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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은미!

"은미야,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


2015년의 일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몇 달간 병원을 다녔다. 의사의 처방은 간단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할 것, 햇빛을 많이 쬘 것. 하지만 진짜 처방은 따로 있었다. 바로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말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살기로 했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무려 10년 이상 쉬고 있었던 달리기였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달리기였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 것도 달리기 모임에서였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기르며 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내 생애 첫 풀코스'란 달리기 모임을 만든 것도 바로 그 즈음부터였다.


"사실은 고통스러워요. 숨을 쉰다는 것, 그렇게 가장 말초적인 본능에 집중하게 되요. 발가벗겨진 나를 만나는 셈이에요. 모든 것을 잊고 그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 그때의 내가 가장 좋아서 달리게 되요."


마냥 달리기가 좋은 줄만 알고 던졌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우문 현답이었다. 머리가 하얘진다고 했다. 오직 숨쉬기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써, 회사원으로서, 너무도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줌마로써, 끝없이 밀려드는 복잡미묘한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인 셈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녀는 또 다른 사람이 되는 듯 했다. 발끝에 에너지가 모두 모이는 느낌,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심각한 우울과 비만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해, 그녀는 철인 삼종 경기를 뛰었다. 반환점마다 아이들이 찾아와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상상해본다. 그때 아이들은 엄마의 어떤 모습을 보았을까?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의 이름은 김은미, 어느 스타트업에서 회계를 담당하는 평범한 직원이다. 그녀와 함께 스몰 스텝을 걸어온지도 벌써 1년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에게 그런 아픈 스토리가 있는 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궁금했었다. 그녀를 움직이는 그 힘(Driving Force)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다. 그녀는 달릴 때 가장 그다워진다. 그 힘이 일상의 에너지로 전이되는 셈이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달리기를 10년 간 참은 셈이다. 그 이유도 단순 명확했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한 가족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아닐지. 하지만 언제까지 희생만 요구해야 하나. 이제는 이 땅의 아줌마들도, 엄마들도, 맞벌이는 하는 직장인들도, 가장 자기다운 삶을 위해 달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운영하는 스몰스텝 단톡방의 이름은 '다이어트 캐슬', 그곳에서 만나는 그녀는 엄하고, 카리스마 넘치고, 생기가 넘치면서도 무서운 사람이다. 이 방에 들어오는 것은 자유지만 나가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렇게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식단과 운동과 몸무게를 인증한다. 나 역시 지난 몇 달 동안 그녀의 트레이닝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식단 관리만 제대로 해도 몸무게가 빠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4,5kg 정도를 감량할 수 있었다. 덩달아 혈압도 내려갔다. 130 정도의 혈압이 115까지 내려갔다. 매달 검진을 하던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약간의 하이톤을 내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타이트한 식단과 운동 관리가 가능한 것은 그녀의 잔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이 방에 참여한 사람들은 매일 같이  자신의 식단과 몸무게, 운동하는 모습을 톡방에 올린다. 어떤 식단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숫자는 욕심을 불러 일으킨다.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그제서야 알게 된다. 사람들이 나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차피 다이어트란 결국 평생의 숙제 아니던가.


최근에는 나 역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침 산책 시간의 일부를 달리기로 돌렸다. 그래봐야 1킬로미터 남짓한 평지 구간이지만 게으른 내겐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때 단톡방의 누군가가 했던 말을 나는 떠올렸다. "걷듯이 달려보세요. 빠지는 뱃살을 상상하면서요." 나는 그 말대로 했다. 무리하지 않았다. 스몰 스텝으로 뛰기로 했다. 걷듯이 달리기로 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하자 운동의 강도가 달라졌다. 산책과는 또 다른 뿌듯한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흥건히 젖은 몸으로 가볍게 샤워를 한다. 그렇게 시작한 날은 하루가 남달랐다. 이걸 감히 달리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이것이야말로 스몰 스텝이 아닌가 싶은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쨌든 나는 달리고 있다. 매일 조금씩. 이 모두가 발로 '달리는' 은미 때문이었다. 문득 매일 10km를 달린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음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달리는 이유도 스몰 스텝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작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 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전력을 다해서 매달리고, 그래도 잘 되지 않으면 단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어중간하게 하다가 실패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다."


그녀에게서도 하루키의 모습을 만난다. 어쩌면 달리는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달리고 있을 것만 같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조금 밖에 없다. 그러나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이유라면 수천, 수만 가지의 이유를 댈 수있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전력을 다해 달리다가도 때로는 단념할 수도 있는 사람들, 그러나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매일 달리는 사람들... 그녀도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그들의 삶을 비범하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도 변함없이 달리는 그 사람들은 과연 그것을 알고 있을까? 그런 그녀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어보았다. 그토록 달리고 싶었던 10년 전의 김은미가 만날, 10년 후의 김은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금보다 더 날씬하고, 더 건강하고, 더 카리스마 넘치는 철인삼종 경기와 풀코스를 뛰는 러너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달리는 하루키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글을 쓰고 싶어요. 글쓰기는 달리기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요. 삶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얀 백지 상태이 자신을 만난다는 점에서,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말 비슷하지 않나요? 젊었을 때는 기록에 매달렸어요. 그게 달리는 김은미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나이가 들수록 기록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거에요. 그걸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달리기가 삶에 녹아든다는 건 바로 그런 의미라고 생각해요. 2013년 하와이에서 열린 철인 경기의 영상을 우연히 본 적이 있어요. 백발의 할머니가 두 팔을 들고 완주하는 장면이었죠. 그래서 결심을 했죠. 백발이 되어서도 달리는 은미가 되겠다고. 그러니 지금이라도 얼른 신발을 신고 달려나가세요. 너무 생각만 하지 마시구요. 지금 당장 뛰어보세요. 다름아닌 10년 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 그녀와 함께 달리고 싶다면 '다이어트 캐슬'

(참여코드: diet100)




스몰스테퍼스; Small Steppers

- 스몰 스텝을 걸어온,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


1장. 독서 - 정석헌, 매일 두 쪽의 책을 읽는 사람

2장. 새벽 - 액터정, 어느 직장인의 특별한 사생활

3장. 수학 - 송사장, 하나 더하기 하나의 삶

4장. 건강 - 김은미,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은미

5장. 휴직 - 나코리, 회사가 힘들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6장. 교육 - 송담이, 내 아이들을 위한 스몰 스텝

7장. 일기 - 김윤정, 자신을 위해 박수를 치는 사람

8장. 등산 - 임세환, 새벽 5시에 산을 오르는 이유

9장. 영어 - 이성봉, 영어를 사랑한다면 이 사람처럼

10장. 낭독 - 타마, 낭독의 힘을 아시나요?

11장. 창의 - 오경철, 아주 작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

12장. 산책 - 박요철, 가장 나다운 삶을 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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