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Jun 17. 2021

'덕(德)'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대권주자들이여! 그대들이 진정한 정치를 알고 하겠다고 나서는 것인가?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뭇별들이 그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

드디어 <논어>의 2편 '위정'편에 발을 디뎠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주 5회 연재하는 방식으로 꾸준한 글쓰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무거워진 몸과 마음에 게으름이 살살 요동치려 한다.

연재처를 정해서 독자들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도 아니건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의 무거움에 다시 노트북 앞에 다소곳이 앉아 논어를 읽는다.

댓글도 하나 없이 구독자도 두 자리에 턱도 없이 미치지 않지만, 그래도 꾸준한 글을 연재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위정> 편 첫 장의 여기서 말하는 '정치'란 현대에 말하는 '정치'와 조금 다르다.

주자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바로잡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사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한다.

속이 뜨끔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큰 대의명분이 바로 그것 아니던가?

주자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덕'이란 말은, 얻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여 마음에 얻음이 있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렇게 풀어 설명하고 나니, 오늘날 말하는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정치를 한다'함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고, '덕'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얻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만족이고 행복이라면 그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겠다.

정자의 부가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

이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짧지 않은 인생 살아오고 시도해본 결과, 

이것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

첫째, 내가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돈이 많거나, 절대적 권력을 갖추고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서글픈 말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내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한다.

내가 그 위치에 올라서고 나면,

그렇게 힘이든 돈이든 갖추고 나면

그다지 불편할 것들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가난하고 돈 없어 치이는 이들의 억울함이

돈 많고 국회의원을 하는 자들에게는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른바,

돈이 있을 때는 시간이 없어 제대로 놀지 못하고

시간이 많이 놀려고 할 때는 돈이 없어 그러지 못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의 설명은 묘하다.

말은 멋있게 할 수 있다.

'덕'으로 정치하라, 그리하면 내가 뭔가 특별히 하지 않아도 다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알아서 따르게 되고 뭘 하려고 계획하지 않아도 여러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려면

어, 떻, 게

하라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다른 고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동양고전은 결코 구체적 행동 매뉴얼을 제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결국 한정 지어 말하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힌트는 가장 처음 주자의 설명에 있다.

내가 도를 행하여 내 마음에 얻음이 있고 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무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단다.

'덕'이란,

내가 일단 도를 행하고 그것이 내 마음에 얻음으로 와야 한다.

이것은 나만의 만족을 뜻함이 아니라

결국 내가 수긍할 정도 이상의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을 수 있는 경지 여야 함을 의미한다.


즉, 내 행동거지만을 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옷깃을 다시 여미게 만드는

무언의 감동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삼가며 하는 행동 자체만을 보더라도

내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내 행동거지와 한 걸음 한 걸음이 

다른 이들에게 경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혼자서 걷고 있을 때 누가 그것을 보고 신경 쓰겠는가 하겠지만

당신에게 하나가, 내 옆의 또 한 사람이 되고

또 한 사람이 되고

그렇게 여럿이 '대중'이 되고

그것이 곧 여론조사로 이어지고

그것이 연일 케이블에서 쓸데없이 정치를 떠벌이는 패널들이 말하는

'민심'이 된다.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당신이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당신이 해야 할 본분을 다하는 것만으로

정치는 완성된다.

그저 당신이 그것을 모를 뿐이고

해보지 않았을 뿐이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들이

많아지지 않았을 뿐이다.


대권에 나서겠다고 떠드는 이들이 많다.

본래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그랬으니

뭐 새삼 특별한 것도 없다, 고

생각하고 말겠는가?


당신의 시대에 바로 바뀔 수는 없겠으나

당신 하나 제대로 정신 차리고

'덕'에 비추어 얻음이 있게 되면

그것은 파급되어

당신의 자녀 혹은 당신의 자손의 시대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진정한 정치를 하자고

그대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두드리는 이유이다.


함께

바꿔보지 않겠는가?


이전 06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