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어비앤비 Jan 06. 2020

잔지바르 삼시세끼

'니들이 잔지바르 게맛을 알아?'

스리랑카, 모리셔스와 함께 인도양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섬, 잔지바르(Zanzibar). 2년 2개월 간의 여행의 마지막 대륙인 아프리카 여행 중 알게 된 곳이다. 탄자니아 동쪽에 위치한 잔지바르는 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불리며 유럽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휴양지였고, 나 또한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 잔’이라는 유명 영화 대사처럼 에메랄드 빛 인도양을 보며 선베드에서 맥주 한잔이 하고 싶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능귀

여기서는 꼭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묵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바다가 보이는 숙소들은 가난한 여행자의 하루 예산을 훌쩍 초과하는 그림의 떡이었고, 실망한 나는 애꿎은 숙박 예약 어플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때 함께 여행 중인 짝꿍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여긴 어때? 리조트처럼 시설이 아주 좋진 않지만, 엄청 저렴해!”


짝꿍이 보여준 숙소는 <오가닉 홈스테이(Organic Home stay)>라고 적혀있는 에어비앤비였는데, 스크롤을 내려 지도를 보니 내가 원하는 바다와 딱 붙어 있는 데다가 무려 1박에 25불.  잔지바르 숙박 시세(?)를 고려했을 때 말도 안 되게 싼 가격. 너무 싸면 의심을 해보라고 했건만, 리뷰마저 칭찬이 한가득한 이 에어비앤비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오가닉(?) 하우스로의 여행이 시작됐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에어비앤비 손님이 처음인가요


정확한 주소가 없는 잔지바르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미리 받아 둔 지도를 보며 겨우 찾아간 그곳은 건물은커녕 그 흔한 표지판 조차 없었다. 우리를 데려다준 로컬 택시 기사님도 어리둥절한 눈치. 고민 끝에 택시기사 아저씨의 휴대전화를 빌려 호스트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했고, 전화를 받은 호스트는 우리가 있는 곳까지 나온다고,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 (왼) 에어비앤비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은 흔한 잔지바르의 동네 길 (오) 우리를 반겨준 호스트 무왐바

수 분을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4륜 자동차가 덜컹덜컹하고 달려오더니 우리 앞에 섰다. 호스트 무왐바였다. “Hi-“하고 터프하게 한 손으로 인사를 청해 오는 그는 잔지바르 스웨그 넘치는 레게머리를 한 멋쟁이 호스트였다. 무왐바의 에어비엔비는 우리가 기다렸던 그 큰 길가에서 차로 5분- 그러니까 사람 걸음으로는 20분 정도 더 들어가는 곳에 있다고 했고, 여기가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지도에도 없는 길이었다.


‘아니 이런 길을 나 같은 뚜벅이 게스트는 대체 어떻게 찾아가라는 거야?’


하고 속으로 구시렁대고 있을 때 즈음, 호스트 무암바가 외쳤다 “Here!”  2시간을 넘게 아니 3 시간을 넘게 찾고 찾은 그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에메랄드 빛 인도양을 보는 순간, 불만을 가졌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들어서자마자 “와!” 하고 짧은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돌과 나무로 만든 오두막집과 야외 주방, 조식을 먹는 라운지에서는 내가 그렇게 소원하든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였다. 천정이 뻥 뚫린 야외 샤워실에서는 빗물로 샤워를 하고, 전기는 태양열을 받아 쓴다고 했다. 무왐바의 에어비앤비는 말 그대로 ‘자연의 집(Organic House)’였다.

