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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고바른 Jul 31. 2024

짧고 나쁜 책을 쓰자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당신이 작가이건 아니건,
나는 이 책이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에 필요한 자질들을 발견하고
다시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닌지
저마다 은밀히 궁금해한다.
우리는 더듬거리고, 사랑하고, 패배한다.
p.13


한창 책방 투어에 열을 올리고 있던 때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리는 없다. 외근 나갔던 일이 일찍 끝났길래 나는 또 지도에 '책방'을 검색하고야 말았다. 주변에는 생각보다 책방이 꽤 있었는데, 오전에만 운영한다는 책방은 갈 수 없었다. 결국 찾아간 곳은 복층구조의 교회당 같은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는데, 볕이 잘 들어서 좋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 탐험에 나서기 직전, 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부터 들렀다. 그런데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화장실에는 메모가 붙어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책 한 권을 구매하거나 커피라도 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메모가 그곳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어딘가 불편해졌다. 차라리 요의를 참으며 책을 고르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자고 화장실을 먼저 들리고 말았을까. 따뜻한 미소를 갖춘 주인장은 단순간 감시자로 탈바꿈되었고, 나는 무거워진 마음 한 편을 애써 모른척하며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릴 적 어떤 날처럼 엄마가 옆에서 "오늘은 다섯 권이야. 그 이상은 안돼"라고 옆에서 외쳐줬으면 했다.


이 불편한 마음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어떠한 책방에 들리더라도 책 한 권 이상은 꼭 구매하고야 마는 사람이다. 오히려 많이 사지 않기 위해서, 단 하나의 추억이 담긴 책을 고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데 스스로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했다. 확신하지 못했다. 이상한 패배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이 책을 만났다. 자랑스레 표지들을 내보인 테이블 옆 좁다란 서가 사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은 우리 안에 세부를 새긴다.
커다란 기쁨도 마찬가지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길
강력한 감정은 그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자.
적막과 고요를 키우자
새로이 발견하게 될 때까지 강한 감정 쪽으로 향하자.
p.47


무엇이든 시작해 보고 공언하고 저지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이 브런치북도 그 짓들 중 하나이다.) 소극적이고 자기 검열이 아주 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으면 드러내지 않았다. 공표되지 못한 노력들이 저평가당했지만 그 벽을 뛰어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 아주 작은 사람이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시작도 하기 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일단 써야 한다. 머릿속의 단어, 문장을 밖으로 드러내고 무조건 써야 한다. 그래, 차라리 짧고 나쁜 책을 쓰겠다는 생각부터 접근해 보자.


모퉁이를 만들자. 퍼즐을 잘 맞추는 사람은 모퉁이부터 만든다.
그들은 색깔이나 모양을 무시하고 그저 각진 모서리만 찾는다.
그들은 아주 조그만 모퉁이 하나를 맞추는 데 집중한다.
모든 책과 이야기, 그리고 에세이는 단어 하나로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하나의 문장이, 그다음에는 하나의 단락이 이어진다.
이런 단어나 문장 단락 들은 실제로 시작되지 못하고 끝나버리기도 한다.
지금은 알 수 없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야기 전체를 알려고 안달하지 말자.(,,,)
당신은 전념, 그래, 이 사소한 모퉁이에 전념하고 있다 단어 하나.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세부. 전진하자. 그리고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
p.32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영제: Still Writing)의 저자인 대니 샤피로는 <가족사>, <흑백> 등의 소설 5권과 <슬로모션>, <헌신>, <상속> 등의 회고록 5권을 썼으며, 유명 대학에서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책은 앞서 소개한 책들처럼 직접적인 작법을 가르치진 않는다. 그저 계속 쓰는 삶에 대한 80개의 이야기 조각을 엮은 산문집이다, 작가의 내면부터 시작되는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글은 잔잔한 감동과 함께 쓸 용기를 준다.


<책 소개>

제목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Still Writing)

저자 - 대니 샤피로

옮긴 이 - 한유주

출판 - 마티

카테고리 - 독서/글쓰기

쪽수 - 328p

크기 - 135*210

ISBN - 9791190853255

발행일 - 2022.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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