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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냥이 Dec 03. 2017

동기와 의욕, 지속성이 필요하다면 생각해 볼 것들

정서적 독립


많은 이들은 즐거움과 행복의 감정을 이용하여 행동을 이행한다. 가능성과 희망, 두려움과 공포 덕분에 행동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모두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성보다 욕망의 신호가 더욱 강력하게 느껴지기 때가 누구나에게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행위는 인식에 의한 행위라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욱 많다. 욕망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의지와 감각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접어들자 한 가지 궁금증이 샘솓았다. '왜 어떤 이들은 제한적이라 할 수 있는 동기와 의욕에 지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왜 어떤 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함몰되지 않은 채 그 감정을 의욕적 행동으로 전환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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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동물이라는 뜻의 다른 면을 바라보면 통제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회라는 것은 질서와 규칙에 의해 서로의 변칙을 절제하고 통제하는 형태로 안정을 취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보면 그 과정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부모에 의해, 학교에 의해, 회사에 의해, 사회에 의해 사람은 질서와 규칙을 교육받으며 특정 행동이 통제되고 절제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난다. 때론 절제와 통제라는 것은 한 방향의 강요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강요는 그것이 필요한 적절한 이유를 잘 설명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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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교복을 입어야 한다. 직장인은 사회생활의 규범을 지켜야 한다. 실내에서 모자를 써서는 안 된다.’ 일방적 방향의 강요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의미 또한 분석하기 어렵다. 학생이 교복을 입어야만 본분이라 할 수 있는 공부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관계가 돈독해야 업무를 더욱 잘할 수 있는 것도 실내에서 모자를 벗어야만 상대와의 대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것이 규칙과 질서가 아닌 예의의 영역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예의에도 이유는 필요하다. 그 행동에 필요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순간, 우리는 내부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관찰을 통해 그 행동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게 되는 것은 사회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업이 된다. 하지만 그 방향을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은 단지 ‘눈치 보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예의와 질서, 규칙은 때론 타인을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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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공포를 제외한 방식으로 강요자가 수용자의 정서적 우위에 설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 바로 ‘지적’이다. 수용자의 행동 영역을 억제하고 절제시킴으로써 통제하고 있는 강요자의 권위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수용자가 설명되지 않은 이 강요의 방식과 통제의 방식에 익숙해지면 수용자 스스로가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생각과 감정’을 추적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추적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즉, 정서적 독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발생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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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독립성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유를 내면으로부터 도출해 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행을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또한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인정 욕구의 감정을 발산하지도 타인의 감정과 의견을 잘 수용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의 판단과 기준이 아닌 나라는 존재가 생각해내는 본능과 판단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자존심과 자존감에 차이가 있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그것이 큰 차이가 있는 것이라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 둘은 ‘자아 존중’이라고 하는 공통된 판단을 사용해야만 발생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라고 하는 타인을 존중해야 할 때 예의를 첫 번째로 해야 한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첫 번째의 요건이라 믿지 않는다. 존중의 첫 번째는 예의가 아닌 경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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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독립성을 가진 사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들의 다른 공통점은 바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같은 티셔츠를 반복적으로 입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같은 신발을 매일 신거나 정해진 사회적 인식과 질서를 무시하기도 한다. 물론 타인의 감정을 쉽게 뭉개 버리기도 하고 하나의 행동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설명하라 강요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타인의 이유가 아닌 자신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합당하고 분명한 그리고 타당한 자신만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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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와 의욕, 지속성이 필요하다면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규정해야만 한다. 그것이 즐거움에 의한 것인지, 두려움과 공포 혹은 행복감에 의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만족인지를 찾아내야만 한다. 다른 사람에 의한 이유와 강요는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힘 있는 에너지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밸런스이다. 때론 우리에겐 정서적 독립을 뛰어넘는 사회성이라는 것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 연인과 동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때론 자신의 본능과 감정에 더욱 귀 기울여 보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추적해 간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부분까지도 수용해주며 이해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알립니다 -

오늘도 괜찮죠? 전 정서적 독립성이 높은 사람들은 섹시하다고 바라보는 편이에요. 그들은 언제나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으니 당당하고 분명한 태도를 드러내기 때문이죠. 그들은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죠. 자신에게 더욱 견고한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겠죠. 섹시하지 않나요? 공통되고 통일된 유행보다는 타인과는 다른 나름의 멋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니... 다음 주 글도 멋집니다. 잊지 말고 찾아와 주세요. 아! 이상한 문맥이나 오타가 있다면 꼭 알려주셔요. 다음 주 일요일에 또 뵙죠. 그럼,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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