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사람에게, 웃으며 친한 척하는 게 옳은가?

슬기로운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당신에게.

by 발검무적
子曰: “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匿怨而友其人,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고 공손을 지나치게 함을 옛날 좌구명(左丘明)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하노라.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사귐을 좌구명(左丘明)이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러워하노라.”

이 장은 좌구명(左丘明)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평을 하면서 공자가 자신 역시 그의 삶의 자세와 같다고 하여 자신이 취하는 삶의 자세를 투영시켜 고백하는 형태를 취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먼저 좌구명(左丘明)이 누군지 살펴보자.

좌구명(左丘明)은 공자(孔子)와 같은 노(魯)나라의 학자로, 공자와 비슷한 시대이거나 약간 전이거나 후대의 인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과 ≪국어(國語)≫를 저술한 저자로 당대의 현인(賢人)으로 유명하였다. ‘좌구실명(左丘失明)’이라는 사마천(司馬遷)의 기록에 의하여, 눈이 멀었다고 하여, 후세 사람이 그를 가리켜 ‘맹좌(盲左)’라고도 부른다.

교언영색은 이미 앞서 ‘학이편’에서 공부하였으니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나 여기에 추가된, 지나치게 공손한 것과 특히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원망을 숨긴다’는 표현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상대방이 정말 사귀기 싫은 저열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싫다는 감정을 숨기면서 그 인간과 벗하는 위선을 의미하는 말이다.


현대 사회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익을 위해, 그리고 어른답게 굴어야 한다는 대의명분 하에, 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않고 그와 어울리는 위선에 가득 찬 사귐의 방식을 부끄러워하고, 그것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구는 좋아서 그러나? 다 먹고살려고, 튀지 않으려고, 욕 안 먹으려고 하는 거지.”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이론적으로는 다 맞는 말인 것 같지만 그걸 누가 몰라서 안 하나? 실천하는 것이 어려우니 그런 거지, 말이야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지. 싫은 사람한테 싫다고 하고 아닌 사람한테 아니라고 하는 거 누가 못하나? 그렇게 하면 그게 과연 슬기롭게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인이고 성인(成人)이라고 하는 거지. 애들처럼 살 수 있나?”


당신들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찔리긴 찔렸나 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정말, 과연 공자가 사회생활을 하나도 이해 못하고 그저 원론적인 이야기만을 떠든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나? 이제까지 매일같이 <논어>를 통해 공부를 하고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밖에 이해가 안 되었다면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우동사리라고밖에 해 줄 수가 없겠다.

자아, 다시 원문을 보자.

먼저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이라고 가르치는 내용으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총 4가지를 이야기하되 그것은 좌구명(左丘明)이라는 현인이 보여준 삶의 자세라며 그의 삶의 자세가 훌륭하다는 칭찬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당대 모든 이들일 우러러 칭송하던 훌륭한 분의 태도가 왜 훌륭한가에 대해 근거를 설명해주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해, 그 훌륭한 분이 당시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행동으로 그것을 궁행(躬行; 몸소 행하다)실천하였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 공자가 ‘학이편’에서 이미 절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던 ‘교언영색’에 더하여 점층의 방식으로 지나치게 공손한 것을 같은 위상으로 붙였다. 즉, 그냥 공손함이 지나치다는 의미가 아님을 시사한다. 위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지나친 공손의 이유를 말해주고자 함이다.


이는, 그 공손이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있는 교언영색류의 공손이기에 선의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순수하지 않은 오염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방점, 모두 별도의 것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귐에 있어 현인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한 것이다.


‘교언영색’을 하지 말라고 하면, 앞에 투덜거린 것처럼 슬기로운 사회생활에서 그것이 어렵다고 했던 당신에게 다시 묻는다. 자리만 바꿔 앉는 순간 당신이 ‘아!’하게 될 상황이 벌어진다.

