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 및 각종 정신질환과 동행하는 인간의 삶
많은 심리 상담사들이 사실은 얼마나 깊은 전능 감에 도취되어 있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대학원 주임 교수님이 말해주신 일화가 있다. 가장 어려운 케이스를 가장 연차가 낮은 학생에게 넘겨준다는 이야기. 그 에피소드의 핵심은 진심이었다.
갖은 상담 기법이나 화려한 기술들을 떠나, 상대를 위하는 진실한 마음. 그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 사랑이 최고의 약이라는 말씀이었다.
브런치에 섭식장애를 연재 후 내가 받은 쪽지나 메일에도 상담에 대한 질문이 많이 있었다. 나 역시 긴 투병 생활 동안 여러 명의 상담사를 만나왔다. 나는 상담을 배웠고 실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이라 특수한 케이스긴 하지만 피 같은 내 돈과 시간을 상담에 투자하고도 상처 받았던 기억이 왕왕 있어 왔다.
나는 얼마 전부터 새로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상담사는 1 회기 때부터 매우 열성적이었다.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한 분이었지만 날 향한 걱정이나 진심이 퐁퐁 뿜어져 나와 상담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보통 1~2회기는 상담사보다는 내담자가 더 많은 말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상담을 원한 건 내담자였을 테니 그동안 어디서 말하지 못한 말들이나, 쌓아온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 봇물 터지듯 내담자가 이야기를 이끌곤 한다. 이번 상담에서는 1회기에서부터 삼당자와 나의 대화 비율이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상담사는 말이 많았다. 그것이 내 말을 가로막는다거나 오버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만큼 상담사가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아픔을 지녔던 시간이 길다는 것을 알기에 짧은 회기에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서로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상담사는 아주 조금이나마 내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길 바란다는 이 문장을, 상담사는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다.
상담사가 말이 많았던 것은 나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소개팅에서 상대에게 많은 질문을 받으면 그만큼 내게 관심이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이런 식으로 나를 주도해주고 이끌어주는 상담사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담실에 앉으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기 어려웠고 그렇게 침묵으로 시간을 보낼 때마다 주먹으로 허벅지나 책상을 내려치고 싶을 만큼 속으로 분노했다. 나에게 화가 났고 무심히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고 방치하는 느낌을 받게 하는 상담사가 미웠다. '저 자리에 앉아 그냥저냥 한 시간을 때우면 돈이 나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미워했다.
유일했다. 지금의 상담자만이 유일하게 1회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내게 미소를 짓게 했다. 불꽃 튀는 신경전이나 기싸움 따위가 없는 진심으로 가득했던 50분이었다. 그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상담. 정말 유일했다. 그와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첫 만남부터 들었다. 내가 모든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에 그녀가 웃을 수 있길. 그렇게 되길 바랐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틀린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무엇이 더 좋은 것이고 무엇이 더 질 낮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분명한 건 자신에게 맞는 상담사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결론적으로 심리 상담은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는 이야기다. 앞선 연재에서 회의적이었던 약물치료 역시 단기간에 날 좋아지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치료이다. 언제나 말하듯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지나쳤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 약과 상담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준다면 분명히 눈에 띄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약물 처방 역시 초반에는 의사와 최소 몇 주에서 몇 달에 걸쳐 자신에게 맞는 약물을 선별해 나간다. 내 정신과 호르몬 상태에 맞는 용량과 내 생활습관에 맞춘 용법,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가장 부작용이 덜하면서 도움이 될 약물 선정. 이 과정 역시 절대 짧은 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내 마음을 달래고 다스리고 회복시키는 일을 함께 할 파트너를 찾는 일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그 효과는 크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길 권유한다.
나는 무의미한 상담시간이라고 느끼는 나날에도 빠짐없이 시간을 지켜 상담을 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 외출할 이유를 주는 상담 자체에 의의를 두기도 했었고, 어찌 되었든 나를 돌보는 일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도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상담사를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위하는 날도 언젠가는 오겠지...)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로지 상담사로 하여금 말이다.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얻은 것이 전혀 없는 상담은 없었다. 상처 받았던 순간은 있었지만 내가 지나온 모든 상담이 나름의 역사와 의미를 갖는다. 적어도 내가 벽보고 이야기하는 것 보다야 낫지 않았겠는가. 적어도 내 입을 거쳐 문장이 된 과거들은 한 번이라도 더 내가 어루만져준 것일 테고, 그렇게 말로 꺼내지기 위해 한번은 더 내 마음과 머리에서 정리가 되어야만 했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말할 수 있겠다.
반대로 상담사의 입장은 어떠할까. 상담이란 건 상담사가 아무리 좋은걸 주려고 해도 내담자가 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마치 사랑과 똑같은 것이다. 내담자에겐 타이밍이란 것이 있어서. "그때"가 오지 않으면 "아!"하고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담사가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담은 씨앗을 심고 물을 뿌리는 것과 같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씨앗을 심을 수도 있고 그늘이 되어 줄 수도, 비를 내려 줄 수도 있다.
내담자의 마음에 상담사가 씨앗을 심는다고 해서 그 꽃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은 상담이 끝나기 전에 꽃을 보았다고 자신이 심은 씨앗이 꽃을 피웠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저 내가 심은 씨앗에 또 다른 누군가가 햇빛이 되어주고 또 다른 상담사가 물을 뿌려주고 또 다른 지인이 바람을 불어주었을 때 비로소 내담자가 스스로 꽃을 피우는 일이니까. 그 일의 연장선에 의미 있는 행동을 한번 해주는 것이 상담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의미 있는 역할을 해줄 지지자를 내 옆에 한 명이라도 더 만들어 두고 경험한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내게 긍정적인 것 아닐까?
현재의 나는 심리상담과 약물치료 그리고 마음 챙김 명상을 함께 하고 있다. 눈에 띄게 달라지는 나의 하루하루를 느낀다. 동기부여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가치에 대해 아주 세세하고 깊이 있게 다뤄왔다. 이제 나는 그 동기와 의지를 가지고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에 손을 내밀며 변화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