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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24. 2024

직업과 창조 활동 사이에서 균형잡기

남편은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그림을 그립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10년 정도 꾸준히 하면 퇴직 후 그림을 팔아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요. 

어느 날 남편이 빈 종이를 앞에 두고 한참을 주저하고 있기에 시작하는 걸 왜 그리 어려워하냐고 했더니 이런 말을 합니다. 

“이걸로 나중에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부담이 돼. 그림을 막 그리는 게 어려워.” 

그 말을 듣고서야 아차 싶었습니다. 바로 사과했습니다. 

“미안. 너의 창조성에 부담 줘서. 그 말 취소할게. 그림으로 돈 벌지 않아도 되니 그리고 싶은 거 맘껏 그려.” 


 작품을 팔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저는 첫 원고 계약금을 받고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글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니. 

와. 책 많이 팔리면 집 대출금도 금방 갚겠네. 

어떤 글을 써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돈이 되겠지. 

소설을 구상해볼까? 앞으로 어떤 이슈가 뜰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글쓰기가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변해 버리더군요. 

생활비를 생각하다보니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는 유행에 편승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시대 흐름을 포착해 재빨리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면 그건 굉장한 능력입니다. 

저는 그럴만한 깜냥이 되지 않기에 제 호흡에 맞춰 글을 씁니다. 

창조 활동의 주 목적이 소득을 얻기 위해서라면 작품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초조한 마음이 들고 조급해질 수 있습니다. 

작품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번번이 팔리지 않는다면 절망을 느끼고 창조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창조성을 그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실력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창조성에게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자신의 책이 주요 출판사에서 세 권이나 출간되고 어느 정도 유명해진 이후에도 생계유지를 위한 일자리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빅매직>에서 그녀는 즐거움을 위한 글쓰기에 재정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낮에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성에서 생활비를 짜내려 노력하다 결국 그 창조성의 씨를 말려 죽이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자신의 창작 활동에는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길버트는 그 후에도 일을 하면서 꾸준히 글을 씁니다. 

네 번째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후에야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창조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예술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마음가짐은 당장 끼니를 이을 돈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각오가 따라옵니다.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흔들림 없이 작품에 몰두하려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겠지요. 

혼신을 다해 예술에 매진하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예술 활동만으로 먹고 살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결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견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창조에서 독창성을 발휘하고 내 마음대로 창조 하고 싶다면 안정적인 수입원이 중요합니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다른 일로 돈을 벌며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우리는 직업을 밥벌이를 위한 노동으로 여기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땅을 파고 씨앗을 뿌려 문명을 일구어 나갔습니다. 

노동은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일을 하기에 식재료를 사고 세금을 내고 가족을 먹이고 입힐 수 있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갓난아이 때는 부모가 보살펴 줘야 합니다. 

성인이 되었다면 스스로 밥을 떠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노동을 해나감으로서 삶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마음을 수련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사용하는 모든 물건과 식재료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었기에 누릴 수 있습니다. 

나의 노동 역시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행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그로 인해 누군가가 도움을 받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 일하며 삶을 가꿔나가는 건 나의 몫입니다. 

하루를 성실히 살지 않으면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 됩니다. 


 창조활동을 위해 돈을 벌고 노동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생존만 놓고 보자면 예술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일상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지 않는다고 누가 아쉬워하고 슬퍼할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기에 각자가 즐거워하는 창조 활동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무용의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아닙니다. 

내 작품이 죽을 때까지 빛을 발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엄청난 사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창조 행위가 자신을 즐겁게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창조 활동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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