▲ 사실 처음 이 집을 예약할 때, 오가닉 하우스라고 하길래 조식 정도를 유기농으로 주는가 보다- 싶었는데- 경기도 오산이었다.
▲ 에어비앤비 스태프 쌈. 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과 빗물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을 왜 그렇게 신나 하며 설명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잠보 잔지바르! ☺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짐을 내리는 걸 도와준 청년의 이름은 “쌈”. 천진하게 웃고 있는 그는 서툰 영어지만 친절하게 집을 안내해주었다. (사실 쌈이나 우리나 잘하는 영어 구사자가 아니기에 우리는 정말 말이 잘 통했다.) 쌈은 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과 빗물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방법을 신나게 설명해주었다. 또 집을 소개해주는 내내 우리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강아지 가족들도 소개해주었다. 치맛자락을 ‘앙!’하고 물고는 놓아주지 않았던 댕댕이들은 생후 2 달이 채 되지 않은 댕댕이들이었다.



오가닉 하우스에서 첫 째날. 바다를 바라보며 감동의 조식을 먹고 있는데, 한 러시아 아저씨가 수영복 차림으로 “Good morning”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걸어왔다. 바다에서 아침 수영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사실 아침부터 수영을 한다는 개념은 수영장이 딸린 고급 호텔에서나 있을 법한 일 아닌가? 그곳에서는 원하면 언제든 에메랄드 빛 바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별 다섯 개짜리 호텔 수영장이 부럽지 않은 천연 수영장에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  원하면 구명보트를 빌려 카약을 탈 수 도 있고,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주기도 한다.



You can do whatever you want;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여러 에어비앤비를 머무르며 내 나름 세운 원칙들이 있다. 내가 게스트로서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정한 룰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말이 거창했는데- 결국 호스트에 공간에 온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호스트가 “싫어하는 짓은 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늘 그것에 대해 물어봤다.


“내가 이 곳에서 꼭 지켜야 하는 룰이 있어?”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호스트 무왐바에게 물어봤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터라, 룰(rule)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지만 대충 알아들은 듯했다. 그러자 호스트 무왐바로부터 돌아온 말은 “You can do whatever you want.”(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였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솔직히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써달라던가, 물을 아껴달라던가 등- 그가 평소에 운영을 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스트로서 굉장히 어려운 말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서 나, 그러니까 게스트를 믿어주는 신뢰와 또 도시에서 온 배낭여행자에 대한 배려를 느꼈다. 이 곳에서만큼은 빡빡한 일정과 룰 같은 건 내려놓고 그저 편히 쉬다가 갔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오히려 더 이 에어비앤비의 시설을 조심히 다루게 되었고, 물을 아껴 쓰게 되었다. 매일 늦잠으로 조식 마감 시간을 겨우 맞춰 식당에 가던 패턴을 바꿔 늘 조식이 시작하는 시간에 맞추어 식당에 갔다. 신기하게도 호스트에게 받은 마음이 멋진 게스트로서의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호스트 무왐바가 운영하는 이 에어비앤비의 운영방식은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 마마가 매일 아침 직접 만들어주는 탄자니아 식 팬 케이크 ’짜빠티’와 당도 100% 열대 과일들 그리고 따뜻한 커피가 조식으로 나온다.



니들이 (잔지바르) 게맛을 알아? 


에어비앤비 앞바다는 우리나라 서해안처럼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바다였다. 아침엔 집 앞까지 가득 찬 바닷물이 서서히 없어지더니 정오가 가까워오니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조식을 먹고 해먹에 누워있던 짝꿍이 벌떡 일어나 저녁거리를 구해오겠다며 나무 작살과 플라스틱 통을 주워 들었다. 뭐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도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짝꿍을 따라나섰다. 스태프 쌈과 짝꿍 나 그리고 검정 1호(=에어비앤비 강아지). 이렇게 네 명(?) 원정대가 꾸려졌다.

▲  해산물 원정대 사진 뒷모습

물이 빠진 바다엔 색색의 불가사리부터 귀여운 꽃게들, 한국에선 본 적이 없는 대왕 성게까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바다는 자연 그대로였다. 갯벌을 돌아다닌 지 1시간 즈음 지났을까? 저녁거리를 구해오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우리는 결국 저녁거리로 쓸 만한 해산물은 하나 구하지 못했다. 재미있었다며 깔깔대며 집을 다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한 어부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이리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본인이 쳐 놓은 통발에 걸린 큰 한 마리와 물고기 몇 마리를 툭- 하고 던져 주시는 거다.


