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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고바른 Oct 29. 2023

나의 서른두 살

두 번째 육아휴직을 끝내며

1. 침묵은 서운함의 표현


지나간 인연들이 떠오르는 날이면 올라오는 서운함의 감정을 쓰게 다시 삼킵니다. 즐겁던 추억은 아쉬움 반, 미안함 반으로 섞여있으니 그런 건 진작에 모두 잊어버린 척 훌훌 털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흔히 말하지만, 취직과 결혼 그리고 육아라는 갈림길을 지나고 난 이후에는 거의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출산예정일을 한 달 앞두고 육아휴직을 시작했습니다. 심한 독감에 걸리더니 기침과 함께 둘째 아이가 태어났어요. 재접근기라고 불리는 시기를 보내는 첫째 아이를 다독이며 코로나 시기를 아이들과 주로 생활하게 되었지요. 마침 휴직 중이였기에 돌봄 공백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좋았지만요. 아이들을 향해 혼자 하는 말이 익숙했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세상 타고난 외향형 같았던 J는 내향형 중에서도 대장인 것으로 밝혀진 지 좀 오래됐거든요. 나는 고적하게 혼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온전히 기억이 나지 않는 이 시기를 나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감정으로 지냈습니다. 만족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퉁퉁 불어버린 모습만큼 나를 돌보지 않아 곪아 버린 마음들도 있었지요. 아무튼 몇 번의 어린이집 휴원이 있더니 해가 지났더라고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멋진 노을이 보였어요. '아 이제 복직이구나.' 무엇도 준비된 건 없었지만 다시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급하게 돈을 들여 머리도 하고 운동도 다녔습니다. 저 노란 해는 금방이라도 넘어가버릴 테지만 혼자 암흑 속에 남겨질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답게 보이고 싶어서 그리고 사람답고 싶어서 노력했던 나의 서른두 살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순 없지만 나라는 한 사람도 챙기기 어려운 그게 나이기에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묵묵히 걸었습니다. 서운함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없이 어느 날 사라진 사람도 있었어요. 끊어진 연은 그 어떤 것으로도 붙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침묵은 나의 서운함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그것은 절대로 저절로 전해지지 않을 겁니다.


2. 사람답고 싶어서


두 번째 복직의 시작은 생각보다 순조로웠습니다. 자꾸만 남자 동료에게 여보라고 말실수를 하는 것 외에는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어요. 주변에서 배려해 준 덕분에 단축근무도 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이 완벽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이 바뀐 회사 문화와 시스템은 든든한 동료들 덕에 순탄하게 극복해 갔습니다. 이전부터 해왔던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적당한 일을 맡게 되었으니 힘들 것도 없다 생각했지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괴감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가끔은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습니다. 여자는 애를 낳으면 전과 같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니까. 나는 둘이나 낳았으니, 애초부터 잘 잊어버린 나인데 놀라울 것도 아닌 것일까? 이렇게 도태되는 것일까? 혼란스럽고 외로웠습니다. 이제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그저 그런 사람인 걸까? 아니 그저 그런 사람이 더 그저 그런 사람으로 퇴행하는 걸까?



3. 희망을 담아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는 멍하니 바라만 보았습니다. 매 순간 앞을 보고 걸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왜 난 또 이 하루로 돌아온 걸까? 몇 번을 돌아와야 난 비로소 앞으로 갈 수 있을까?


한참을 그렇게 쳐다만 보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제까지 잘 해온 거야' 나를 달랬고, 다시 한 모금에 '그래 살 길은 메모뿐이야. 글을 쓰자.'며 응원했습니다. 적당히 따듯해진 잔을 두 손에 들고 순간만은 커피를 즐겼습니다. 앞으로의 희망을 담아서요.


필연적으로 맞이할 그 순간이 오기까지는 근처에 다 와서도 알  없나 봅니다. 여러 번의 바닥을 경험하고서야 겨우 메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상황은 변하는 것이 취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새로이 업무를 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한 잔의 커피에 담은 희망처럼 삶은 갑자기 순조롭게 흘러가기도 합니다.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
-칸트(독일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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