네. 어쩐 일이시죠?”
“고소하신 사건을 제가 담당하게 되어서요. 선생님이 한번 나와서 진술을 하셔야 할 것 같아서 일정 잡으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네. 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교수가 바로 대답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재수사도 결국 중양서 여청과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추 목사의 죄목을 이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다시 모두 물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저희가 강력계라서 근무가 좀 불규칙적이고 해서요. 죄송한데 낮시간에 여유 있게 조사를 진행하기가 그래서....”
“심야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시간을 맞추도록 하지요.”
시원시원한 교수의 대답에 심 형사가 반갑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주시면 제가 사건을 조속하게 처리하는데 도움이 되긴 할 것 같습니다. 바로 내일모레 저녁 8시에 괜찮으시면 그 시간에 진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건을 좀 살펴보긴 했는데....”
시간 약속을 정하면서 심 형사의 말투가 뭔가 묘하게 사그라들며 불길한 걱정을 자아냈다.
“네. 그런데요?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자세한 건 내일모레 오셔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요.”
교수 입장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벌써 이 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을 향해 치닫고 있는 시점에 협박죄를 묻었던 것을 다시 아동학대 혐의로 어렵게 재수사를 하고, ‘점유물 이탈에 의한 횡령’을 의율 적용을 바꿔 ‘재물 손괴죄’로 다시 고소한다고 고소장을 제출한 것이 문제가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경제팀처럼 앉아서 조서만 작성하는 이들과 직접 현장에서 강력범들을 때려잡는 강력팀의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그래도 명확한 선은 있을 것이라는 교수의 작은 기대치도 없지는 않았다.
이틀 후, 아직은 겨울 기운이 다 사그라들지 않은 듯한 쌀쌀한 2월 말의 밤 교수는 다시 중양서를 찾았다. 이번엔 지난번의 그 지옥철과 시간을 생각해서 밤 시간이기도 해서 차를 끌고 나왔는데, 하필이면 퇴근시간에 걸려 영동대교를 넘어 강북의 끝까지 가는데 또 한참의 시간이 걸려 겨우 약속한 시간 10분 전에 경찰서에 도착했다.
지난번 아동학대 수사를 받으러 갔던 방식과 위치도 이제는 익숙해져, 현관에서 심 형사의 이름을 대고 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김 선생님이시죠? 저 통화했던 심 형사입니다. 저랑 같이 들어가시죠.”
젊다기보다는 어려 보이는 작지만 다부져 보이는 몸집을 지녀 날래보이는 청년이 김 교수를 맞이해주었다.
“네. 가시죠.”
사무실에 도착하자, 막 마트에서 물건을 몰래 담아 계산도 안 하고 도망치다가 잡혀온 여자인 듯 현행범으로 잡혀와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잠시긴 했지만, 그녀와 그녀의 조사를 담당한 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수는 심 형사와 마주 앉아 그가 주는 커피를 받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처음 했을 때 제대로 사건을 초동 수사관이 처리했으면 이럴 일이 없었을 텐데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먼저 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고소장에는 명확하게 이전 불기소된 사건과 별개라고는 법적으로 구분을 하셨는데, 결국 범죄행위는 똑같은 것이라서 자칫 일사부재리에 걸릴 수 있는 건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네. 저도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서요.”
교수가 아예 이번엔 대놓고 심 형사에게 이야기를 단축하고자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진술조서를 시작할 때 그의 직업을 물을 테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의 전공이 그리고 그의 학교가 어디인지를 알 테고 그러면 이런 무의미한 말씨름을 안 해도 된다는 계산에서였다.
“아! 그러셨구나! 그래서 변호사 없이 직접 고소장을 꾸미셨는데 이게 전문가 냄새가 났던 거구나!”
심 형사는 약간 상기된 톤이 되어 다시 교수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게 사실 명백하게 점유물 이탈에 의한 횡령으로 기소가 되었어야 할 사건인데, 경제 1팀의 초동 수사관이 억지로 무혐의 처리를 해주고, 검찰에서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어주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겁니다. 사건을 검토하셨으면 더 잘 아시겠네요. 필드에서 계속 같은 걸 보실 테니까요.”
아예 굵은 못질을 하듯 단정적으로 말하는 교수의 논리적인 지적에 심 형사가 대답했다.
“그렇지요. 그런데, 저는 이 초동 수사관이 누군지도 잘 몰라요. 사실 저희가 팀만 달라도 서로 근무시간도 다르고 해서 경찰서가 워낙 조직이 크다 보니 서로 다 아는 사이도 아니거든요. 이 수사관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왜 이렇게 수사를 처리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네. 지금 경찰청에 해당 수사관에 대한 직무유기 관련 감찰을 요청해서 그쪽에서 수사를 진행 중이니 저도 그 초동 수사관에 대해서 갑론을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까 말씀하신 일사부재리에 대한 논란은 확실하게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아니. 굳이 여기서 강의를 하실 필요까지는 없으시고...”
그가 나쁜 경찰이라는 편견까지는 갖지 않으려고 했지만, 교수는 살짝 열이 받기 시작한 상태였다. 전화에서 그가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일사부재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사실 법리적으로는 말도 안 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악용하거나 자신들이 일을 하기 싫어하는 도구로 현장에서 경찰과 검찰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로만 듣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며 확실하게 그런 입을 놀리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 교수가 괘씸하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었다.
