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다이어트'였다. 21년 말에 90kg가 육박하던 몸을 이끌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며, 운동을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결심하던 날 나에게 보이던 것은 숲길을 달리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이젠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달리기는 신발과 두 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운동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적인 본능적인 운동이라는 점에서 좋다. 본능적인 운동이지만 나는 달리기를 통해 삶을 배운다. 30년 동안 달고 산 내 몸뚱이는 내가 계속 달리고 있을 때 나에게 가장 이성적인 활성화 체제로 세팅해 준다는 것을 작년 마포대교를 달리며 깨달았다. 생각이 복잡하거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무작정 달렸다. 달리고 나면 멈춰있었던 생각이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건강한 마약을 하는 느낌, 달릴 때 분출되는 도파민을 러너스 하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내 체력의 임계치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도 달리기는 매력적이다. 실제로 달리기를 한 후에 하루에 더 많은 일들을 집중해서 처리할 수 있었다. 하루에 달리는 시간은 줄어들지만, 그 외의 시간 동안 더 집중할 수 있었기에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내 체력과 지구력을 올리고 그것을 마라톤을 통해 시험하곤 했다.
어느새 메달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
맨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5km도 버거웠지만, 달리기 2년 차엔 3주에 1번 정도는 혼자서 10km도 달릴 수 있는 체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두렵지만 도전하고픈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프 마라톤이었다. 10km를 달리기만 해도 체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걸 2번이나 이어서 해야 한다니.. 하프 마라톤을 할 수 있는 몸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달리기를 한 지 2 5개월 정도 되는 날,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나름의 방법으로 3년 동안 달리기를 꾸준히 할 수 있어서 이제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방법은 이전에 올린 이 포스팅을 참고해 보시길 바란다.
하프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
1. 20km 셀프로 달려보기
우선 나 스스로 20km를 달릴 수 있는지 체크해보아야 했다. 20km를 목표로 달렸을 때 15km도 못 가 지친다면 20km에의 도전은 무모했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올해 2023년 기념으로 20.23km를 중간중간 쉬면서 달려보았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너무 힘들었지만 잘 쉬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이 테스트를 통해 "아 그래도 죽을 듯이 달리면 완주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1월 1일, 2023년 기념 20km 마라톤 성공
2. 러닝메이트 섭외하기
혼자의 의지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빈약하다. 그래서 함께 달릴 수 있는 메이트르르 찾는 것은 중요하다. 5월 하프 마라톤을 뛰기 전 함께 뛰는 친구에게 함께 달리겠느냐고 제안했다. 뛰는 것은 혼자서도 많이 뛰었지만 장거리 레이스는 함께 완주를 목표로 하는 친한 누군가가 있어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도 나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 덕분에 나는 하프마라톤을 할 때 앞에서 달리고 있는 친구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할 수 있었다.
앞에 달리는 누군가와 함께 달리고 있는 것은 큰 의지가 된다.
3. 꾸준히 달리기
나는 하프마라톤을 위해 1개월에 100km를 달려보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5월까지 단련을 지속했다. 하지만 모두 계획대로만 될 리가 없었다. 3월과 4월에 번아웃이 오는 바람에 활동량이 극히 줄어들었지만 마라톤이 있는 5월 전에는 다시 체력을 올리려 74km를 뛸 수 있었다. 이 덕에 마라톤을 달리는 시기에 체력은 떨어졌지만 하프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 수 있었다.
5개월 간 평균 74km를 달렸다.(4월엔 컨디션 난조로 급격이 낮아진 걸 볼 수 있다.) 4. 완주목표 세분화하기
실제 마라톤을 달릴 때, 솔직히 말하자면 13km부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도전한 서울신문 하프마라톤을 진행한 5월 20일엔 날씨가 28도였고, 햇볕이 강하게 도는 날씨였다. 마라톤 중도포기자들을 DNF(Did Not Finish)라고 하는데 이번 마라톤에는 유독 많이 볼 수 있었다. 하프를 모두 달리면서 본 DNF만 수백 명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00까지는 달렸네~"라고 들리는 소리는 내가 힘들 때마다 "나도 여기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두고 싶을 때 나만의 완주목표를 세분화했다. 13km 지점에서는 15km를 1차 완주목표로 잡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더니 15km까지는 뛸 수 있었고, 15km 지점에서는 17km까지를 2차 완주목표로 잡으니 어느새 완주지점까지 달릴 수 있었다. 목표를 세분화하니 조금 더 목표를 눈앞으로 설정할 수 있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
5, 중간중간 에너지 필수로 보충하기
서울신문 마라톤에서는 5km마다 식수를 보충하고, 10km 지점부터는 바나나 반쪽과 물에 적신 스펀지를 보급해 준다. 달리면서 음식물을 섭취하면 몸이 퍼질 것 같았지만, 10km 지점에서 먹은 바나나로 인해 3km는 더 달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거리가 될수록 달리면서 수분과 에너지를 보충할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었다. 지속적인 에너지를 쓰기 위해선 몸 안에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마라톤 키트에 아르기닌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걸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었다. 나중에 또 하프마라톤을 뛸 때는 꼭 초코바나 에너지원을 챙겨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하프마라톤이 끝난 후 나는 하프마라톤을 완주했었다.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 뛰었던 것이라 다시 컨디션을 회복해서 또 뛰고 싶었다. 더 빠르게 더 즐기면서 뛰는 하프마라톤을 위해 가을에 다른 마라톤을 친구와 신청하기로 했다.
달리기에서 중요한 건 움직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달려야 앞으로 나아가고, 천천히 달리던 빠르게 달리던 완주 해야 일을 끝냈다고 인정해 주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끝이 없는 어딘가로 계속 달려가는 삶 속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 위한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긴 마라톤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중에도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장치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5km를 달리는 것만 할 수 있었던 내가 지금은 하프마라톤을 달릴 수 있게 된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할 수 없었던 것에 하나둘씩 도전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