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유리 Apr 21. 2020

제3부 7화 수치심

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내 집에서 가장 깨끗한 곳은 화장실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청소하고 저녁에는 시간을 들여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닦는다. 내가 토한 음식물의 기름이 찌든 때가 되지 않을까. 행여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 튄 음식물이 시간을 거쳐 썩은 내를 품지 않을까. 언제나 마음 조리며 청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람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내가 가장 감추고 싶은 곳을 역설적이게도 가장 청결하고 반듯하게 유지하고 싶나 보다. 감히 부정적인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만큼 나는 아직도 거식증을 앓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그중에서도 제거형 거식증이라는 사실에 크나큰 수치심을 느낀다.




 사전에서 수치심(SHAME)은 <몹시 부끄러운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수치심은 거부되고, 조롱당하고 노출되고, 존중받지 못하거나 그 외의 당혹스러움, 굴욕감, 치욕, 불명예, 수줍음 등의 정동을 모두 포함한 정서이다. 반면에 죄책감(GUIT)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이다. 죄책감 역시 복수에 대한 공포, 후회, 뉘우침, 속죄 등의 정동을 포함한다.


 기어스 홉스테드 (Geert Hofstede)는 수치심은 집단주의적이고/ 죄책감은 개인주의적이라고 구분 지었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대한 연구 초기에는 다른 여러 학자들도 수치심은 공적 경험이고 죄책감은 사적인 경험으로 구분 지었다.

 수치심은 주로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처벌 같은 외적 규제에 의해 지배된다고 간주되었다. 따라서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치심을 느낄 필요도 없기에 공적 경험으로 보았다. 반면 죄책감은 타인을 떠나 자신의 양심이라는 내적 규제에 의해 조절되기에 사적인 경험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공적, 내적-외적 기준은 점차 비판되어왔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수치심이 꼭 구체적인 타인을 필요로 하기보단 내재화된 타인을 필요로 하며, 구체적인 타인 없이 혼자서 느끼는 수치심 경험도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헬렌 블로크 루이스(Helen Block Lewis)는 수치심은 자신의 전체가 문제 되는 경험이고 죄책감은 자신의 일부가 문제 되는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수치심은 <내가> 한 일에 대한 괴로운 정서라면 죄책감은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정서라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존재(being) 대 행위(doing)의 차이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엠 자코비 (M. jacoby) 역시 죄책감은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하거나 했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느끼는 정서이기에  당위 법칙, 선악의 문제, 양심과 관련된다 보았다. 그러나 수치심은 항상 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반응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수치심은 자기의 잘못이 아닌 것에 부끄러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머리카락 색, 너무 말랐거나, 너무 뚱뚱하거나, 혹은 특정 민족에 속한다거나 특정 집안 출신이라는 것 등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열등감을 가지고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자코비에 따르면 수치심은 항상 자신의 존재가 평가절하되는 것에 의해 발생하며 이로 인해 자존감의 상실을 동반한다고 한다.


 자코비는 수치심의 핵심 문제는 자기-가치 (self-worth)로 자기 가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요시하게 되고, 아주 작은 거부 신호에도 민감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나 역시 그렇다. 자기 확신과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여러 사회적 기준에 나를 구겨 넣으며 섭식장애가 시작되었고 점차 그 강도가 심해졌다. 위의 여러 학자들이 말하듯 내 병이 갖고 있는 수많은 선입견들 속에 나날이 내가 느끼는 수치심은 거대해져 갔다.


 섭식장애를 앓기 전부터 나는 학대받은 아이, 고아, 비행 청소년, 가난, 여성 그 외의 수많은 상황과 잔인한 단어들에 내 열등감은 치솟았고 그것들에 수치심을 느껴왔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무수한 상황과 내 잘못이 아닌 무수한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섭식장애를 앓으면서 그나마 유지하던 자존감은 더욱 낮아졌고 주변의 말들에 더 쉽게 흔들렸다. 수치심은 문제와 상처를 해결하고 치유하기보다는 꽁꽁 싸매고 숨기기에 급급하게 만들었다. 섭식장애는 누가 봐도 내가 선택한 것이었고 어떤 눈물겨운 과거를 지녔든 거식증을 앓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모든 것이 내 탓 같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부정당하고 없인 여겨도 되는 존재로 느꼈다.


