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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ka Nov 16. 2022

개기

삶 속에 가려지는 것들.

 불안을 손에 쥐고 놓지 못하는 구름들 사이로 붉은 달이 떠오른다. 불확실함에서 기반한 세상에서 확실함의 확률을 따져본다. 흔들리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어디 있으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구성조차 끊임없이 요동치는 상태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무수히 중첩되는 흔들림을 자각하는 순간 세계가 나의 그림자에 가리어진다.

 빛이 어둠을 빛내주듯이, 어둠은 빛을 어둠케한다. 빛이 사라졌기에 어두워진 것이 아닌, 어둠은 빛과 함께 찾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늘이 진 나의 세계는 어두우면서도 밝은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우리는 굴절되고 반사된 것을 볼 수밖에 없으니, 일부분 혹은 단면을 보고 전부라고 생각할 수밖에. 어둡게 빛나는 달의 표면을 보며 그것이 달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는 불완전함을 가지며 살아간다. 완벽이라는 환상에 묻혀 완벽하지 못한 스스로를 등한시하며, 불확실한 것들을 확실하다고 믿으며.

 끝없이 흔들리는 존재들에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달과 해는 때론 달달하고, 때론 해가 된다. 흔들림에서 비롯된 고통과 불안이 기본값인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은 생존에 유리한 유혹이니까. 그런데 사실 그들 천체도 불안정하며 변화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존재의 흔들림 속성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존재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기 객관화에 이를 수 있지 있을까. 불안과 고통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유무 상관없이 모든 존재의 필연적인 과정이라면 내 세계의 일부로 어둠과 빛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붉게 물든 단풍들이 떨어진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며 추위에 몸서리친다. 바닥엔 메마른 낙엽들이 그들의 고향을 쳐다본다. 낙엽들이 짓는 제각기 표정을 모두 읽어본다. 읽을 수 없지만, 읽으려 노력해본다. 그들에게서 미련과 아쉬움을 느껴본다. 그들에게서 고통과 상실을 의식해본다. 그들에게서 포용과 사랑을 사고해본다. 그들이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가 같을 수 있다면, 그런 평화로운 소망을 낙엽에 실어 보내본다. 냇가에 흐르는 물소리가 낙엽에 쌓여 잠잠해진다. 그들은 새로운 곳을 향해 이동한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또 새로운 시작이 되는 용암의 행진처럼, 핏빛 물결이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어떤 끝을 향해가지만 그곳은 또 어떤 시작일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소멸과 탄생의 소용돌이가 낙엽들을 집어삼킨다.

 그래, 우리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한평생 찾고 있던 삶의 의미가 바로 죽음의 손아귀에 들려 있었다. 죽음이 삶을 포용한다. 삶은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스스로를 만나고 온전한 자신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생성과 동시에 소멸을 내재할 테니. 그렇다면 삶은 죽음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 삶은 곧 죽음이 된다.

 우리는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삶의 끝에서 스스로를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역설적이게도 삶을 내재한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죽음의 의미는 죽은 우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에게서만 발현된다. 삶의 의미는 죽음의 순간 스스로에게 찾아오지만, 죽음의 의미는 스스로 발견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어쩌면 소멸의 개념을 초월한 존재에게만 죽음의 의미를 물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으니, 삶이 지속되는 동안 타인의 죽음으로부터 의미를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영원함에 대한 갈망.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의 존재가, 인간을 벗어나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과 상상.

 보이진 않지만 느낄 수 있다는 감각의 교란.

 인간 의식의 질서는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간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방황하고 흔들리며 불안과 고통에 휩싸인다. 그러니 나는 삶의 의미를 찾지 않고 만들어낼 수밖에. 불안과 고통을 받아들이며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할 수밖에. 모든 것은 나를 위해, 나의 삶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러다 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볼 순간이 찾아온다면 내 죽음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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