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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Jun 19. 2021

호박도 공황장애를 겪더라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났다. 호박밭에서 나는 냄새였다.


지난주 경험한 오이의 성장은 경이로울 만큼 속도가 빨랐다.  오이를 수확하며 자라는 속도에 놀란 나는 시골에 내려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텃밭이었다. 오이는 비를 맞고  길쭉길쭉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기분 좋은 오이 수확이었다.


호박도 그렇게 자라 있으려니 내심 기대하면서 호박밭을 뒤져보았다.  무성히 덮여 있는 호박잎을 헤쳐보니 지난주  뿌려놓고 간 퇴비가 잡초 매트 위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 위로 날파리가 날아다녔다.


안타깝게도 호박 줄기는 군데군데 썩어 짓물러 있었다. 서로 치열하게 뻗어갈 곳을 찾던 잎과 줄기 사이에서 약자는 기를 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아기 호박은 자라지도 못하고 숨이 막혔는지 땅에 떨어져 썩어 버렸다.


호박들이 전멸할  위기에 놓여있었다.  호박은 공기가 잘 통해야만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호박밭은  밀집장소에 거리 두기도 안 되어 있고 좁은 땅은 포화상태였다. 거기에 영양분을 과다 투하까지 한 것이다. 당연히 햇빛도 공기도 통하지 않아 숨이 막혀 시들어 버릴 만하다.


응급처치가 당장 필요했다. 호박 원가지는 건드리지 않고 나머지 가지들은 잘라주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원가지가 어느 것인지 곁가지가 어느 것인지 이미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자란 상태다. 무작정 대충대충 줄기들을 잘라버렸다. 앞으로 자라날 호박들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곁순 제거가  당장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이제 자라기 시작한 아기 호박들도 잘려나갔다. 제대로 곁순 제거를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땅에 떨어진 아기 호박을 보고 있자니 사회초년생 시절 경험한 공황장애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공황장애라는 병명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이 힘들어 숨이 막혀 호흡곤란까지 왔었다. 갇힌 곳에 있으면 답답해서 당장 그곳을 나가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던 경험이었다. 신경정신과에 다녀온 것을 다른 이들에게 들킬까 봐 쉬쉬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줄기와 잎에 가려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공황장애를 겪다가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아기 호박들이 불쌍하기만 하다. 햇볕을 쬐지 못하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숨이 막혀 죽어버린 아기 호박들을 보니 그 시절의 나인 것처럼 마음이 짠해진다.

호박은 원줄기에서 열매가 수확된다고 하는데 내가 자른 줄기에 호박들이 달려있는 것을 보니 원줄기 인가보다. ㅠㅠㅠㅠ 미안하다 호박아 숨이 막힐까 봐 숨통을 좀 트여주려고 했는데 생명의 끈까지 잘라버렸구나.... 몰랐다. 줄기가  잘려나간 호박은 다시 열매를 맺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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