 간질환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간질 환자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간질 발작을 할 때마다 환자는 물론 주변인들도 힘들어한다. 그러나 환자의 탓을 하지는 않는다. 섭식장애는 어떠할까. 섭식장애를 지닌 환자 역시 환자는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인들도 힘들어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인들과 그 외의 타자들은 암암리에 환자를 탓하곤 한다.


 섭식장애뿐만 아니라 알코올 중독, 약물 남용, 경계선 성격장애, 우울, 나르시시즘, 자살, 학대, 실직 등 여러 심리장애와 수치심이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가 급증하고 있다. 비단 섭식장애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신질환에서도 수치심과 환자와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하고 있다.


 딸기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딸기를 섭취해 이미 바이러스에 취약해져 버린 상태에서 치료를 가장해 다량의 딸기를 섭취한다면 그건 진정한 치료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수치심에 한번 맞아 자기 가치가 바닥인 환자에게 치료 시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더 큰 수치심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수치심이라는 정서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었다.

 이미 남들의 가치 기준에 그리 휘둘리며 살아왔는데, 나 자신을 사랑해 주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수치심에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에 화가 나서였다.


 수치심이 섭식장애에 어떻게 공격적으로 작동되는지는 다음과 같다.

주로 거식증 환자들이 제거형 환자들에게
"나는 구토하지 않는데, 손 안 넣어도 구토가 나오는데, 나는 양을 떠나서 그냥 음식물 자체가 먹고 싶지 않아, 왜 먹어? 운동해" 라거나 거식증을 자랑스러워하며 폭식증을 비하하곤 한다. 정말 정말 쓸데없는 거식 부심이랄까...

반대로 나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행복하다며 거식증을 비하하는 사례도 왕왕 있다.

지인들 역시 의도였든 아니었든 "마른 건 이쁘고 좋은데 그렇게 먹고 토하니 살이 안 찌지, 토하는 거 안 힘들어?,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이제 정신 차려야지. 이제 성인이잖아."

 이런 식의 타인이 공격하는 수치심은 물론이고,


 누군가 내 집 화장실을 사용할 때 드는 불안과 긴장(구토하는 내 생활습관을 들킬까 봐), 아무도 열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는 냉장고, 식사하는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마르길 바라지만 너무 마른 나를 부끄러워하는(오로지 나만의 상상) 지인과의 동행, 구토 후 거울에 비친 내 얼굴. 그 절망감과 부끄러운 마음들,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혼자 확대 해석하는 부분들까지.  나 혼자 부끄럽게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들도 셀 수 없다.


 섭식장애가 실제 내 잘못인지 아닌지의 논점보다는 죄책감마저 포함하는 수치심에 굴복당하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섭식장애 혹은 기타 정신질환에 일부분 내 탓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 부분에 죄책감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해서 그 질환이 곧 내 전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질환을 통해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힘겨운 치료의 과정을 지나가면서 수치심이라는 또 하나의 복병에 굴복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학교 폭력 피해자에게 네가 잘못했을 테니까. 성폭행 피해자에게 네가 옷을 짧게 입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적어도 나 만큼은 내 잘 못이 아니라고, 난 아픈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내게 말해줘야지.

 그 모든 것들이 괜찮다고, 다 과정일 뿐이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매일매일 말해줄게.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려 하잖아. 이토록 눈부시게 희망을 부여잡고 있잖아 그러니 괜찮아. 그 무엇도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나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니까. 자신 앞에 당당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자. 그거면 돼. 너는 잠시 아픈 것뿐이야. 그게 잘못은 아니야.


그건 그저 병일 뿐이고 병에는 책임이 없으니까
- 에밀 아자르





참고문헌  

남기숙, 『수치심』, 한국 임상심리학괴 추계 학술대회, 2003년.

국립 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서울: 두산동아, 1999년

Jacoby, M,『Shame and the origins of self-esteem. London: Routledge』, 1991년

[네이버 지식백과] 수치심/죄의식 (세계문화사전, 2005. 8. 20., 강준만)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2003. 5. 6)




이전 25화 제3부 6화 부분 관해를 버텨내는 힘-거식증이란 타이틀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섭식장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