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5
많은 사람들이 미용실을 살롱(salon)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살롱은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된 단어로 원래 응접실, 전시회라는 의미를 가졌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떨까. 우리에게 살롱은 명확히 미용실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나는 문득 그 이유가 궁금했다. 어쩌면 그 이유가 한국에서 미용실이란 공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용실의 고객은 크게 둘로 나뉜다. 단골과 신규. 미용사들은 하루에도 수없는 고객을 만나는데, 당연히 그 중엔 처음 보는 고객도 있고 다시 보는 고객도 있다. 근처에 사는 고객도, 멀리서 온 고객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미술) 전시회장을 가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취하기 위해서고, 처음 그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 다시 그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온 사람들이 모두 방문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미용실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용 살롱에 가는 이유도 아름다워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래서 한국에서의 살롱(미용실)은 그 단어의 원래 의미처럼 (미술)전시회장이기도 하다. 사람의 헤어가 도화지라면 색상, 곡선, 질감, 변형, 명암 등을 통해 하나의 미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미용실은 자판기처럼 계산을 하고 물건만 사면되는 공간이 아니라 자리에 앉아 서비스를 받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소통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장(場)이 마련된다.
취업 면접을 앞두고 단정하게 커트를 하러 온 사회 초년생부터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다운펌을 하러 온 청년, 자식들을 위해 평생 헌신하느라 흰머리가 늘어버린 누군가의 어머니까지.
그렇게 고객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미용실 의자에 앉는다.
미용사는 머리를 하는 동안 헤어에 대한 얘기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상, 고민, 넋두리 등 삶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동네 미용실은 동네 미용실대로, 번화가 미용실은 번화가 미용실대로 그 분위기에 따라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소박한 인연의 공간이 된다.
미용실은 헤어로 맺어진 인연의 공간이기 때문에 어떤 고객과는 오랜 친구처럼 인간적으로 정말 가까워지기도 하고, 또 어떤 고객에게는 이따금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응원과 조언을 해주는 멘토의 역할을 하게 될 때도 있을 게다. 물론, 그 중에는 진상손님이라는 악연들도 있다.
민감한 이야기는 남겨두고, 일부러 좋은 예시만 든다면, 우리 동네 미용실만 하더라도 그곳은 단순히 머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담소를 나누는 카페이자, 근심을 나누는 친구이자, 웃음이 꽃피는 영화관이다. 나의 어머니도 그런 이유에서 그 미용실을 자주 가시곤 한다.
어머니는 그 살롱에서 나의 얘기도, 혹은 걱정할까봐 자식들에게는 차마 하지 못한 얘기도 어느 미용사와 나누며 삶의 무게를 덜고 계셨을 것이다. 어쩌면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만큼 근심도 같이 잘려 나가는 곳이 살롱일 수도. 혹은 그런 공간이 미용실이면 멋지지 않을까.
친하게 지내던 10년 단골 할머니 고객이 두 달, 세 달이 돼도 소식이 없을 때, 대부분의 미용사는 매출이 끊겼다는 걱정보다도 그 분의 건강을 먼저 걱정할 것이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분들에게 그분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미용사가 그랬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으로 가시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자신의 엄마의 일인 것처럼 서글프게 울었다. 미용실은 그런 곳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이 오가는 그동안의 정(情)이 깃든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단골손님이 는다는 건, 서로가 친분이 생겨야 가능하다. 친분을 쌓기 위해선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도 정답게. 미용사의 입장에서도 고객의 입장에서도 1시간~5시간동안 오로지 머리만 하는 것은 어색하고 기계적이기에 친분이 쌓이는 건 서로에게 유익하다.
우리는 물어보고, 대답하고, 생각하고, 공감하면서 친해진다. 단골 미용실이 있다는 건, 그 곳이 머리를 잘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곳의 분위기와 그 미용사와 성격이 잘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골 고객이 있다는 건, 당신의 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있는 미용실의 분위기와, 당신의 성격과 잘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실력이 월등해도 불쾌하면 안 간다.
좋은 고객과 좋은 미용사는 모두 인간적이다.
“저 내일 졸업해요!”... 설렌 표정을 짓던 한 소녀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번엔 꼭 합격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머리를 하러 온다. 어느 날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며 단발을 하러 오더니, 몇 년 뒤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다며 미소를 짓는다.
그들은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되고, 세월이 흘러도 그때마다 저마다의 새로운 사연을 갖고 또 다시 살롱을 찾아올 것이다.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들이 반드시 모인다. 나는 항상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미용을 하고 있는 당신이 힘이 들 때면 한번쯤 이 구절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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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든,
미용실 의자엔 한 사람의 인생이 다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