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의자가 효에 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기지 않는 것이다." 번지가 공자를 모시고 수레를 몰 때 공자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맹손이 나에게 효도가 무엇인지를 묻기에 내가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번지가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 계실 때는 예로써 섬기며, 돌아가셨을 때는 예로써 장사 지내고 예로써 제사 지내는 것이다."
어려운 내용이 없어 보인다.
늘 그렇지만 고문은 원문을 보지 않고 누가 해석해놓은 걸 보면, 그저 술술 그렇지 그렇지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사실 당신은 이 글의 뜻을 조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방점은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無違(어기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두 번에 걸쳐 옮기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논어>는 단순 반복으로 글자 수 넓히는 낮은 수에 의해 적힌 글이 아니다.
두 번, 그것도 공자가 직접 그 상황에 대해 다시 말했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주자의 해석에 따르면,
맹의자가 질문을 해서 답변을 해주었는데, 당연히 후속 질문이 나와야 제대로 이해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맹의자가 이어서 묻지 않으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간파한 공자가 그 측근을 통해 완곡히 부연설명을 해준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뭘 잘못 알아들었다는 뜻인가?
어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부모의 뜻과 명령에 무조건 따른다고 이해했을까 봐 그랬다는 거다.
그러면 어기지 않아야 한다고 한 말이 그 의미가 아니고 다른 게 있다는 뜻인가?
그래 놓고 마지막에 살아가셨을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그 이후에도 예로서 섬겨야 한다는 선문답으로 끝낸다.
왜 어기지 않음에 대한 제대로 된 의미를 밝혀주지 않고 끝내나?
그것이 두 번째 방점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논어>는 산문이지만 행간의 깊이가 깊고, 복선과 이야기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선문답 같은 구절이 많다.
두 번째 방점인 예를 강조한 것은, 당시 참람(僭濫;분수에 맞지 않고 지나치다)하게 하는 집권층에 대한 따끔한 돌려치기였다. 맹의자에게, '너는 그 위치에 오르게 되면 절대 그러지 마라.'를 강조하려던 것이다.
문제는 어기지 않는다는 것과 예로서 섬긴다는 것의 연결점이다.
결론부터 정리하자면,
'어기지 않는다'의 목적어가, 단순히 '부모님의 뜻'으로 이해될까 싶어 기준선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이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