“이게 일사부재리 원칙에 해당되는 사건인가요?”
“네?”
교수가 법을 공부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 순간부터 심 형사는 부담스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자신도 나름 법에 대해 늘 공부하고 현장에서 그것을 적용해나가는 사람이었지만, 법을 학문으로 전공한 전문가라는 핸디캡은 자신이 뭔가 어설프게 형법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사부재리 원칙은 정확하게 규정하길, ‘판결로써 확정된 범죄는 다시 처벌할 수 없고, 본인의 이익을 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행위를 재심사하는 것까지 금하는 것으로, 개인의 인권옹호와 법적 안정의 유지를 위해 수립된 형사법상 원칙’이라고 대한민국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치 법정 드라마에 나오는 법대 교수처럼 중간에 쉼표에서 숨도 쉬지 않고 그대로 그 정의를 경찰서 한복판 강력계 사무실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네. 그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이전에 사건이 판결을 받았던가요?”
교수가 바로 심 형사에게 물었다. 심형사는 괜히 일사부재리 얘기를 꺼내서 사건이 안된다고 일 하나를 줄이려다가 도리어 골치 아픈 해명을 할 코너에 몰렸다. 그렇다고 강력계 형사의 가오가 있지, 그대로 고개를 숙이기 싫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이성은 그렇게 해봐야 개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외쳤지만 젊은 혈기의 감성은 그대로 반문을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불기소 처분이 판결인가요?”
“네?”
노타임으로 이어져 나온 교수의 반박에 심 형사의 말문이 다시 막혔다.
“대한민국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은 판결받은 사건에 대해서 말하는 겁니다. 판결은 법원의 판사만 할 수 있는 고유한 행위지요.”
“뭐 그렇긴 하지만, 사실적으로 검사들이 자신들의 처분이 있었으면 그걸 일사부재리로 넣는...”
“그런 잘못된 관행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법 위반이지요.”
“네?”
교수의 반박은 짧고 굵었으며 묵직했다. 바로바로 튀어나오며 장군을 부르는 압박감을 받는 장기를 두는 느낌을 심형사는 받았다.
“왜 그렇게 심각하게 또 논쟁을 벌이시고 그러나?”
언제 나타났는지 교수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걸걸한 전라도 사투리가 물씬 묻어나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심 형사를 코너에서 꺼내 주었다.
“아! 팀장님. 저희 팀 팀장님이십니다.”
심 형사가 자신을 구해준 팀장을 보며 교수에게 소개했다.
“아! 그러세요.”
이전 용인 동북 경찰서의 청문감사관실의 혈전(?)이 떠올랐다. 결제 라인상 바로 위에 있는 팀장이 자기 새끼가 코너에서 얻어터지기 직전에 나름 구해주겠다고 나타난 것을 보며 작년 가을의 그 구차하고 찌질한 팀장과 이 경사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냥 늦은 시간인데 얼른 고소인 조서 꾸미고 돌려보내드려야지. 무슨 일사부재리가 어쩌고 그런 걸로 오래 붙잡고 귀찮게 해 드리고 그래?”
경찰의 각과마다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특히 강력계는 나름 목숨을 내놓고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과의 특성상 유대감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팀장이 자기 새끼를 너무 법적인 지식으로 몰아세우지 말아 달라는 반어적인 표현임을 교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쯤에서 그의 새끼를 놓아주며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정의감을 표현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교수는 판단했다.
“네. 우리 심 형사님은 안 그러신듯 한데, 이 아래층의 경제 1팀의 비리 경찰이 명백하게 사건이 되는 건을 손을 타서 모두 억지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이라서요. 남의 집에 있는 물건을 없애버려 놓고서는 ‘갑자기 버리는 물건인 줄 알고 그냥 야산에 가져다 버렸다’라고 하는 게 도대체가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네? 그런 일이 있었던 거였어요? 말도 안 되지요, 그것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도 점유물 이탈에 의한 횡령으로 처벌을 받는데요.”
특유의 친근감을 내보이며 팀장이 교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제 말이요. 그냥 그때 점유물 이탈에 의한 횡령으로 기소 처리했으면 그만인 걸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되어서 지금 고소하신 건 의율 적용을 달리해서 재물손괴죄로 넘어왔습니다.”
심 형사가 팀장에게 간략하게 사건의 정보를 부연 설명했다.
“으음. 우리야 초동 수사관 녀석이 누군지도 모르고 왜 그렇게 처리했는지 모르지만, 고소장을 제출하셨으니 법대로 원칙대로 처리해드리면 되는 거지 뭐. 그렇게 조사 시작하는 걸로 하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 참고해서 얼른 조사 시작하고 더 늦게 전에 빨리 끝내고 보내드려야지. 시간도 너무 늦었는데.”
팀장이 교통정리를 하는 것으로 어설픈 ‘일사부재리’ 타령은 일단락이 되었고 몇 번을 반복했는지도 모를 그놈의 마블 대리석 건에 대해 설명이 이어졌다. 대략적인 진술은 금세 끝이 났지만 사건의 관건은 다시 사소한 증명 문제로 넘어갔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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