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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경 May 12. 2024

행복하지 않은 하루도 소중한 내 삶이었다

삶은 늘 불확실함 속에서 하루만큼의 확신을 더해가기 위한 날들로 이뤄진다

삶은 늘 불확실함의 연속에서 한 스푼만큼의 확신을 더해가기 위한 나날들로 이뤄진다.

제각각의 하루 끝에서 긴 호흡으로 걸음을 가다듬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늘 얼마만큼의 확신을 더할 수 있었는지 되뇌이는 것으로 덧없는 상념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이어폰을 꽂는다. 하루는 어영부영 매조지 된다.


지금의 내 모습이 불완전, 또는 불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고 이 메마른 경쟁 사회 속에서도 작고 푸른 싹을 틔우며 순환하는 삶을 구축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며 그 결과물들은 썩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것은 삶의 색채에 대한 만족도와는 다른, 보다 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고찰이다.


대체 불가능. 결국 나라는 존재의 가치와 내 삶에 대한 주체성은 비례한다. 35세의 나는 50대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 언제까지나 다른 누군가로, 혹은 다른 무엇으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르겠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나의 자문자답. 경력 앞 숫자가 쌓여갈수록 미래는 내게 점점 더 추상적이 되어가는 듯하다. 한 해씩 성장하는 만큼 더 명확해진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나의 한계점이었다.


오늘을 잘 살아냈다 생각하는 만큼 미래에 대한 형상은 옅어진다. 최선을 다 해 걸어온 오늘을 뒤로

어제와 과거가 너무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시선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다.


방향이 잘못되었을까, 아니면 목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삶의 목표는 어떤 것이어야 했을까. 아니면 내가 잘 살아냈다고 생각한 그 열정의 농도가 사실은 한참 부족한 것이었을까.


오만가지 생각 끝에 심난해졌다. 심란한 마음으로 벌려놓은 일이 많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중 하나였고 틈나는 대로 서점으로 가서 책을 사집어 들고 와서는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블로그도 다시 시작하였으며 평소 하고 싶었던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확신을 얻는다기 보다는 잡념을 걷어내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그간 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일들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 찰나에 몰아서 시작하기 되었다. 그만큼 내가 조금은 성숙해진 걸까,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을 꺼냈어야 할 만큼 절박했던 것일까. 모두들 어떻게들 살아가는지 참으로 경외롭다.


오늘만큼은 오늘의 행복에 조금 더 시선을 두겠다. 그러면 내일은 조금 더 심난해져서 한 뼘 더 미래에 대한 상념으로 불편하게 잠자리에 들겠다. 행복하지 않은 하루도 소중한 내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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