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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고바른 Jul 30. 2024

핍진한 문장을 쓰는 사람

소설가의 일, 김연수

매일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p.19

지난 기억을 떠올린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처음 읽었던 날의 기억이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감상을 남겼기에 얼마든지 바로 기억을 불러올 수도 있다. 23년의 5월의 어느 날은 책이라는 취미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한창 책방연희를 통해 책에 대한 찬사가 담긴 책인 <갈대 속의 영원> 함께 읽기 중이었다.) 좋은 책을 발굴해서 읽겠다는 느낌으로 여러 서평들을 찾아보았는데, 김연수 작가님의 이름이 거듭 언급되어 궁금했고 그때 결국 고른 책은 <청춘의 문장들>이었다.  북린이의 눈에 들어온 산문집은 이러한 감상평을 남기게 했다.


•식구들이 모두 잠자는 시간, 형광등 아래 차가운 바닥에 조심히 앉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프롤로그를 유쾌하게 읽고서 본문을 막 시작했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글이 유려하지도 감정이 넘치지도 않았는데 거친 글 사이로 마음이 묻어납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독서였다. 그 청춘도 나의 것과 다름없었을 텐데,
지나가는 글 한 줄에서 눈동자에 고인 눈물을 볼 수 있는 것이 글쓰기라면
나는 기꺼이 읽는 삶을 살겠다.

2023년 5월의 어느 날, 이서정


말 그대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독서였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2023년의 독서는 대부분 이랬다. 독서를 막 취미로 받아들인 상태라 무언가 작품을 읽으면 소름이 돋고 다리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누군가에겐 호들갑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감히 이런 글들을 앞에 두고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선언까지 했다. 나는 읽겠다. 쓰지 않겠다. (이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책을 내었다.) 작가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사 같았다. 나는 머글이고 그들은 마법학교의 초대장을 받았기에 뭔가 특별한 교육을 받은 걸 거야.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면
그건 도무지 내가 쓴 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사람, 즉 신인이 됐다.
p19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작가님의 단편집을 몇 권 읽었으며 엔솔로지에서도 김연수 작가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나는 글을 씀으로써 신인이 되었다. 쓰지 않겠다는 선언을 뒤로하고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는 작가님의 책 '소설가의 일'을 손에 들었다. 소설이 무언가요? 작가님처럼 잘 쓰고 싶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원래 소설가는 좀 호들갑스럽다.
왜냐하면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믿으니까.
(...) 소설가의 '나/주인공' 중심성을 어쩔 수 없는 직업적 습관이다.
P.67


이 책의 구성은 제1부 열정, 동기, 핍진성, 제2부 플롯과 캐릭터, 제3부 문장과 시점으로 나뉘어 있다. 책의 내용은 재미있는 교수님의 강의록과 같은 느낌이 든다. 작법을 주제로 한 생동감 있는 에세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여기서 핍진성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처음 본 것은 소설창작론 수업 때 본 적이 있는 단어인데, 사실 소설창작론 수업의 교재에 이 책이 참고도서로 적혀있으니 핍진성이란 단어를 이 책으로 배우면 잘 배운 거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쓰기에서 핍진성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교수님들이 말만으로 학생들을 구박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닌가 싶지만 실존하는 단어이다. 뜻은 다음과 같다.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소설 창작의 한 방법으로, 구체적으로는 동기 부여나 세부 묘사 등의 소설적 장치를 들 수 있다.


그러니까 국어국문학과 학생이라면 이 정도 단어는 설명할 줄 알아야 거드름을 피울 수 있을 테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거짓말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순전히 개연성이 있는 글을 넘어서 핍진성이 있는 글은 반박할 부분이 없기에 실제로 그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거나 벌어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저자의 말대로 핍진성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럴듯한 문장을 넘어선 정말 진실처럼 보이는 문장을 쓰는 사람을 바로 소설가라고 한다. 핍진한 문장을 쓰는 사람, 소설가의 일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창작의 비밀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그게 다 핍진한 문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플롯을 짜는가가 모두 이 핍진성에 기초한다.
p.84

<책 정보>

제목 - 소설가의 일

저자 - 김연수

출판 - 문학동네

카테고리 - 산문집

쪽수 - 264p

ISBN - 9788954626279

발행일 - 2014.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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