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운수 좋은날??(홍수)

세 찬빗줄기... 범람한냇물... 무너지는축사...

by 아이쿠


"지선아 오후에 비 많이 온다니까 우산 챙기고 장화 신고 가라."

엄마 말대로 장화를 신고 우산을 챙겼다. 엄마 말로는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굵은 빗방울이!!


1교시 국어시간이 끝나고 지금은 산수 시간.

선생님은 또 커다란 회초리로 초록 칠판 위의 숫자들을 가리키며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이 뺄셈 계산할 수 있는 친구??"

어쩐 일인지 쌍둥이 중 형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비가 계속 와요. 우산 안 가져왔는데"

전혀 다른 말을 하는 아이가 엉뚱하지만 선생님도 걱정스럽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다른 학년 선생님이 노크를 하더니 담임 선생님을 밖으로 불러냈다.

그 틈에 우리들은 또 떠들기 시작했다.

"야 쌍둥이 너는 집이 바로 학교 앞이면서 우산 걱정을 하냐?"

"그래도 우산 없으면 집까지 못가야"

"우리는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집까지 걸어가려면 오늘 죽어났다."

나만큼이나 집이 먼 친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생님이 교실문을 여는 소리에 우리의 수다도 멈추었다.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수업이 힘들겠다. 모두들 어서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해.

종국이 지선이는 동네 아저씨가 경운기로 데리러 온다니 경진이랑 같이 타고 가고 수진이랑 윗동네 친구들은

선생님이 태워줄 테니 언니 오빠들이랑 다 모여있어. 쌍둥이들은 엄마가 오신다니까 잠깐 기다리고"

선생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업이 일찍 끝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경운기로 데리러 온다니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우리 경운기 타고 집에 간대. 안 걸어도 된다냐"

"근데 비가 이렇게 많이 온디 경운기 괜찮다냐?"

"우리끼리 걸어가는 건 괜찮냐"

옆에 있던 영신 언니, 도인 오빠도 걱정을 했다.


"애들아 언능 타라 언능!! 얼른!!"

그때 호식이 아빠가 뛰어오며 소리쳤다. 비옷을 입고 있었지만 아저씨는 이미 온몸이 젖어 있었다.

"까딱하면 냇물 넘쳐 집에 못 간다. 언능언능!!"

언니 오빠들과 우리는 아저씨 손짓에 따라 경운기 쪽으로 달려갔다. 미끄러질까 봐 발에 온 힘을 주면서.



경운기는 뒷칸의 네 모서리에 나무를 세워놓고 나락(벼)을 말리는 파란 포장으로 천막을 만든 모습이었다.

비가 많이 오니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다. 아저씨는 우리를 경운기 뒷칸으로 태우고서는 얼른 앞으로가

시동을 걸었다. 포장 위로 떨어지는 시끄러운 빗소리에도 경운기의 텽텽텽 소리가 들렸다.

땅바닥은 미끌거려 경운기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쏟아지는 장대비에 앞이 잘 안보이자 아저씨는

"워메 급해 죽겠구먼 염병하네. 뭔 일이다냐"라는 말을 자꾸 되풀이했다.


우리는 비가 고인 포장 천장을 누가 더 많이 쳐내는지 내기하듯 장난을 치다가도 비가 얼마나 오는지 밖을 확인했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인 줄 알았는데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1km 정도를 오니 양갈래 길이다. 오른쪽은 경진이 동네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우리 동네로 가는 길이다. 왼쪽 길은 20미터 정도 길이의 다리가 있는데 다리 밑으로는 우리 동네까지 이어지는 냇물이 흐른다.

아저씨는 이 냇물이 불어 다리가 넘칠까 봐 걱정한 것이다. 그 다리는 우리 동네를 가는 유일한 길이니까.

다행히 아직은 괜찮지만 물은 이미 많이 불어 곧 넘칠 듯했다.


"아야 니네 동네까지 데려다 줄 시간이 없다. 전화했으니까 어른들이 지금 오고 있을 것이다. 니들 어른들

만날 때까지 우산 잘 쓰고 산 밑으로 빠짝 붙어서 가지 말어라. 돌이나 흙 떨어지면 큰일 난다. 알았냐??"

아저씨는 신신당부하면서도 고개를 들어 경진이 동네 어른들이 어디쯤 오는지 확인했다.

