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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알감자 Mar 14. 2022

「문득, 이따금씩 쓰인 일기」 : 가방의 희생

「문득, 이따금씩 쓰인 일기」는 과거에 쓰인 짤막한 일기들을 모아 놓은 글입니다. 때문에 게재된 날과 쓰인 날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출근길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행운의 날'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행운의 시초는 지하철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기관사님의 훈훈한 멘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안녕하세요. 5호선 열차 기관사입니다. 매일 아침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로 출근하시는 시민 여러분 고생 많으십니다. 추운 날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십시오. 이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좋은 일들이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온기를 내뿜는 멘트에 웃음 짓던 것도 잠시, 예상 시간보다 늦게 환승역에 도착한 나머지 다음 지하철을 놓칠 위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환승게이트를 찍고 있던 와중에 갈아탈 지하철의 스크린도어가 닫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이건 뭐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상황인 터라 한숨을 푹 내쉬며 터덜터덜 걸었다.


그때였다.

열차 안에 있던 한 아주머니의 가방이 스크린도어에 정확히 끼어 빨간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설마…?' 하던 찰나, 기적적으로 열차의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그 틈을 놓칠세라 있는 힘을 다해 눈썹 휘날리며 지하철을 향해 내달렸다.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쓰이는 공식적인 용어가 하나 있다.

세이프-!


가방을 다시 챙겨 든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내 가방 덕에 우리 아가씨 지하철 태워서 다행이네."

고르지 못한 숨 때문에 아직도 헥헥거리고 있는 신세였지만, 기분이 정말로 좋았다. 이런 게 바로 행운이 깃든다는 건가 싶을 만큼이었다. 우연찮게 가방 한 몸 희생해 준 아주머니에게도, 행복한 하루의 시초를 빌어준 5호선 기관사님에게도 속으로 연신 고맙고 싶은 하루였다.



[2021.11.04]

문득, 이따금씩 쓰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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