“네? 이걸 그냥 주신다고요?”

▲  게, 물고기을 나눠주시던 어부 아저씨

그냥 주시는 거란다. '클래스'가 다른 잔지바르 인심에 감동을 받은 나와 짝꿍은 연신 “땡큐, 땡큐” 하며 감사의 말을 전했지만, 시크한 어부 아저씨는 땡큐 머신들을 뒤로한 채 쿨하게 자리를 떠나셨다. 그 날 우리는 싯가(?)의 잔지바르 자연산 게로 물고기로 해물탕을 해 먹기로 했다. 오가닉 하우스 야외 주방 한편에 있는 채소 선반에 있는 감자와 양파 등을 가져와 뽀드득뽀드득 씻어내고, 잘 안 드는 칼이지만 퉁퉁 썰어 해물탕에 들어갈 야채들을 손질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부터 쟁여 온 마법의 가루 치킨스톡으로 육수 맛을 냈다. 팔팔 끓는 물에 준비한 재료를 넣고 끓여내면 어설프지만 잔지바르 해물탕이 완성된다. 그 맛이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아마 신구 선생님처럼 외쳤을지도 모른다.


‘니들이 잔지바르 게 맛을 알아?’

▲ 해물탕을 끓여 먹었던 잔지바르의 게 살 사진

궁극의 탱탱함을 자랑하던 잔지바르 산 게 살의 식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재료가 이렇게 신선한데 맛이 없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잔지바르 삼시세끼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심심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오가닉 하우스의 생활은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소화시킬 겸 멍멍이들과 놀거나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있으면 시곗바늘도 멀리뛰기를 하고 노는지 금세 점심 준비시간이 다가온다. 그 날의 점심 메뉴는 칼국수. 칼국수 면이 없으니 직접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어 칼국수 면을 만들어 먹는다.

▲ 직접 면을 만들어 해먹은 칼국수. 텃밭에서 따온 고추를 다져 넣으면 안 먹은 술이 다 깨는 느낌이다.)

점심을 해 먹고 나면 뻘뻘 흘린 땀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해야 한다. 당연히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는다. 작열하는 아프리카 태양을 맞으며 시원한 빗물에 샤워할 때면 태양과 빗물이 만나 생기는 무지개가 샤워하는 동안 내 어깨에 살포시 앉아 있다. 그 느낌은 정말이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tmi지만 나는 이때의 경험 때문에 내가 집을 만들 때 꼭 별이 보이는 야외 샤워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새로운 로망이 생겼다.)

▲ 빨래는 통에 넣어 직접 발로 밟아 세탁하는 인간 통돌이 시스템이다.

밤에는 들어오지 않는 전기 때문에 앞이 안 보여 쿠당탕- 넘어져도, 샤워하다가 물이 끊겨 샴푸에 눈이 따가워도- 다신 없을 특별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묵고 진짜 체크아웃하는 날이 왔고,  호스트 무왐바형이 손을 흔들어주며 이야기했다. “Bye my friends.”그땐 공항 픽업을 갈 테니- 꼭 픽업 서비스를 신청하라는 농담을 잊지 않은 채 말이다.

▲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집에 오는 거의 모든 게스트들은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무왐바형.




에어비앤비 작가, 최라면

광고회사 다니다가 퇴사하고 41개국 140개 도시를 다녀온 #어쩌다세계여행자 

피난 여행 에세이 <도망친 곳엔 천국은 없다>을 예정 중입니다. (2076년)

브런치: @withcrh

Instagram: @ranhyungchoi

매거진의 이전글 그의 파리, 나의 파리가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