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순간이 행복이 되는 시간
아침부터 날씨가 유난히 포근했다. 마치 봄이 성큼 다가온 듯했다.
달리기를 마치고 들어온 아이는 하늘이 파랗고 바람 한 점 없는 최고의 날씨라며 활짝 웃었다. 오늘은 달리는 동안 많은 사람과 마주쳤고, 서로 반갑게 아침 인사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이틀 동안 감기 기운으로 아침 운동을 쉬었는데, 오늘은 아이가 "나가셔도 되겠어요. 천천히 다녀오세요."라고 했다. 창문을 열어보니 바람이 훈훈하게 불어왔다. 갑자기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아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가볍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 평소처럼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섰다.
공원에는 녹아내린 눈이 군데군데 고여 있고, 곳곳에 살얼음이 얼어 있어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영상의 기온으로 금세 몸이 데워져 머플러를 풀어 들었다. 문득 '바람과 해님' 그림책 이야기가 떠올랐다. 길 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에서 사납게 몰아친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살을 비춘 해님이 이겼다는 이야기. 따뜻함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동화였다. 뜬금없이 그림책 생각이 나다니 '내가 참 생뚱맞네.' 피식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와 함께 팀홀튼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별다른 기념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 아쉽다고 했다. “엄마, 따뜻한 커피랑 도넛 먹으면서 작은 기념이라도 해요.” 아이의 말에 나도 기꺼이 동의했다. 의식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시며 소소한 기쁨을 나누는 것. 그렇게 일상을 특별한 의식으로 만든다면, 매 순간이 더욱 의미 있게 될 것 같았다.
집을 나서자마자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 대신 부드럽고 온화한 공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드는 듯 개운했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이 얼굴을 감쌌다. 거리에는 외출한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옷차림도 한결 가벼웠다. 마치 모두가 겨울 틈으로 급습한 봄을 만끽하는 듯했다.
아이와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렇게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집에서 나누는 대화와 탁 트인 곳에서 걷는 동안 나누는 대화는 분명히 다르게 다가왔다. 그 시간이, 그 순간들이 소중했다.
어느새 팀홀튼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매장은 널찍했지만,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따뜻한 커피 두 잔과 블루베리 도넛 두 개를 주문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반바지에 반팔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이 정도로 따뜻한 날씨는 아닌데... 역시 추운 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온도를 다르게 느끼나 보다.’
“엄마, 오늘 이런 시간 진짜 좋아요. 자주 이렇게 나와서 커피 마셔요.”
아이의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함께 걸으며 대화하고, 커피 한 잔에 웃음을 나누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순간들의 모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종종 잊고 지나쳤다.
커피를 마신 후 다시 공원을 향해 걸었다. 오후 햇살 아래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달리는 사람들, 한겨울의 풍경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이와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말없이 걸었지만,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공원의 큰 나무에 쌓였던 눈이 모두 녹아 사라졌다. 마치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오늘처럼 포근한 날에도, 추운 날에도, 계절이 바뀌어도, 우리는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겨울 한가운데서 맞이한 작은 봄. 그것은 단순한 날씨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가 다시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계절을 기다릴 필요 없이, 스스로 따뜻한 순간을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오늘도 작은 행복을 가슴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