당신에게 그렇게 하라는 줄 알고 그게 말이 쉽네 어쩌네 투덜거렸었는데, 만약 당신이 일정 위치 이상의 높은 신분, 혹은 높은 권력을 가진 이라고 생각해보자. 교언영색하는 자를 가까이하겠는가? 그가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충성을 믿겠는가? 그는 언제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신의 등에 칼을 꽂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는 놈인 것이다.


인지상정. 당연히 당신은 그의 그 교언영색을 싫어하고 경계할 것이며 그를 가까이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분별력 없이 그저 당신에게 아부하는 말만 듣고 홍냐홍냐하는 무능력하기 그지없는 머리에 우동사리만 넣고 다닌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자아, 이제 위에 봤던 저 별것 아닌 것 같은, 늘 떠드는 공자왈 맹자왈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훌륭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천하기엔 어려운 허황된 공론(空論)을 이야기하는, 그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는 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가?


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공자는 당신들이 칭송하는 현인이 그러하였는데, 나 또한 그렇다.라고 슬쩍 자신의 삶이 지향하는 바, 당신이 이제까지 살아온 바라며 한 줄 쓰윽 끼워 넣는다. 그 방식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사씨(謝良佐)가 이 장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두 가지의 부끄러워할 만함은 담을 뚫고 담을 뛰어넘는 도둑질보다 심하다. 좌구명(左丘明)이 이를 부끄럽게 여겼으니, 그의 마음 수양을 알 만하다. 夫子께서 ‘나 또한 부끄러워한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으니, 이는 ‘저으기 老彭에게 비한다.’는 뜻이다. 또 배우는 자들을 깊이 경계하여 이 점을 살펴 정직함으로써 마음을 세우게 하신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라 함은, 앞에 세 가지 개념을 붙어 있는 문구인 관계로 하나로 보고, 마지막 문장이 떨어져 있으니 합쳐서 두 개라 한 것이다. 그것이 도둑질보다 더 심하다는 표현은 당시의 표현으로 치면, 그것만큼 쓰레기 같은 행동은 없다는 최고로 강한 어조의 말이다.


지금은 도둑질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농경이 주조를 이뤘던 지역사회에서 도둑질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짓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또한 그러하다고 덧붙인 내용을 말하면서 언급된 ‘老彭’은 商나라의 어전 대부였던 사람인데 그 앞의 ‘竊比’라는 말은, 남몰래 견준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감히 드러내 놓고 옛 현인에게 자신을 견주지 못하는 뜻이다. 이 내용은 <논어> ‘술이편(述而篇)’ 1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싫은 사람에게 싫다고 하지 않고 억지로 웃음을 띄우며 친한 척 교우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수천 년 전 공자의 시대에도 지금처럼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그런 행동을 보인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구분하고 살필 부분이 있다. 감정적으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잘못된 행동을 하여 내가 싫어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나보다 예쁘고, 나보다 능력 있고, 심지어 수양을 통해 인격까지 훌륭하여 내가 질시하여 싫어하는 것은 당연히 이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좌구명(左丘明)과 공자가 싫어한다는 표현은, 그가 옳지 못한 언행을 보였기 때문에 싫어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노나라의 위계와 도덕을 모두 무시하고 참람된 행동을 보였다고 공자가 그렇게 질타했던 3 대부들에 대해, 공자는 결코 아부하거나 그들과 영합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하려면 자신의 조국, 즉 자신이 활동해야 할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현재 실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들러붙어야 한다는, 당신이 아까 구시렁거렸던 그 슬기로운 사회생활을, 공자는 부끄러워하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점은, 좌구명(左丘明)을 끌고 왔다는 것이다. 이 장의 주석에 주자가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뜬금없이 ‘좌구명(左丘明) 옛날에 유명했던 사람이다’라고만 단 것은, 그 행간을 이해할만한 자만 이해하라는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장치였던 것이다.