"워따 쩌~~기 느그 아빠 마중 나온다. 어서 가라. 어서 가. 길 가운데로 가라잉"

아저씨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리를 건너는데 곧 넘칠듯한 물살을 보니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에 무섭고 긴장이 되었다.


그사이 불어난 흙탕물은 냇물 근처의 작은 나무들을 집어삼켰고 큰 나무들도 가지들만 물살에 흔들렸다.

나도 나무처럼 저 흙탕물에 떠내려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리를 무사히 건너고 나서야 숨을 몰아 쉬었다. 다리를 건넜으니 이제부터는 미끄러운 흙탕길을 천천히 조심해서 가야 한다.


동네 입구에 도착하니 어른들이 모두 비옷에 장화를 신고 신작로에 나와 있었다.

아빠들은 안전하게 도착한 우릴 반기며 호식이 아빠 어깨를 토닥거렸다.

"오메오메 다행이다!!"

"호식이 아빠 수고했소 수고했어!!"

그리고선 일제히 냇가를 바라봤다. 냇가 근처에 벼를 심은 논이 있는데 물에 휩쓸릴까 봐 모두들 걱정이었다.

"뭔 놈의 비가 이러게도 많이 내린다냐?? 미쳤는갑네. 참말로"

라는 말로 불안한 마음을 덜어낼 뿐 동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빠는 무너진 축사 한쪽을 고치다 미끄러져 머리에서 피가 철철 났다.

그런데 엄마는 괜찮냐는 말 대신 "염병허네. 또 저 염병해"라며 중얼거렸다.

계속해서 비가 오니 할 일이 없다며 술을 마시더니 결국 저 사달이 났다며 속에서 천불이 난다 했다.

아빠는 그러던지말던지 기회라도 잡은 듯 몇 날 며칠 책을 읽거나 막걸리를 마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또 속이 터진다며 화를 냈다.

"논이나 한번 나가보시오!!"

"저렇게 큰 비에 논에 가면 위험하제. 비가 좀 그쳐야 나가보제 지금은 안돼"

아빠 말이 맞다. 엄마도 알지만 떠내려가는 논을 보고만 있자니 애가 타 괜히 아빠에게 시비를 건 것이다.


계속 내리는 비에 돼지와 소 축사에서는 똥냄새며 습한 지푸라기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뿐 아니라 닭장 속의 닭들과 내가 사랑하는 메리에게서도 털 비린내가 풀풀 나니 아무리 이쁜 메리라지만 날 풀릴 때까지는 거리두기를 해야겠다.

며칠간 내리다 그치다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한 비는 많은 것을 휩쓸고 갔다.

냇가 옆에 낮은 논은 떠내려가 형체가 없어지고 물살에 떠내려온 자갈부터 큰 바위까지 다양한 크기의 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높은 곳의 논은 떠내려 가진 않았으나 벼들은 물살 방향으로 모두 누워 있었다.


해가 나자 어른들은 또 일제히 장화를 신고 논으로 가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워 6가닥씩 모아 새끼줄로 묶었다.

벼가 썩지 않게 짱짱한 볕에 잘 말리기 위해서다. 만약 이런 비가 또 온다면 그때는 방법이 없으니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길 바라면서.


그리고 논 대신 차지하고 있는 돌과 바위들을 모두 주워서 다시 논둑을 쌓는 데 사용했다.

냇가 근처라 돌과 바위들을 기초로 하고 그 위에 흙도 쌓으며 냇물이 범람하지 못하게 높이 높이

쌓아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농사를 지을 논을 다졌다.

사람 손으로 다 하지 못하면 포크레인을 불러 원래대로의 논을 만들었다.

어른들은 모여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며 인간은 자연 앞에 나약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내리쬐는 땡볕 아래 허리 굽혀 벼를 세우고 묶으며 땀을 닦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쨍쨍한 햇볕에

반짝반짝 빛났다. 엄마, 아빠가 땀 흘리는 모습이 눈부신 햇살 때문인지 마치 청량한 광고 같은 느낌이었다..

그 여름 더 큰 비는 내리지 않았다. 어른들은 다행이라며 서로를 위로했고 일찍이 수업을 마치고 경운기를 타고 집에 오는 나의 운수 좋은 날도 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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