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이 취미가 되었다.
달리기가 취미가 되었다. 선수 때는 그렇게도 싫었던 달리기가 이제는 내 삶에서 중요한 활동이 된 것이다. 선수 때조차 러닝은 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을 뿐이고, 단 한 번도 달리는 것을 재밌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한번은 고등학교 시절 합숙때 트랙 400미터 인터벌 x 10회 를 했었는데, 계속 꼴찌로 들어오는 바람에 결국 다른애들은 다 숙소로 돌아가고 코치님께서 나만 벌로 10번을 더 돌렸던 기억도 있다. 그날 저녁, 방에서 과자를 먹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중 양쪽 햄스트링에 쥐가나서 앞으로 그대로 고꾸라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달리기는 영 소질이 없었다.
더군다나 4년 전 운동을 그만두고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체중은 늘었고, 체중이 느니까 쉽게 지치고 피곤했다. 쉽게 지치고 피곤한 몸은 곧 숱한 감정 기복을 만들었고,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나고 우울해졌다. 근본적으로 내 마음속 자리한 우울함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엄습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땀을 흘리며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만사가 귀찮아진 마음은 자전거를 타는것도 싫었던 것일까? 그래서 당시 종종 운동삼아 뛰고 있다는 유학하는 동생에게 함께 뛰자고 제안했고 운동 자체를 할 생각을 안 했던 터라 제대로 된 러닝화 하나 없어서 그냥 뉴발란스 스니커즈를 신고 나갔다. 그렇게 3킬로미터를 뛰었다. 스트라바 (GPS앱)를 켜고 달리는데 평균속도는 킬로미터당 5분 중 후반대, 1킬로도 달리지 않았는데 숨통이 터질 것 같았다. 맥박은 미친 듯이 날뛰었고 남은 2킬로가 막막했다.
그래도 왕년에 엘리트 선수였다는 이상한 자존심이 나를 계속 뛰게 만들었다. 선수 때도 그랬지만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그만할까?'라는 생각보다는. '아 큰일 났다. 어떻게 버티지?'라는 생각이 늘 먼저였다. 그렇게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도 컸던지라, 중간에 그만두는 것에 대한 개념 또한 없었다. 자랑은 절대 아니고, 포기를 잘 할 수 없는 것도 적잖은 (zolla)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아무쪼록 그렇게 시작된 달리기는 나를 살렸다. 논문 스트레스로부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매번 찾아오는 모든 형태의 무력감으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러닝일지를 써볼까 한다. 목표는 당연히 마라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