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불났습니다!! 불이나!!!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지만....

by 아이쿠

이제는 제법 더운 초여름 오후.

호영 오빠네 집 감나무 그늘에 앉아 언니들과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요즘 열심히 연습한 덕에 나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 이제는 언니들과 같이 놀 수 있는 수준이다.

손등 위에 올려진 돌 공기알을 공중에 던지고 낚아채려 할 때 어디선가 찌지직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앉아있는 감나무 위에 이장님의 방송을 알려주는 확성기가 있는데 거기서 나는 소리다.



"동네 사람들!! 길섭이 집에 불이 났습니다!! 지선이네 집에 불이 났어요!! 불이나!! 어서 가서 힘을 보탭시다."

확성기로 이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선아!! 니네 집에 불났다냐!! 야 가보자!!"

나는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언니들을 따라 달렸다. 우리 집 앞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수돗가에서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연기가 나는 부엌에 붓고 있었고 메리도 놀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짖고 난리였다.


"언능!! 물!! 언능언능!!"이라는 동네 사람들의 다급한 소리가 들리고 언니 오빠들도 돕겠다고 허둥지둥하다

넘어지고 난리법석이었다. 부엌에서는 회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어 집이 타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아야 언능 물 더 갖고 와라!! 언능!!"

양동이를 든 아저씨가 몇 번 더 부엌을 들락거리고서야

"워메 이제야 불이 꺼지고 없네! 이만한 게 어딘가!! 오늘 큰일 날 뻔했네.. 사람 안 다친 게 어디다냐!!

라며 모두가 안도의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때 5살인 막냇동생 진용이가 막 잠에서 깬 듯 부엌 바로 옆방 문을 열고 나왔다.

"오메오메 낮잠 자고 있었다냐?? 아야 큰일 날뻔했다."

사람들은 모두 오메오메를 연발하며 툇마루 위의 동생을 안아 감나무 옆 평상으로 옮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은 어른들의 놀랜 소리에 더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마침 들에 갔다 돌아오던 엄마 아빠는 좀 전의 상황을 듣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집안 곳곳을 살폈다.

"아 근디 부엌 가마솥에 뭐 올려다 놓고 갔소?"

"아니 난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부엌에서 불이 난 것이......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을 것인디.."

모두들 엄마가 음식을 올려놓고 깜빡하고 밭에 가 불이 난 걸로 결론지으려 할 때

"엄마, 내가 아까 부엌에서 뭘 하려고 했는데 불이 났어" 바로 밑 동생 진규가 개미 목소리로 말했다.

"니가 부엌에서 뭘 해야??"

"혜진이가 콩 볶아먹자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는데 연기가 막 나서 우린 밖으로 나왔는데 연기가 계속 났어"


엄마는 곧바로 불 꺼진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궁이 앞에는 타다 만 콩 몇 알과 플라스틱 바가지가 있었다.

이런 바보 멍청이들이 플라스틱 바가지에 콩을 놓고 볶겠다고 불위에 올렸다고 한다.

당연히 플라스틱이 불에 타느라 연기가 났고 그 연기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온 거였다.

불쏘시게로 사용할 나무들이 옆에 있었는데 거기로 불똥이 튀어 불이 난 듯했다.



"허허이 아무리 뭘 모른다고 바가지에 콩을 볶을 생각을 해야. 이만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동네 사람들은 애써 위로했지만 엄마 아빠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지 그날 동생은 당연히 회초리로 맞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고 빌었다.

나도 엄마 아빠만큼 화가 났다. 말썽쟁이 동생도 싫었지만 평소 혜진이가 죽도록 얄미웠는데 이제는 우리 집까지 태우다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혜진이를 혼내주기로 결심했다. 외할머니 집 마당에 들어서 주변을 살폈다. 집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방 한쪽의 벽지가 찢겨 나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찢긴 벽지 앞에는 빨간색의 걸레통이 있었고

걸레통 옆에는 육각형의 성냥갑이 있었다. 난 나풀거리는 벽지 앞에 앉아 성냥불을 켜 벽지에 불을 붙였다.

재빨리 도망가려 부리나케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어 지선이 왔냐??"

종훈이 오빠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어??!! 어??!! 연기!! 연기!!"라는 오빠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일단 도망쳤다.


하지만 목격자가 분명했던 나의 죄는 곧 낱낱이 밝혀졌다.

외할머니는 부지런히 밥 해 먹여놓으니 집에 불을 지르는 써글년이라고 나를 혼냈고 엄마는 동생을 때렸던

회초리를 다시 꺼내 들었다. 오늘 니가 죽더라도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회초리로 때리고 또 때렸다.

처음에는 엄마처럼 "아주 오늘 제대로 혼을 내" 라고 말하던 아빠도 엄마의 계속되는 회초리 매질에 놀래

엄마를 말렸다.

"자네 지금 뭐 단가? 진짜 애 죽겄네 그만해!!"

평소 인자한 엄마지만 한 번 화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걸 아빠는 알고 있었으니까.



"써글것이 불을 질러?? 그 집 탔으면 할머니랑 외삼촌이랑 다 어쩔 뻔했어?? 어??!!

한 번만 더 나쁜 짓거리 해봐!! 그때는 아주 다리를 분질러 불테니까!!"

눈물 콧물 줄줄 흘리던 나는 동생보다 더 빌고 또 빌어야 했다.


그리고 외숙모에게 한동안 "아따 지선이 겁 없다!!"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부끄러워 못 가던 외할머니 집을 갔을 땐 검게 그을린 벽지 한쪽을 못 본 척하려 애썼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외갓집 식구들은 검은 벽지를 볼 때마다 나를 째려보며 한 마디씩 했다.

나는 혜진이를 혼내주려다 또 내가 혼이 났다. 난 혜진이에게 안되는건가....

한동안 모두가 날 보며 간 크다고 놀려댈 때 아빠만은 "괜찮아"라고 나를 위로해줘 고마웠다.

아빠도..... 나처럼 외갓집에 쌓인 게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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