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거주할 때 아이 영어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백인 Mrs. Lee였는데, 남편이 중국 사람이어서 성을 Lee로 쓰고 있었습니다. 동양에 대한 이해도가 있으셔서인지 저희 아이들에게 참 잘해주었습니다. 늘 친절하셨고, 여행을 다녀오면 선물을 사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돌아올 때는 눈물까지 흘리시며 옷 선물을 해주셨습니다. 할로윈 데이쯤에는 자신의 집에 초대해 맛있는 저녁을 먹은 적도 있습니다.
오늘 아이에게 그 선생님이 주신 옷을 입히며 오랜만에 그녀를 떠올렸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캐나다 사람들이 유독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응, 그러네. 그게 여유로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말한 여유라는 것은 꼭 경제적 여유를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평균적인 동네의 워킹 클래스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빠듯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이 많은 곳에 살았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한국 사람과는 달리 저축도 거의 하지 않아 예금 잔고가 낮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여유로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여유롭습니다. 칼퇴근이 가능한 환경과 문화가 크게 작용하겠지만,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 오래 시간을 보내는 점도 큽니다.
토요일 축구 수업에 가면 아빠나 엄마가 꼭 아이들과 함께 와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 수업은 학원이 아니라 부모들이 연합해서 만든 것이고, 각자 어떤 역할을 합니다. 저도 운영비 정도는 내지만 경기장 코스를 그리거나 뒷정리를 도왔습니다.
일요일 야구 수업에 가면 부모들이 나와서 주변의 테이블이나 바닥에서 간식을 먹으며 아이들의 경기를 보고 소셜라이징을 합니다. 8살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데, 3살, 4살 아이들, 그리고 수많은 강아지들이 뛰어놉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가족 단위의 공동체 경험이 그들에게 여유를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체력이 친절을 만든다. 내가 힘들면 남을 배려하기 힘든 법입니다. 부자들이 조금 더 친절한 경우가 많은데 (물론, 아닌 부자들도 있지만), 저는 그들이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더 여유롭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튜어디스들도 퍼스트 클래스를 더 선호하고, 은행 직원들도 강남으로 가는 것을 더 선호하죠. 이유가 있습니다. 일하기 더 편하기 때문이죠. '곳간에 인심 난다‘고 하죠. 꼭 경제적인 경계를 나누지 않아도, 내면이 안정되어 있고 휴식을 잘하는 사람들이 더 친절한 법입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스트레스를 잘 해결하니 남에게도 배려하고 친절할 수 있는 것이겠죠. 결국, 배려와 친절은 스스로의 정신적인 안정과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인 안정과 여유가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싫어지거나 누군가와 다툴 일이 생길 때, 혹시 내가 여유가 없지는 않은지, 내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지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저를 관찰해보면, 저는 배고프거나 아플 때 남에게 내지 않아도 될 짜증을 내더군요. (저는 특히 배고픔에 약합니다. 그럴 때 아내에게 짜증 내는 편입니다.) 내가 평안하면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고 나의 인간관계도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일도 잘 풀리게 되는 법입니다. 내가 정신적, 경제적, 신체적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배려할 수 있고, 그 공간에 운도 들어오는 법입니다. 나의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여유를 챙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