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사 하는 날
트럭 포장이사?? 사다리?? 아니 아니~~
난 이제 3학년이다.
개구쟁이 동생 진규는 2학년이고. 엄마 아빠가 싸운 날, 자기만 데리고 가라던 막내 진용이는 7살이다.
이렇게 고만고만한 우리 3남매 덕에 우리 집은 맨날 시끌벅적 난리다.
오늘만 해도 아침부터 싸우느라 벌써 큰소리가 났다.
"내가 냄비 들고 갈 거야!!"
형에게 냄비를 빼앗긴 진용이는 악을 쓰고 진규는 그런 진용이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내가 먼저 들었잖아. 형한테 까불지 마!!"
"아야 정신 사나운 게 니들 신작로 가서 놀아라"
엄마도 아이들의 소란에 머리가 아픈지 우리들을 쫓아내려 한다.
오늘은 우리 집 이사하는 날이다. 얼마 전 호영 오빠네가 도시로 이사 가자 엄마 아빠는 그 집을 샀다.
우리 집에 불이 났을 때, 돼지가 탈출했을 때도 동네방네 방송을 한 확성기가 매달린 감나무가 있는 그 집이다.
아침 일찍이 모인 동네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초여름의 따뜻한 공기, 맑고 깨끗한 하늘로 인해 고된 이사라기보다는 소풍을 가는 기분이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옷과 이불은 큰 보따리에 차곡차곡 담아 묶고 부엌살림은 커다란 빨간 고무 다라 몇 개에 냄비며 그릇이며 틈새 없이 쌓아 두었다.
"길섭아!! 뭐부터 옮길까나?? 장롱??"
"그러제. 우리 집 제일 큰 살림인게!!"
"뭣이 그러제여. 일단 방안에 있는 이불 보따리랑 옷 보따리 먼저 빼야제"
어젯밤 내내 싸놓은 보따리들이 아저씨들의 발길에 치일까 엄마가 순서를 정해주었다.
엄마 말대로 큰 보따리들을 꺼내 경운기 한켠에 실어놓고선 장롱을 또 다른 경운기에 옮겼다.
정개(부엌)에 있는 살강(찬장)과 가마솥까지 다 싣고서 경운기가 먼저 출발했다.
난 엄마를 도우려 큰 솥 하나를 들었는데 동생들도 나를 따라 돕겠다며 물건을 고르다 좀전의 사달이 난 것이다.
결국 진용이는 형에게 뺏긴 냄비 대신 주전자 하나를 들고 경운기를 따라나섰다.
"메리야!! 언능 와!! 언능!! 우리 이사가. 너도 같이 가야지!!"
메리도 눈치를 챘는지 꼬리를 흔들며 따라온다.
"누나. 우리 어디로 이사 간데?"
"호영 오빠네 집으로. 지금 우리 집보다 훨씬 커"
호영 오빠 집은 우리 집에서 200m 정도의 거리라 금세 도착했다. 장롱을 싣고 먼저 출발했던 경운기가 마당에 세워져 있었다. 아빠와 아저씨들은 어떻게 해야 낮은 방문으로 장롱을 통과시킬지를 얘기하고 있었다.
"어이 문턱 문턱 조심하소. 넘어지면 큰일이네"
"위에 닿네 좀 내려!! 앞을 내리란 말이요!!"
아저씨들끼리 큰소리가 나지만 싸우는 거 아니다. 그저 의견 조율일 뿐이다.
"이쪽에다가 놓으면 쓰겄소"
엄마는 빗지락(빗자루)으로 방을 쓸며 장롱 자리를 알려주고는 옷 보따리들을 작은방 한쪽에 대충 몰아넣었다.
집 입구 왼쪽에는 감나무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변소와 가축들을 키우는 헛간이 있다.
그리고 마당 끝에는 펌프질을 하는 수도가 있는데 그 수돗가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장독대 자리하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부엌 입구다. 집 입구를 제외한 3면이 모두 울타리가 처져 있어 나팔꽃과 오이, 동그란 호박 등의 넝쿨이 울타리 위로 서로 얽혀있었다.
부엌은 가마솥 대신 연탄불이 설치되어 있고 바닥은 시멘트로 발라놓아 흙한점 없이 깨끗하고 넓디넓었다.
그 부엌이 엄마도 맘에 드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다라에 든 그릇들을 찬장에 하나씩 정리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마루는 예전 집의 툇마루보다 훨씬 낮아 진용이가 오르내리기에도 수월할듯했다.
마루를 중심으로 정면은 큰방, 양옆 작은방까지 방이 3개인데 다락방 같은 작은방이 하나 더 있어 총 4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방 저 방 문을 다 열어가며 구경할 때 한 아저씨가 마당에 들어서 물었다.
"여기가 길섭 씨 집인가요?"
"네 마자요 마자. 벌써 왔소?"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낯선 아저씨를 반기고 아저씨의 손짓에 트럭 한 대가 마당까지 들어오자 아빠도 설레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트럭이 멈춰 서자 엄마 아빠는 뒷칸을 들여다보며 괜히 손바닥으로 차 뒷문을 두드리며 설레임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트럭 뒷칸에는 이사 기념으로 산 하얀색 냉장고와 티비가 실려 있었다. 부엌에 세워진 냉장고를 보고 신이 난 엄마는 행주뽀(행주)로 닦고 또 닦았다.
"안 나오요 안 나와"
아빠가 안방에 놓인 티비 앞에서 소리치자
"인자 나오요??"
안테나를 여기저기 놓던 아저씨도 소리쳤다.
어느 순간 지지직 거리던 티비 화면이 선명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바뀌자 아빠가 또 외쳤다.
"어 나오네 나와!! 인자됐네 됐어"
우리도 새로 생긴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와~~"하며 소리쳤다. 티비는 언제 봐도 신기하다.
지금까지는 티비를 보려면 외할머니 집에 가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듯하다.
"워따 길섭이네 집 크고 좋다."
어느 정도 짐이 정리되자 어른들은 예전에도 여러 번 와봤던 이 집을 새삼스레 칭찬하며 엄마 아빠를 기분 좋게 했다.
동네 친구들도 지선이는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그동안 이 집에 놀러 온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말이다.
"오늘 고생들 했소. 가서 좀 쉬었다가 이따 저녁 드시러들 오시오"
엄마는 이사를 도와준 동네 어른들을 위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럼 그랍시다. 오늘은 길섭이네 집들이 합시다."
호식이 아빠가 땀에 젖은 수건으로 바지를 탈탈 털며 대답했다.
어른들이 돌아가고 엄마는 음식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아빠는 티비를 이리 켜봤다 저리 켜봤다 하며 잘 나오는지 다시 확인했다. 우리는 미로처럼 연결된 모든 방문을 열어젖히고 이방 저 방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했다. 지난번 집은 일자형이었는데 이 집은 사각형이라 숨을 곳이 훨씬 많아 술래잡기하기 딱좋다.
난 새 집이 마음에 든다. 방이 여러개인것도, 마루가 낮은것도, 부엌이 깔끔하고 넓은것도 모두 마음에 든다.
특히 엄마, 아빠가 이 집에서 오늘 하루 내내 웃는 얼굴이라 더 좋다.
이곳에서 우리 가족이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