당시에도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고 훌륭하다는 칭송을 받은 인물의 행동이 그와 같았다는 점, 즉, 그가 실제로 위의 행동을 했다는 것은, 요즘 말로, ‘당신들이 그렇게 존경에 마지않는, 그 훌륭한 분이 이렇게 행동하셔서 존경을 받았단 말이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인 것이다. 이른바 권위의 의거한 입증 방식. 반론의 여지가 없다.


참으로, 공자는 똑똑함을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레벨별로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이게 함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당신이 내내 구시렁거렸던 것처럼, 성인의 말씀은 어렵기만 하고 좋은 의미인 것은 알겠는데 궁행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면, 누구나 성인하고 누구나 공자 하지, 지금 당신처럼 매번 성인을 따를 수 없다면 구시렁거리는 덜 떨어진 학생 하겠는가?

우리는 교언영색한 모습으로, 심지어 우리에게 비아냥거리듯 웃으며 개돼지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한 표 달라고 하는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을 너무도 지근거리에서 봐왔다. 물론 그들은 우리의 면전에서 혹은 그 무섭다는 파급력이 라이브로 퍼지는 TV에서 그런 언행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교언영색하는 이들에게는 기본이고 지켜야 할 철칙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들만 그런 거 아니다. 당신이 조직에서 틈만 나면 이상한 농담하고 회식자리에서 꼭 얼굴 반반한 결혼 안 한 여직원을 앉혀두는 것이 의전이라고 생각하는 그 윗사람을 변태에 잘못된 놈이라고 싫어하면서도 회식자리에서 총알같이 달려가 그의 빈 잔을 채우고, 노래방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기억했다가 번호를 누르고, 다음날 그가 좋아하는 숙취해소제를 준비해서 쓰린 당신의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띄우며 뚜껑을 따는 그 모든 행동은 좌구명(左丘明)과 공자가 부끄러워하여, 하지 않은 짓거리이고 도둑질보다 심한 쓰레기 같은 짓이라고 욕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감춰진 행간이 있다. 왜 공자는 그 윗사람에 해당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그런 자들에게 영합하려는 이들을 에둘러 후려쳤는가 하는 점이다. 당신이 앞서 구시렁거렸던 현실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미 수천 년 전에도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구? 잘못된 행동을 하여 내가 싫어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도 있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그렇게 헤헤거리고 챙기면서도 친구와 아내와 남편과 허심탄회하게 술 한잔 하면서 할 때는 그놈, 그 자식으로 확실하게 인식되는 그런 자들은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없을 수가 없지. 그런 자들이 이미 솎아지는 시대였다면 공자의 가르침도 필요가 없을 것이고, 공자의 존재감 자체가 이렇게 빛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그런 자들은 있어왔고, 특히 수천 년 전에는 대의 민주주의가 아니어서 어리석은 왕에게 영합하거나 자신이 권력이 있다고 참람되게 굴어도 되는 자들이 있었다면, 현대는 대의 민주주의랍시고 대중들에게 표를 받아야만 그 권력을 챙길 수 있는 구조임에도 그것들의 말처럼 개돼지라서 적당히 먹이를 던져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들에게 표를 찍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현실을, 바로 당신이 만들어 준 것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도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 역시 당신들이다. 현실이 옳은 것대로 가지 못하게 만든 것은 결국 그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운명적으로, 다른 신이 갑자기 등장해서 그렇게 조정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당신부터 바꾸지 못한다면, 수천 년 전 차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 공자의 시대에 살았던 썩은 내 나는 인간들의 방식이 우주선 타고 우주에 가서 살겠다고 하는 시대에도 바꾸지 못한 꼴이 된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을 해놓고서 발전을 했고 진화를 했다는 건방진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당신이 속한 조직,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조차 올바른 형태로 바꾸지 못하면서 당신이 감히 조금이라도 그렇게 고쳐보려고 하려는 자에게, 슬기로운 사회생활도 못하는 자라고 비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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