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서울에 집을 사게 되었다#1
결혼을 준비하며 마주했던 "내 집 마련"의 기회
그것이 기회라는 생각을 못했던 보다 어린 시절
그렇게 신혼 2년 동안 겪어야했던 한 편의 잔혹 드라마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다시 돌아가면" 당연히 당시에 집을 사겠지만,
과거에 대한 가정법만큼 무의미한 상상은 없죠
단언컨데 30년도 넘게 살아온 삶에서, 그렇게 후회되는 바보 같은 선택이 또 없었습니다.
집은 "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사건이였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결혼을 준비하고, 신혼의 단꿈에 젖어야하는
그 2년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2016~2018)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동시에, 파도처럼 일어났습니다.
내리치는 파도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해도 안쓰럽네요.
'이럴 줄 몰랐다'는 후회는 결국 싸움이 될 뿐
아무런 방어가 되지 않더군요. 아무런.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한숨을 쉬는 2년의 삶을 버티며 결국 서울에 집을 사고 나서야,
편안하게 잠들고 눈을 뜰 수 있었고 '서울의 내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되고서 얻을 수 있는
안도감과 거짓말처럼 찾아온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을 계획이고,
그저 '한 번의 선택'이 어떻게 내가 꿈꾸던 신혼의 행복을 처절히 짓밟았는지, 어떻게 친구들과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던지, 또 어떤 자책을 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가감없이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불과 이년전에 아무것도 모르던 청년이 그간의 괴로움과 우유부단함을 어떻게 이겨내고 모든 재산을 걸어내는 큰 결정을 해내게 되었는지 공감을 나누는 시간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직장인으로서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제 이야기 입니다.
덧. 저는 결코 '좋은 동네의 좋은 아파트'라는 사회적 공감을 자아낼만한 그런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전혀 아닙니다. 그런 오해는 없으시길 바래요. 내 집 하나 겨우 들고 있는 그 정도의 사람이예요.
2016년 말,
이듬해 결혼을 앞두고 왠만한 준비를 다 마쳤을 때
태어나 한번도 해보지 않은 거대한 고민과 결정의 벽에 부딪혔다
물론 결혼에 관련된 모든 것이 처음이고
어렵지만, 이건 조금 스케일이 달랐다.
"아파트를 사자."
예비 신부(당시의 여자친구)는, 직장인 1년차부터
주식투자를 시작으로 열심히 재테크의 바다에 뛰어든 상태.
부동산 강의도 직접 찾아 들었고,
거기서 파생된 네트워크와 별도 재테크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서울의 집은 무조건 사야한다는 생각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 정보의 반이라도 가졌다면 달랐을까?
말했지만 듣지 않았을테지 아마도
나는 사실 내가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할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그게 돼? 그냥 집을 살 수가 있어? 비쌀텐데. “살면 좋을텐데”가 아니라 사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겁부터 내고 안될 방법부터
찾아내는 소극적인 바보였다
대출을 끼고 사야지.
대출? 대출에 대한 거부감과 막연한 두려움.
사실 난 지금까지 아버지가 월급을 얼마나 받으셨는지 모르고 있다. 내가 살아온 (부모님)집이 얼마였는지도 몰랐을만큼 ‘경제 문외환’, ‘부모님과 돈 얘기를 하는 건 상스러운 것’, ‘대출은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반쪽짜리 경영학과생이었다.
대출을 두려워하는 놈이 전세대출은 했다
일부터 열까지, 앞뒤가 하나도 안맞는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인들(끼리끼리다 정말 나도. 나중엔 그 조언마저 원망스러웠다)이나 어디선가 줏어들은 최악의 망언을 굳게 믿었다
전세금은 사라지지 않는 내 돈이다
그래 사라지지 않겠지.. 전세사는 집 매수가도 올라가고 그만큼 기회비용도 사라지고.. 전세대출 이자도 내고.. 5% 상한으로 재계약하고..(물론 나도 이 부분은 이득을 보고있다 나도 새 아파트에서 몇년째 좋은 가격에 전세를 사니까)
그래 아파트가 좋아보이긴한다. 주차장도 있고 나름의 관리도 잘 되고. 그럼 알아볼까. 비싸겠지?
나는 일원동 아파트(고교 동창들이 많음)를 사고 싶어. 헉 이렇게 비쌌던가? 못사겠네
그래서 여자친구가 가져온 대안들은 당산, 염리(공덕 옆) 정도 였다. 당시 회사가 등촌동에 있었는데, 내 기준에는 이 동네도 터무니없이 비싼 집값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가장 큰 패착, 바로 이거이었다.
허세가 막아버린 올바른 현실 인식.
어차피 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가격이(당시 기준 이년간) 오른만큼을 제해도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현실적인 놈이 왜 그런 현실적인 생각은 못했을까. 돈을 모으는것보다 자산을 매수해서 가치가 오르는게 빠르다는 걸.
바보. 내가 친구들처럼 역삼 래미안이나 도곡 렉슬, 대치 미성 같은 곳에 살지도 않았으면서 허세는. 허세를 영원히 멀리하자. 살고싶으면
살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서는, 월급말고도 방법이 많다. 가장 보편적이고 쉬운 방법은,
가용예산과 적당한 부담의 대출로 아파트를 산다
들어가살든 전세를 주고 다른데 전월세를 산다
시간이 흐르고 매가가 오르면 수익을 내서 판다
매도가 + 모은 돈 + 추가대출로 상급지 이동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만큼 정답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이렇게 해왔는데, 굳이 다른 길을 찾으려한 이유가 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래. 직접 안 겪어보면 흔한 정답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댓가는 크지만.
집 값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한(사실 여친이 가져온 브리핑 시세만 보고) 시점에는, 이미 연초 아니 여름에 비해서도 가격이 꿈틀꿈틀 집값이 오른 상태였다.
둔촌도 아니고 등촌이 이 가격이라는 말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집 한채 없는 허세남 녀석.. 나중엔 개포동에 살지 않았다면 같잖은 허세라도 없었을텐데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다
그렇게 집을 사는 두려움을 허세로 굳이 이겨내며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집값이 비싸다는 택도 없는 센척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다, 여자친구가 컨택한 부동산을 방문하고 본격적으로 아파트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채, 몸만 분주했다.
내 통장에 정확하게 얼마나 있고
이전 직장에서 열심히 모은 돈을 얼마나 남겨뒀는지
퇴직금은 얼마나 남았는지
지금 직장에 와서는 대체 얼마나 모았는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모님이 얼마나 도와주실수 있는지"
그러면 그 총액에서 대출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가장 기본적인 집을 사기 위한 돈에 대한 정답이 없었다.
총알도 모르면서, 과녁을 보러 다니다니.. 이렇게 아둔할수가.
부모님한테 물어보기 죄송하고(돈을 탐내는 아들 같아서. 근데 의외로 이런 고민 아들들이 많이 한다.),
먹고 놀기 바쁘지 얼마나 모아뒀는지에 대한 그런 불안감들을 마주하기 싫었는지-
그렇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친 채,
쭈뼛쭈뼛 문을 열고 부동산 중개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는
밝게 웃을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가장 미안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